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십중팔구 경복궁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근정전(勤政殿)을 먼저 꼽으실 거예요. 하지만 근정전 못지않게, 아니 되려 건물과 주변 풍광까지 어우러진 경복궁 최고의 명소는 따로 있습니다. 근정전 서쪽 행각을 빠져나오면 넋을 잃게 만드는 빼어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요. 궁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 그 장한 규모 하며 호젓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바로 경회루(慶會樓)입니다. 눈부신 가을날의 경복궁 하늘은 얼마나 높고 푸르렀던지… 물 위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번잡한 세상 시름마저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그 옛날 석공의 기교를 담은 경회루 돌기둥
북쪽만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을 뿐 경회루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참 멋집니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예술이 되는 풍경 있잖아요. 그런데 한때 경복궁에서 살다시피 했던 어느 미술사 학자에게는 경회루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을 지어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기둥이었어요. 바깥으로는 사각기둥 24개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안쪽으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민흘림기둥이 가지런합니다. 누각 아래로 들어가서 보면 돌기둥에서도 이런 감동을 얻을 수 있구나 싶어지지요. 그 옛날 석공은 어찌 저리도 큰 화강암 덩어리를 깎고 다듬었을까요.
경회루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암 주열
이토록 아름다운 경회루 돌기둥의 멋을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이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란 책으로 유명한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선생입니다. 한국의 미(美)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지녔던 선생은 경회루 돌기둥이 주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더할 바 없이 감동적인 글로 남겨놓았지요.
이렇게 시원스럽고 엄청난 화강석 네모기둥의 주열이
또 어디에 있는지 나는 그 예를 모른다.
(중략)
쩨쩨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으면서 답답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크기도 너그러운 아름다움과 멋의 본보기를
우리는 이 화강석 주열에서 역력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향정(下郷町)
경복궁 내 숨은 근대의 산물, 하향정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회루를 떠나려는 발길을 붙드는 것이 또 있습니다. 경회루 왼쪽으로 연못 건너편에 자그마한 정자 한 채가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지요. 하향정(荷香亭)입니다. 근처 연못 위로는 나무배 한 척까지 근사하게 떠다닙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문제는 이 정자가 조선 왕실의 유산이 아니란 점입니다. 하향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지은 겁니다. 낚시를 유난히 좋아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쉼터로 말이에요. 실제로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도 남아 있으니까요.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궁궐 안에다 버젓이 낚시터를 지어 놓고 경회루 일대를 개인 휴양지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하향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의 기준 시점은 이 글의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중건한 1888년에서 1907년 사이입니다. 이 시기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하향정은 철거해야 마땅합니다.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대책을 촉구했건만 2013년 문화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그대로 두라고 결정합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건물 자체에 역사성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그 뒤로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철거해서 내버리자는 게 아니라 적절한 다른 위치로 옮기자는 게 과연 무리한 요구일까요. 경복궁 복원의 ‘원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정전(修政殿)
수정전 앞 말채나무에 깃든 사연
경회루 권역을 떠나기 전에 가볼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경회루 남쪽에 수정전(修政殿)이란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요. 세종 때 집현전으로 쓰였던 유서 깊은 공간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고종 때 다시 지어져 대한 제국의 내각 건물로 두루 사용된 곳입니다. 지금은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고종 때에는 주변으로 200칸에 이르는 각종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고 해요. 앞마당이 제법 널찍해서 요즘은 야외 공연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더군요. 바로 이 수정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보입니다. 이름은 말채나무. 봄에 늘어지는 가지로 말채찍을 만들어 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수정전 앞뜰에서 자라고 있는 말채나무 두 그루
그런데 원래는 지금 자리가 아니라 수정전 건물 앞 계단 사이에 70~80살 먹은 말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고 해요. 국내 최고의 궁궐 나무 전문가인 박상진 선생이 쓴 <궁궐의 우리 나무>란 책에 바로 이 수정전 말채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1999년에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수정전 계단 사이에 자라고 있던 말채나무를 잘라내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하는데요. 당시 문화재청이 제시한 역사적 근거는 이렇답니다. 첫째, 왕을 해하려는 자객이 나무에 가려 안 보일 수 있다. 둘째, 건물과 나무가 일직선상에 있으면 문 밖에서 건물을 볼 때 한자로 문(門)에 나무(木)가 겹쳐져 한가롭다는 뜻의 한(閑) 자가 되어 나라가 번창할 수 없다. 셋째, 담장 안 한가운데에 나무가 있으면 한자로 담장(口)과 나무(木)가 겹쳐져 곤란하다는 뜻의 곤(困) 자가 되니 역시 나라에 이롭지 않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이런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수정전 앞 말채나무 두 그루가 더 특별하게 보입니다.
교태전(交泰殿)
경회루 권역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아 다시 근정전 뒤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지난 글에서 눈높이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건물 위만 쳐다보면 아래가 안 보인다고요. 궁궐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비결은 바로 뒤를 보는 겁니다. 대개 궁궐을 이곳저곳 돌다 보면 건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앞만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정작 건물 뒤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더 좋은 것들은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지요. 근정전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에 만나볼 보물은 교태전 뒤에 있습니다.
아미산(峨眉山)
아미산 위 자리한 작은 보물
왕비가 잠을 자는 곳이었던 교태전 뒤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을 아미산(峨眉山)이라 불렀지요. 보시는 것처럼 차곡차곡 단을 쌓아서 만든 인공 정원입니다. 교태전은 왕비가 자는 곳이었으니 당연히 온돌에 불을 때서 난방을 했겠지요. 당연히 연기를 밖으로 빼줄 굴뚝이 필요했을 거고요. 그런데 우리 조상은 이 굴뚝 하나조차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태전 굴뚝은 모두 4개입니다. 조선시대 내내 있었던 게 아니라 1865년 폐허가 된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만든 거랍니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굴뚝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지요.
아미산 굴뚝만 따로 보물 제81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미산 굴뚝의 핵심은 육각으로 쌓아올린 몸체의 각 면에 그려진 문양들입니다. 가운데 큰 그림에는 대나무,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등 갖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그 위아래 작은 그림에는 봉황이며 박쥐, 학, 사슴 등 온갖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왕비가 잠을 자는 공간이었으니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기둥 위에는 제법 서까래에다 기와까지 얹었으니 기둥 하나하나 어엿한 집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위에는 또 다른 작은 기와집이 앉아 있군요. 연기가 빠져나가는 집이라 해서 연가(煙家)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물건입니다. 저 굴뚝 꼭대기에 종종 모여서 앉아서 마치 여기 나 좀 봐 주세요, 손짓하는 것만 같아 절로 미소가 나옵니다.
아미산 굴뚝 연가(煙家)
이러니 경복궁을 좀 가봤다는 분들은 아미산 정원과 굴뚝의 아름다움을 침이 마르게 칭찬했지요. 앞에서 인용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도 아미산 굴뚝에 매료돼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경복궁 역사의 구석구석에 백성들의 고혈이 엉겼다 하지만,
한 가닥 불평도 불만도 비끼지 않은 이 멋진 굴뚝들의 쌓음새를 보고 있으면
‘참 우리 백성은 좋은 백성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따뜻이 해 준다.
그뿐인가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 역시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복궁이 세계 어느 나라 궁궐보다 인간적 체취가 느껴진다는 것은
아미산 꽃동산 같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자경전 꽃담장과 경회루 연못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 석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KBS기자.
부족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틈틈히 책을 읽으면서
미술관과 박물관, 전국의 문화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 예술 분야 전문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