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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복궁, 어디까지 가봤니?
3편. 경복궁 복원에 얽힌 이야기
김 석
#김석기자




꽃담과 굴뚝에 새겨 넣은 만수무강의 염원


경회루를 찍고 아미산을 지나 그저 물 흐르듯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는 또 하나의 보물이 바로 자경전(慈慶殿) 꽃담입니다. 자경전은 고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 조대비에게 보답하기 위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88년에 흥선대원군이 지어준 건물이라고 하지요. 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자경전 바깥의 서쪽 담장에 갖가지 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담장 위에 펼쳐진 야외 꽃그림 전시회라고 할까요. 벽돌이 그려내는 기하학적인 무늬와 예쁜 꽃이 기가 막히게 어울려 있습니다. 호젓한 궁궐 산책길에 이만한 호사가 없었겠지요.





꽃담을 따라 걸으며 잠시 나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갖고 난 뒤 이제 자경전 후원으로 향합니다. 이곳에도 아주 귀한 보물이 있습니다. 교태전과 마찬가지로 자경전 역시 대비가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니 당연히 굴뚝이 있는데요. 교태전 후원 굴뚝과 달리 자경전 굴뚝은 외벽 북쪽에 덧집처럼 붙어 있습니다. 언뜻 봐선 이게 굴뚝인가 싶지만 기와지붕 위에 연가가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게 보이시지요? 아궁이 숫자에 맞춰 모두 10개가 가지런하게 앉아 있네요. 꼭 전선 위의 참새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이 독특한 형식의 굴뚝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조선시대 궁궐 굴뚝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에 걸맞은 다채로운 무늬들입니다.





외벽의 중앙에는 가로로 긴 화면에 갖가지 자세와 모양을 한 십장생(十長生) 벽화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 양쪽 옆면에는 험상궂은 얼굴의 나티(짐승 모양을 한 귀신)와 박쥐, 학 등이 십장생을 호위하듯 자리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사악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오래 사시라는 염원을 담은 형상들이지요. 조선시대 궁궐 굴뚝의 대표 선수로 평가돼 굴뚝만 따로 보물 제810호로 지정돼 있을 정도에요. 귀한 유물인 만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궁궐 안임에도 이례적으로 덧집까지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래서인지 경복궁에 가면 일부러라도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절로 일어납니다.



자경전을 지키는 해태상의 비밀


이렇게 귀한 보물들이 격을 높여준 덕분에 자경전은 건물 자체도 따로 보물 제80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뒤를 보았으니 이번엔 앞을 봐야지요. 그런데 이게 뭔가요. 건물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더니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던 돌조각 하나가 서 있군요. 생김새로 보아서는 영락없는 해태상입니다. 광화문 바깥으로 양옆에 떡 하니 앉아 있는 바로 그 해태상의 축소판이에요. 궁궐 건물 앞에 짐승의 돌조각을 세워둔 건 처음 봅니다. 물론 전례가 없다고 해서 꼭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만요. 아무튼 워낙 드문 경우라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해태라고 부르는 이 정체 모를 짐승은 예로부터 불을 막아주고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영험한 능력을 가진 상징이었답니다. 한자 이름은 해치(獬豸)입니다. 광화문 앞에 두 마리가 좌우로 짝을 지어 서 있으니 우리에게도 굉장히 친숙한 존재이지요. 선과 악을 가려낼 줄 안다는 상징성 덕분에 국회의사당과 검찰청사 앞에도 서 있습니다. 자경전 앞에 수호자처럼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해석하면 될 겁니다. 문제는 이 해치상이 과연 언제 자경전 앞에 세워졌느냐 하는 점이에요.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다른 해치상이 만들어진 시기로 유추를 해볼 순 있겠지요.



(좌) 광화문 좌측 해치상
(우) 광화문 우측 해치상



광화문 앞 해치는 1864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시에 만들어진 해치상이 또 있어요. 경복궁 동남쪽 끝에 외로운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을 기억하시나요? 동십자각(東十字閣)이란 이름을 가진 이 건물은 궁궐을 지키는 파수꾼들이 근무하던 망루입니다. 역시 경복궁 중건 때 지어졌고요. 이곳만 아니라 서쪽에도 서십자각(西十字閣)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헐려 사라지고 지금은 동십자각만 덩그러니 도로 한가운데 남아 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동십자각을 찍은 사진을 보면 망루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자경전의 것과 거의 똑같은 해치상이 보입니다.





