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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웨일즈 3편]
웨일즈의 전통을 듬뿍 간직한 곳,
웨일즈 서북부
이 환

전편에서 웨일즈의 고성 마을들과 책마을 헤이온와이, 아서 왕의 전설을 가진 스노도니아를 여행했다. 마지막으로 지중해 이탈리아를 흠모해 만든 포트메리온과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는 방고와 앵글시 섬을 둘러본다. 그리고 아일랜드로 건너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서북쪽 끝 항구도시 홀리헤드를 소개한다.







전에 백화점 그릇가게에서 포트메리온(Portmerion www.portmeirion-village.com)이란 브랜드를 발견하고 이렇게 예쁜 도자기를 만드는 마을은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이곳을 만든 주인공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어릴 적에 이주한 건축가 윌리엄스 엘리스(Sir Williams Ellis·1894~1978)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마을 포르트피노를 동경한 나머지 1926년부터 이곳을 지중해풍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흔이 되도록 고치고 짓고 또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고 하니 그의 열정에 숙연해진다. 입구의 조각장식 문을 들어서면 천국의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원색으로 칠해진 벽과 지붕들, 우아한 정원과 분수, 대리석상 수십 개가 여행자를 맞는다. 포트메리온 도자기도 알고 보니 그의 딸 수잔이 만든 브랜드다.






 

웨일즈 서북쪽 본토의 마지막 큰 도시는 방고(Bangor)다. 웨일즈대학이 있어 젊은 기운이 가득하다. 로마군이 침공했을 때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전투지여서 유적들도 많고 고풍스럽다. 이 도시에서 브리타니아 다리를 건너가면 앵글시 섬에 다다른다. 이 섬은 웨일즈와 잉글랜드를 통틀어 가장 큰 섬이다. 


방고에서 다리를 건너 5분정도 차로 달리면, 작은 마을 기차역이 있다.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기차역 푯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1848년 앵글시 섬에서 첫 번째로 생긴 이 기차역 이름은 숨이 찰 정도로 길다. 



세계적으론 모르겠지만, 최소한 영국에서 가장 길다. 뜻은 ’빠른 물살 소용돌이 옆 흰 개암나무의 구덩이 속 성 마리아 교회와 붉은 굴의 성 티실리오 교회‘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간단히 ’Llanfair PG‘라고 부른다.








웨일즈 본토에서 앵글시 섬을 가는 데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메나이 현수교(Menai Suspension Bridge·1826년 건설), 다른 하나는 브리타니아교(Britania Bridge·1850년)다. 브리타니아교 아래로는 기차 철길이 있다. 


모터보트를 타고 메나이 해협을 둘러보았다. 섬 주변을 둘러보는 데는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 물개들이 한가로이 모여 햇볕을 쬐는 바위자락이 가장 인기 있어 보인다.


이 지역은 옛 드루이드교의 흔적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고대 켈트족의 믿음으로 알려진 이 종교는 드루이드라는 사제들이 지도자 역할을 했는데 신전을 만들지 않았고 문헌도 남기지 않았다. 다신교에 영생불멸을 믿었고 마법과 주술이 발달했다. 숲 속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람을 죽여 피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이런 제의식 때문에 로마군이나 잉글랜드군이 침입했을 때 많은 핍박을 받았다. 잉글랜드 남부의 거석유적인 스톤헨지(Stonehenge)도 이들이 만들었고 할로윈이란 서양풍습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앵글시 섬에서 아일랜드로 넘어가는 관문이 바로 홀리헤드(Holyhead) 항구다. 페리로 3시간 15분, 쾌속선으로 1시간 20분이면 더블린에 도착한다. 대합실에서 아일랜드로 수학여행 가는 전통 옷을 입은 웨일즈 여학생들을 만났다. 


앙증맞은 모자와 레이스 자수로 장식된 숄에 체크치마를 단정히 입은 모습이 정감 있다. 검정색의 기다란 ‘웰시 모자’는 체크무늬 앞치마와 함께 이곳 전통의상의 특징. 시골 아낙네들이 주로 입었던 옷 양식이 전통의상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여행(旅行)의 한자말은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간다’라는 의미다. 영어 ‘travel’의 어원은 좀 다르다. ‘travail’에서 나왔는데 노동, 고생을 뜻한다. 여행 장비와 교통수단이 부족했던 먼 옛날 바깥나들이는 고행 길이었을 것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를 거쳐 여기까지 오는 데는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땅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한편으로 기쁨이었다. 이제 포크음악의 본고장, 아이리시펍과 기네스의 나라 아일랜드로 향해간다.