해치가 만들어진 시기는 모두 고종 때입니다. 결국 자경전 앞 해치상 역시 고종 때 만들어진 걸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동십자각 입구를 지키던 해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십자각의 해치는 어딘가에 남아 있기는 한 걸까요. 일제강점기 흑백사진을 보면 당시에도 자경전 앞에 해치가 서 있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동십자각 해치와는 생김새와 자세가 조금 다르거든요. 혹시 서십자각이 헐리면서 그곳에 있던 해치가 자경전 앞으로 옮겨진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동십자각 해치도 어딘가에 보관돼 있는 것은 아닐까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향원정 복원은 현재 진행 중!


이런저런 궁금증도 품어보면서 궁궐을 돌아본다면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경복궁 답사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입니다. 경복궁 후원을 대표하는 명소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아름다운 호수와 어우러진 향원정(香遠亭)이 아닐까요.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시절, 고종이 경복궁 후원에 건청궁(乾淸宮)을 짓고 들어가 살던 1867년에 인공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그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보물 제1761호로 지정돼 있어요.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계절에도 찾아온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호젓한 공간입니다.




연못 남쪽에 이편과 저편을 이어주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는데요. 취향교(醉香橋)라는 이름도 근사한 이 다리는 사실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원래 위치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이에요. 건청궁(乾淸宮)에서 머물던 왕의 동선에 맞게 지은 거지요. 6.25 전쟁 당시 폭격에 다리가 부서진 뒤 1953년에 다시 지었다는데, 그때 왜 원래 자리에 다리를 놓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전쟁 직후라도 분명히 다리가 부서진 잔해가 남아 있었을 거고, 그렇다면 제자리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요.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을 보면 향원정 북쪽 건청궁 앞으로 다리가 놓여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지요. 게다가 원래 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도 나무다리를 얹어 놓았던 기단석이 그대로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처럼 다리 바닥면이 평평한 게 아니라 무지개다리처럼 가운데 부분이 위로 불룩하니 솟아 있었던 것도 알 수 있지요. 기왕 국가가 그토록 귀하게 여겨 보물로 지정했다면 경복궁 중건 사업의 취지에 맞춰 다리 또한 원래 자리에 제대로 복원하는 게 옳습니다. 1953년에 새로 지은 뒤로 지금까지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왜 저 모습으로 그냥 내버려 둔 걸까요. 지금 향원정에 가보면 연못 주변에 가림막이 빙 둘러 쳐져 있습니다. 낡은 향원정은 다 해체해서 말끔하게 보수하고, 취향교는 원래 위치에 복원하기로 한 거지요. 늦어도 한참 늦었습니다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젠 기다리는 일만 남았지요. 3년 뒤, 향원정이 어엿한 옛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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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대영제국의 중심, 런던을 거닐다
이 환
#이환작가
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no.1,THE UNITED KINGDOM,런던 편 Part.2
영국,정식명칭: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위치:서유럽, 프랑스의 북서쪽,언어:여어,수도:런던(LONDON),인구:64,769,452명(2017년7월기준),종교:영국성공회 카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THE UNITED KINGDOM,LONDON

UK LONDON PART 2.

영국의 중심, 런던의 일상을 거닐다
아직도 종이 신문을 읽는 이들이 많은
미디어의 천국
COUNTRY OF MEDIA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가판대를 채우고 있다. 공원이든 카페든, 혹은 지하철이든 신문 읽는 이들 이 많다. 요즘엔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신문이나 책을 읽는 이들이 부러울 정도로 많다. 영국 신문들이 세계 신문시장의 모델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변하는 독자들의 취향 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경쟁을 통해 변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사랑하는 명소, 코벤트 가든
COVENT GARDEN

코벤트 가든 역 광장. 가장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런던 명소다. 마술, 저글링, 버스커들의 놀라운 창작음악 등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매일 감상할 수 있다.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이라는 이름 그대로 ‘수도원 채소밭’에서 출발했을 이곳은 1970년대 중반까지 청과시장 이었다고 한다.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 라는 뮤지컬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주인공 일라이자 둘리틀(Eliza Doolittle)의 모습으로 꽃을 팔던 거리도 이곳이다. 가난하지만 말괄량이 여인 일라이자가 교양 있고 우아 한 신데렐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처럼, 이곳에 오면 꿈과 희망이 꿈틀거린다!
작지만 자신이 가진 한 가지 재능에 몰두하며 탄성과 웃음을 선사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여정의 고단함도 덜어낸다.
런던을 물 위로 거닐다,
리틀 베니스
LITTLE VENICE

리틀 베니스는 패딩턴 기차역(Paddington Station) 옆 두 개의 큰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런던 내의 하천은 거의가 인공 물길(Canal)이다. 매년 5월이면 리틀 베니스 물길 위는 울긋불긋 깃발과 문양과 꽃 장식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장식의 보트 수백여 척이 한데 모여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주변 리젠트 파크(Regent Park)나 더 캠든 마켓(The Camden Market), 런던 동물원(London Zoo) 등을 쉬이 갈 수 있다. 고색창연한 런던을 물 위로 다니며 색다른 풍경을 맛볼 수 있다.

즐거운 거리 축제, 노팅힐 카니발
NOTTING HILL CARNIVAL

휴 그랜트(Hugh Grant)와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나오는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1999)]의 배경지역. 노팅힐 카니발은 서부 런던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아프리카계 캐리비언(Afro-Caribbean) 이민자들이 1964년부터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뽐내는 거리 축제다. 매년 8월 마지막 주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세계 음식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양한 음악과 함께 시름을 잊을 수 있다. 거리 축제 중 브라질 리우 카니발(Rio Carnival)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골동품 속 숨은 진주를 찾아라,
포토벨로 마켓
PORTOBELLO MARKET

노팅힐 바로 옆 골동품 가게. 전 세계 서화들과 동서양의 온갖 물건들이 즐비하다. 주말이면 거리에도 긴 노점이 펼쳐진다.

안전한 도시를 책임지다,
런던 경찰
LONDON POLICE

런던의 경찰은 친절한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연속된 테러 때문인지 꽤 엄격하다. 런던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건 정복 경찰 외에 눈에 안 띄는 수많은 사복 경찰 때문이다. 시민 대부분은 경찰의 권위를 인정하며 범죄가 발생하면 놀랄 만큼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런던에는 지하철의 안전만 책임지는 교통 전문 경찰이 따로 있다.
약속과 만남의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
PICCADILLY CIRCUS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만나는 약속을 한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를 연상시킨다.

모던한 국제도시 런던과
세월을 보전하는 시민들
LONDON PEOPLE

뉴욕처럼 전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국제도시, 시내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알려주는 이를 찾기 힘들다. 그 역시 관광객이거나 혹은 다니는 길만 알고 사는 런던 사람일 거다. 첨단 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에도 런던 사람들은 수백 년 긴 세월의 흔적들을 매우 아끼고 보존하는 데 지극정성이다. 백 년 넘는 펍이나 레스토랑도 많고, 도심 한가운데에도 리젠트 파크나 하이드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 들이 잘 보존되어 시민들에게 위안을 준다.

런던 사람들은 특히 집을 사랑하고 정원을 사랑한다. 집안이나 정원 가꾸기에 관한 쇼핑몰, 그런 제품들을 소개하는 잡지나 TV프로그램도 많다.
성당 옆에는 어김없이 공동묘지가 있다. 노인들이 옛 사람들의 무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지하철이나 거리 어디를 가든 버스커들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Walk alone in London
is the greatest rest.
런던을 혼자 걷는 것은 가장 큰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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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2월 Publisher’s letter
새로운 도전을 위한 겨울나기
SSG블로그




한 해의 끝에 서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많은 시작이 함께했던 만큼 좋은 기억들이 더 많길 바랍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을 거예요.

끝은 시작만큼 명쾌하지 않으니까요.


매해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 같고,

똑떨어지는 마무리가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생기더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그냥 계속 나아가면 될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늦는 것은 지금 나의 다급함일 뿐이니까요.

이제 끝이라고 단념하기보다는

이 시간을 다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휴식시간을 갖고

‘보다 나은 다음’을 준비하는 거죠.


SSG블로그는 2017년을 마무리하며

여러분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휴식 같은 이야기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 가을의 끝을 잡고, 서울에서 즐기는 단풍여행코스

송년회 장소 걱정은 이제 그만. 연말 모임 히든 스폿

제주소주 '푸른 밤'과 함께하는 즐거운 연말 파티까지!


바삭바삭 많은 것이 마르는 계절이지만

여러분의 순간은 촉촉하기를 바란다고 꾹꾹 눌러쓰며

2017년의 마지막 SSG블로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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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의 문화이야기
경복궁, 어디까지 가봤니?
2편. 디테일에 담긴 호젓한 아름다움
김 석
#김석기자

 


경복궁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십중팔구 경복궁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근정전(勤政殿)을 먼저 꼽으실 거예요. 하지만 근정전 못지않게, 아니 되려 건물과 주변 풍광까지 어우러진 경복궁 최고의 명소는 따로 있습니다. 근정전 서쪽 행각을 빠져나오면 넋을 잃게 만드는 빼어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요. 궁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그 장한 규모 하며 호젓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바로 경회루(慶會樓)입니다. 눈부신 가을날의 경복궁 하늘은 얼마나 높고 푸르렀던지… 물 위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번잡한 세상 시름마저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그 옛날 석공의 기교를 담은 경회루 돌기둥


북쪽만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을 뿐 경회루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참 멋집니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예술이 되는 풍경 있잖아요. 그런데 한때 경복궁에서 살다시피 했던 어느 미술사 학자에게는 경회루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을 지어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기둥이었어요. 바깥으로는 사각기둥 24개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안쪽으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기둥이 가지런합니다. 누각 아래로 들어가서 보면 돌기둥에서도 이런 감동을 얻을 수 있구나 싶어지지요. 그 옛날 석공은 어찌 저리도 큰 화강암 덩어리를 깎고 다듬었을까요.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주열



이토록 아름다운 경회루 돌기둥의 멋을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선생입니다. 한국의 미(美)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지녔던 선생은 경회루 돌기둥이 주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더할 바 없이 감동적인 글로 남겨놓았지요.



이렇게 시원스럽고 엄청난 화강석 네모기둥의 주열이
또 어디에 있는지 나는 그 예를 모른다.
(중략)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면서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크기도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를
우리는 이 화강석 주열에서 역력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향정(下郷町)



경복궁 내 숨은 근대의 산물, 하향정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회루를 떠나려는 발길을 붙드는 것이 또 있습니다. 경회루 왼쪽으로 연못 건너편에 자그마한 정자 한 채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지요. 하향정(荷香亭)입니다. 근처 연못 위로는 나무배 한 척까지 근사하게 떠다닙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문제는 이 정자가 조선 왕실의 유산이 아니란 점입니다. 하향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지은 겁니다. 낚시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쉼터로 말이에요. 실제로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도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궁궐 안에다 버젓이 낚시터를 지어 놓고 경회루 일대를 개인 휴양지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하향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의 기준 시점은 이 글의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중건한 1888년에서 1907년 사이입니다. 이 시기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하향정은 철거해야 마땅합니다.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대책을 촉구했건만 2013년 문화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그대로 두라고 결정합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건물 자체에 역사성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그 뒤로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철거해서 내버리자는 게 아니라 적절한 다른 위치로 옮기자는 게 과연 무리한 요구일까요. 경복궁 복원의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정전(修政殿)



수정전 앞 말채나무에 깃든 사연


경회루 권역을 떠나기 전에 가볼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경회루 남쪽에 수정전(修政殿)이란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요.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였던 유서 깊은 공간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고종 때 다시 지어져 대한 제국의 내각 건물로 두루 사용된 곳입니다. 지금은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고종 때에는 주변으로 200칸에 이르는 각종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고 해요. 앞마당이 제법 널찍해서 요즘은 야외 공연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더군요. 바로 이 수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보입니다. 이름은 말채나무. 봄에 늘어지는 가지로 말채찍을 만들어 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수정전 앞뜰에서 자라고 있는 말채나무 두 그루



그런데 원래는 지금 자리가 아니라 수정전 건물 앞 계단 사이에 70~80살 먹은 말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해요. 국내 최고의 궁궐 나무 전문가인 박상진 선생이 쓴 <궁궐의 우리 나무>란 책에 바로 이 수정전 말채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1999년에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수정전 계단 사이에 자라고 있던 말채나무를 잘라내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는데요. 당시 문화재청이 제시한 역사적 근거는 이렇답니다. 첫째, 왕을 해하려는 자객이 나무에 가려 안 보일 수 있다. 둘째, 건물과 나무가 일직선상에 있으면 문 밖에서 건물을 볼 때 한자로 문(門)에 나무(木)가 겹쳐져 한가롭다는 뜻의 한(閑) 자가 되어 나라가 번창할 수 없다. 셋째, 담장 안 한가운데에 나무가 있으면 한자로 담장(口)과 나무(木)가 겹쳐져 곤란하다는 뜻의 곤(困) 자가 되니 역시 나라에 이롭지 않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수정전 앞 말채나무 두 그루가 더 특별하게 보입니다.



교태전(交泰殿)



경회루 권역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아 다시 근정전 뒤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지난 글에서 눈높이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건물 위만 쳐다보면 아래가 안 보인다고요. 궁궐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뒤를 보는 겁니다. 대개 궁궐을 이곳저곳 돌다 보면 건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앞만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정작 건물 뒤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더 좋은 것들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지요. 근정전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에 만나볼 보물은 교태전 뒤에 있습니다.



아미산(峨眉山)



아미산 위 자리한 작은 보물


왕비가 잠을 자는 곳이었던 교태전 뒤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을 아미산(峨眉山)이라 불렀지요. 보시는 것처럼 차곡차곡 단을 쌓아서 만든 인공 정원입니다. 교태전은 왕비가 자는 곳이었으니 당연히 온돌에 불을 때서 난방을 했겠지요. 당연히 연기를 밖으로 빼줄 굴뚝이 필요했을 거고요. 그런데 우리 조상은 이 굴뚝 하나조차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태전 굴뚝은 모두 4개입니다. 조선시대 내내 있었던 게 아니라 1865년 폐허가 된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만든 거랍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굴뚝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요.



아미산 굴뚝만 따로 보물 제81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미산 굴뚝의 핵심은 육각으로 쌓아올린 몸체의 각 면에 그려진 문양들입니다. 가운데 큰 그림에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그 위아래 작은 그림에는 봉황이며 박쥐, 학, 사슴 등 온갖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왕비가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니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기둥 위에는 제법 서까래에다 기와까지 얹었으니 기둥 하나하나 어엿한 집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위에는 또 다른 작은 기와집이 앉아 있군요. 연기가 빠져나가는 집이라 해서 연가(煙家)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물건입니다. 저 굴뚝 꼭대기에 종종 모여서 앉아서 마치 여기 나 좀 봐 주세요, 손짓하는 것만 같아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아미산 굴뚝 연가(煙家)



이러니 경복궁을 좀 가봤다는 분들은 아미산 정원과 굴뚝의 아름다움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지요. 앞에서 인용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도 아미산 굴뚝에 매료돼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경복궁 역사의 구석구석에 백성들의 고혈이 엉겼다 하지만,
한 가닥 불평도 불만도 비끼지 않은 이 멋진 굴뚝들의 쌓음새를 보고 있으면
‘참 우리 백성은 좋은 백성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따뜻이 해 준다.



그뿐인가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 역시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복궁이 세계 어느 나라 궁궐보다 인간적 체취가 느껴진다는 것은
아미산 꽃동산 같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자경전 꽃담장과 경회루 연못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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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노포, 낡은 거리에서 세월의 맛을 느끼다
정동현
#정동현


아무리 가도 가도 다른 것이 없다. 여기에 가도 저기에 가도 사람들은 똑같은 곳에 앉아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주제를 논할 뿐이다. 전동차 안에 앉아 죽은 듯 눈을 감고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보내고 끝나는 시간, 나는 번화한 거리가 아닌 어두운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크고 깨끗한 빌딩은 아니다. 불빛이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넘쳐나지도 않는다. 콘크리트 포장이 벗겨져 울퉁불퉁한 거리의 건물은 낡고 불빛은 어둡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숲속의 작은 짐승들처럼 낯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춘다. 그이들이 찾아드는 집들은 찾기 어렵고 찾았다 해도 겉모습을 보고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제대로 온 것일까? 영업은 하는 것일까? 용기를 내어 문을 열면 시간이 멈춘 듯 아마 저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탁자, 끝이 닳아버린 숟가락, 허리가 굽은 주인장, 낮은 조도의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보내는 시간은 오래된 농담 같다. 그리고 이 농담은 한국의 부(富)가 모여든다는 강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거센 세월의 흐름이 돌아가는 곳, 강북의 을지로와 종로에 은일(隱逸)을 꿈꾸며 오래도록 자리한 노포(老鋪)에서 잊힌 노래를 듣는다.


세월의 맛을 느끼려 노포를 찾는다면 우선 가야 할 곳은 을지로 3가 일대다. 아직도 문을 닫지 않은 철공소 단층 건물이 군락을 이룬 이곳에 가면 골목 어귀어귀 작게 둥지를 잡은 식당이 여럿이다. 늦은 저녁거리를 걸으면 까맣게 절은 러닝셔츠마저 벗고 등목을 하는 사내들이 있다.



그 골목에서 가장 자리 잡기 힘든 곳은 '세진식당’이다. 1991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탁자 하나에 석유 곤로를 놔두고 라면 장사로 시작했다는 이곳은 이제 어엿한 식당이요, 주인의 아들은 중년이 되어 머리가 희끗하다. 메뉴를 보면 흔한 밥집 메뉴인 김치찌개, 된장찌개부터 시작하는데 삼합, 생태탕에 이르러서는 고개가 갸웃한다. 그러다 시가(市價)인 갑오징어 숙회를 보면 이곳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게 된다. 보통 오래 살아남은 집들이 그러하듯 주문이 들어가면 음식은 빠르게 나온다. 업력이 길어 손님이 어떤 주문을 할지, 어떻게 하면 음식이 빨리 나갈지 이미 계산이 서 있다.



유지태를 닮은 중년의 아들이 음식을 가져다주면 맛을 볼 차례가 남는다. 흘깃 주방을 살펴봤을 때는 채 1만 원이 되지 않는 싸구려 프라이팬과 찜기와 솥뿐이었는데 나오는 음식의 수준을 보면 과연 고수는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양념의 맛은 과하지 않고 오로지 미각을 자극하는 만큼만 쓰였을 뿐이다. 흔한 오징어 볶음도 이곳의 맛은 다르다. 채소를 약한 불에 볶아 물이 흥건한 하급이 아니다. 물이 자작하니 북인도의 드라이 카레를 먹는 것 같은 농축된 맛과 오래 볶지 않아 질기지 않고 쫄깃한 식감만 남았다. 강남의 반값도 되지 않는 갑오징어 숙회는 이 집의 필청 메뉴요, 민물새우를 넣어 감칠맛을 극대화한 전라도식 생태탕과 풀어져 내려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심이 살아 있는 야들야들하고 탱탱한 돼지 수육이 곁들여 나오는 삼합은 이 집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동네가 으슥하다고 아무 때나 찾아가면 자리가 있는 그런 집이 아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이가 여럿, 사려 깊게 예약 전화를 넣는 것이 현명한 이의 자세다. 


이곳을 빠져나와 골목을 건너면 을지로 골뱅이 거리가 나온다. 이곳에 모인 골뱅이 집은 여럿이지만 단 하나의 집을 골라야 한다면 '영락골뱅이'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곳이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크며 무엇보다 아버지의 단골집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딱 영락골뱅이 맛이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살던 시절,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은 골뱅이무침을 해 먹었다. 부산에서는 흔히 초고추장에 골뱅이를 버무려 냈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가 않았다.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로 양념을 해 그 맛이 번잡스럽지 않고 깔끔했다. 북어포를 채 썰어서 파채와 함께 버무리는 것도 특징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어머니의 솜씨인 줄 알았다. 커서 서울에 와 말로만 듣던 영락골뱅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신화 속 인물을 눈으로 목격한 것처럼 신기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이 집의 골뱅이 맛이 우리 집의 그것과 똑같았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서울 생활을 추억하며 골뱅이무침을 만들었고 나는 어른이 되어 그 골뱅이무침의 시작을 목격했다. 



영락골뱅이의 특징은 언제나 계란말이가 서비스로 나온다는 점이다. 계란 파동이라 하여 사람들이 계란 먹기를 꺼려했을 때도 이 집은 되려 더욱 크게 계란을 말아 손님상에 올렸다. 호기가 엿보이는 이런 태도는 역시 시간에서 나온다. 나라가 망할 것처럼 휘청거려도 이 집은 문을 열었고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골뱅이 캔을 따서 파채와 양념, 그리고 빻은 마늘 한 숟가락 올려주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빛바랜 벽지와 달력, 나무 기둥과 좁은 계단, 늘 보는 찬모의 얼굴마저도 맛이 되고 멋이 된다. 이곳의 메뉴는 골뱅이무침 하나로 귀결되지만, 꼭 스팸 구이는 먹어보길 권한다.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이곳에서 먹으면 왠지 맛이 다르다. 먹어보지 않으면 또 이 차이를 알 수도 없다. 



만약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 을지로 3가 지하철역 10번 출구에 있는 '안동장'을 꼽아야 한다. 1948년 문을 열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중국집이란 별칭을 얻은 이곳은 단지 오래되었다고 다니는 집은 아니다. 한 번 식당을 개조해 식사하기 쾌적하여 남들에게 추천하기 좋다는 점은 이곳을 찾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안동장에서 맛을 봐야 할 것을 여러 가지지만 초행자라면 우선 굴짬뽕과 탕수육을 맛봐야 한다. 안동장의 굴짬뽕은 특히 유명한데 소문에 의하면 굴짬뽕을 처음 개발한 곳이 바로 이 집이라고 한다. 속에 쌓인 세속의 먼지를 다 씻어내리는 듯한 개운한 국물과 깔끔한 뒷맛은 명불허전, 겨울 찬 바람이 불면 자동으로 안동장의 굴짬뽕이 생각날 정도다. 



중국집의 기본 메뉴인 탕수육도 이곳은 맛이 다르다. 찍먹이니 부먹이니 할 것은 없다. 당연히 중화 냄비, 웍(Wok)에서 소스를 한번 굴려 입혀 나와야 하는 것이 정석, 안동장의 탕수육은 유행하듯이 아주 바삭거리지도 그렇다고 살이 콱 씹히는 두꺼운 종류도 아니다. 조금 폭신하다는 느낌이 있는, 오래전부터 먹은 그 맛, 그러나 얼갈이배추를 썰어 넣어 소스의 감칠맛이 남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연구와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기에 나는 탕수육 한 점을 먹을 때도 겸허해진다. 그리고 하얀 머리를 한 노인이 허리를 숙여 주문을 받고 음료수 한 병을 가져다줄 때도 친절히 마개를 따 주는 그 세심함에 노포의 명성이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게 내가 거리를 쏘다니며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깨달음보다 더욱 나를 이 낡은 거리로 이끄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세월 속에, 그 무상함 속에 살아남는 것들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나이가 들고, 점점 사라져가는 그 무상한 것들, 몇 푼 되지 않는 한 끼 속에 잠든 시간과 그 한 끼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다 전해지지 못하고 다 기억되지도 못하며 그저 거리에 잠들고 잊힐 뿐이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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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United Kingdom: 런던 1편
이 환
#이환작가
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no.1,THE UNITED KINGDOM,런던 편 Part.1
영국,정식명칭: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위치:서유럽, 프랑스의 북서쪽,언어:여어,수도:런던(LONDON),인구:64,769,452명(2017년7월기준),종교:영국성공회 카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THE UNITED KINGDOM,LONDON

INTRO

융성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나라
영국을 만나다

까만 택시, 빨간 이층버스(Double-Decker), 공중전화기 등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많다. 그만큼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다채롭고 흥미로운 나라다. 나라와 도시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그걸 세계 적인 상품으로, 볼거리로 만드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다.

여왕의 나라이자 전 세계에 52개국의 영연방(Commonwealth)국가들을 거느리고 있는 나라, 영국. 지금은 다소 폐쇄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한때 세상의 좋은 것들은 물론 난민까지도 기꺼이 수용했던 개방적인 나라. 그리고 파운드를 고집하고, 극심한 논란 끝에 2016년 EU에서 탈퇴(Brexit)하기도 한 사연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게 세상이다. 영국 또한 마찬가지다. 사진으로나마 쉬어가듯 영국의 단면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영국인을 처음 만나다.
THE FIRST TIME

영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온 것은 언제일까? 1845년 거문도 상륙이 영국인의 우리나라 첫 방문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그 이전 기록도 많다. 1816년 9월 서해안을 순찰한 영국 해군이 충남 서천군 마량진에 정박해 지역 관리들에게 성서를 전해준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성서가 전달되는 순간이다. 그 자리에는 성경전래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1882년엔 영국 해군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가 제물포 앞바다에 정박해 동네 주민들에게 축구를 알려줬다. 이른바 ‘갑판 축구’다.

2004년 인천항을 방문한 영국 군함 엑시터(Exeter)호 위에서 당시 도포를 입고
갑판 축구를 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영국의 심볼, 빨간 공중전화 부스
RED PHONE BOOTH

1924년 자일스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이 디자인한 빨간 공중전화 부스. 가장 영국 스러운 디자인으로 사랑받아왔지만, 모바일 통신의 발달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공중 전화부스를 개인 사무실, 작은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들도 나오고 있다.

UK LONDON PART1.

영국의 중심, 세계의 중심 런던
영국의 자존심, 트래펄가 광장
TRAFALGAR SQUARE

런던 여행의 시작은 역시 트래펄가 광장이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 혹은 서울 광장 같은 곳. 1805년 영국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이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이긴 트래펄가 해전(Battle of Trafalgar)에서 이름을 땄다. 기념탑 맨 꼭대기에 서 있는 이가 넬슨 제독이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다. 광장 정면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고 아래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지키고 있다. 이 동상들의 원재료가 프랑스 함대의 대포 등을 녹여 만들었다는데 프랑스 방문객들은 난처할 것 같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수많은 관광객, 시민, 연인들이 일 년 내내 이 광장을 채운다.
광장 북쪽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와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이 있다. 입장은 무료이며, 엄밀히 이야기하면 기부금제로 운영된다.
트래펄가 광장 네 귀퉁이 중 한 곳은 동상이 설 자리가 비워져 있다.
앞으로 나타날 영웅의 자리다.
트래펄가 광장 네 귀퉁이 중 한 곳은 동상이 설 자리가 비워져 있다. 앞으로 나타날 영웅의 자리다.
영국 여왕의 주거지, 버킹엄 궁전
BUCKINGHAM PALACE

근위기병대의 강렬한 붉은 의상과 투구 장식이 인상적이다. 왕정체제와 귀족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 영국의 매너와 격식은 전통과 어우러져 세계 표준이 되었다. 본래 귀족 문화라는 게 18세기 신흥 부르주아들이 출현해 어쩔 수 없이 동거를 하면서, 그들만의 ‘우아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문화코드로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상류층만의 독특한 ‘무언가’는 분명 존재한다.

다이애나비의 흔적을 간직한 켄싱턴 궁전
KENSINGTON PALACE

켄싱턴 궁전은 하이드파크(Hyde Park) 서쪽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는 그녀를 기리는 추모 포스터와 사진, 꽃 등이 아직도 끊이질 않는다.

의회 민주주의의 원류, 국회의사당
HOUSES OF PARLIAMENT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옆에 있는 세계 민주주의의 산실이며, 명실상부한 영국의 상징 건물이다. 영국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모델과 같은 국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왕권과 귀족 사이의 갈등, 수많은 정쟁과 피비린내 나는 파벌싸움, 타협과 양보의 결과가 오늘날 영국식 민주주의로 안착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위치한 타워, 빅 벤(Big Ben),
높이 약 96m에 이르는 이 시계탑은 세계표준시를 가리킨다.
런던을 한눈에! 런던아이
LONDON EYE

비가 갠 뒤 런던아이 위로 쌍무지개가 떴다. 자세히 보면 아래 무지개와 위 무지개의 색깔 순서가 거꾸로다. 무지개 형성의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런던아이는 템스 강(River Thames)변 주빌리 가든(River Thames) 내에 있다.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이 새천년을 기념해 만들어 2000년에 개장했다. 커다란 자전거 바퀴가 회전하면서 런던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30분이 걸린다.

인류 문명의 보물창고, 대영 박물관
BRITISH MUSEUM

1759년 시민들에게 문을 연 최초의 박물관. 그리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고고학 유물들이 가득하다. 보유한 책도 5만여 권에 다다른다. 입장료는 물론 무료다. 서른 번은 넘게 이곳을 드나들었던 것 같다. 동서고금의 문명의 흔적들을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이집트 전시실.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Egyptian Museum)을 온 것 같다. 하루 종일 봐도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면, 목표를 정해놓고 관람 하는 게 좋다. 필자의 경우에는 페르시아 유물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스 로마 컬렉션 또한 대영박물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 중 하나다. 영국인 토마스 브루스 엘긴(Thomas Bruce Elgin)이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일부를 떼온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를 정당하게 구입했지만, 거의 헐값에 들여와 아직도 그리스 정부와 소유권 분쟁 중이다. 영국 정부는 엘긴 마블스를 세계 관광객들이 공짜로 관람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정당히 구매했고 과학적으로 잘 보존하고 있다는 등의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걸 영국이 다시 전리품으로 뺏어온 로제타 석(Rosetta Stone)진품.
현대예술의 산실,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얼핏 봐도 미술관 같지 않다. 화력발전소가 미술관으로 변모한 것이다. 19세기 말 제당업으로 큰 돈을 번 부자 헨리 테이트(Henry Tate)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뉴욕, 파리와 더불어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등용문이다.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작품이 전시돼 런던 방문 시 필수 방문지가 되었다. 미술관 6층 카페는 템스 강 건너편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최고의 뷰 포인트다.

낙서판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돔, 세인트 폴 대성당
SAINT PAUL’S CATHEDRAL

1666년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 후 1708년 새로 지어진 성당으로, 시티 지역의 대표 성당이다.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한 밀레니엄 다리(Millennium Bridge)가 만들어지 면서 템스 강을 가로질러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곧바로 연결됐다. 지하성당엔 나폴레옹(Napoleon)을 이긴 아서 웰링턴(Arthur Wellesley Wellington) 장군,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 2차 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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