영국관광청 웹사이트   

www.visitbritain.com  


웨일즈관광청 웹사이트 

www.visitwa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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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신화로 가득한 그리스 크레타 섬으로 떠나다
이 환
#이환작가


에게 해(Aegean Sea)를 건너신화의 섬으로

이웃 섬 산토리니(Santorini)에서 크레타(Crete)로 넘어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에게 해를 건넌다는 것은 다른 바다 여행과 느낌이 달랐다. 파도를 가르며 크레타로 가는 뱃길 내내 가슴이 설렜다.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에서 주인공 영국 작가 바실과 조르바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 저편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느낌을 느꼈을까? 그 책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무덤이 있는 곳, 무수한 신화를 간직한 곳. 바로 크레타다.

에게 해(Aegean Sea)!이 이름도 그리스 신화에서 연유한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의 아버지인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egeus)가 에게 해의 근원이다.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임신한 아내를 떠나며, 칼과 신발을 커다란 돌 밑에 묻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 돌을 옮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 징표와 함께 자신에게 보내라 부탁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전설의 영웅 테세우스다. 테세우스는 성년이 되어 아버지가 있는 아테네로 갔다. 마침 아테네는 크레타와의 전쟁에서 패해 매년 괴물에게 바칠 공물로 7명의 처녀와 7명의 총각을 보내야 했다. 테세우스는 크레타로 건너가 모험 끝에 미궁 속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를 죽이고 아테네로 온다. 문제는 테세우스가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성공하면 흰 돛을, 실패하면 검은 돛을 단다고 약속했는데, 승리에 취해 깃발 바꾸는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검은 돛을 단 채로 돌아오는 배를 본 아버지는 절망에 빠져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비운의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이름이 이 바다라니 기구하다.

화려한 문명과 슬픔의역사가 공존하다

에게 해 초여름 바람을 맞으며 네 시간 만에 다다른 섬 크레타. 기대와 달리 여느 섬보다 소탈하고, 한적하다.이라클리온(Iraklion) 항구는 이 섬의 중심지와 가장 가까운 항구다.

크레타는 화려한 문명의 발상지지만 에게 해의 이름만큼 슬픈 땅이기도 하다. 크레타는 1211년부터 베네치아로부터 지배를 받았다. 베네치아인들은 항구를 바라보고 구시가지를 감싸는 역삼각형의 성벽을 쌓았다. 그 이름도 ‘베네치아 성벽(Venetian city walls)’. 도시를 에워싼 5km의 요새는 오늘날 운치 있는 경관조명을 받으며, 여행자들에게 지나간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이후, 크레타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다. 1645년 크레타 전쟁 이후다. 그리고 1913년에서야 그리스 왕국에 돌아오는데, 아직도 터키계와 그리스계의 앙금은 남아있는 듯 하다.

이라클리온 구시가지 중앙에는 베니젤로 광장(Plateria Venizelou)이 있다. 이곳 출신 정치인 이름이라고 한다.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물이 흐른다. 모로시니 분수(Morosini Fountain)다. 분수를 떠받치는 사자들의 모습이 단연 인상적이다. 15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왔다고 한다.

한여름 이글대는 태양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거리엔 좀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든 파격 세일 표시가 있어 물가가 서울보다 저렴하다. 이곳 역시 아테네처럼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태양이 서쪽 바다로 넘어갈 즈음이다. 다들 어디에서 있었는지 관광객과 섬사람들이 삼삼오오 항구 앞 레스토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에게 해 연안에서 난 과일과 해산물들이 풍성하다.

전설 속의 미궁,크노소스 궁전(Palace of Knossos)

크레타 섬의 최고 명소는 역시 크노소스 궁전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역사책에 등장하는 인류문명의 발상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그중의 하나가 그리스 문명보다 앞서 번창했다는 미노아 문명(Minos Civilization)*이다. 그리고 그 흔적이 바로 크노소스 궁전이다. BC 3650~BC 1170까지 융성했던 최초 유럽 문명의 발상지, 크레타 섬의 해양문명인 미노아 문명은 그리스 본토로 넘어가 미케네 문명(Mycenaean Civilization)*으로 발전됐다. 서양문명의 한 축이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노아 문명

기원전 2700~1500년경 동안 번성한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있었던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 20세기 초에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미케네 문명

기원전 2000년경 북부 산지에서 남하한 아카이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구축한 고대 그리스의 해양 문명. 기원전 1600년경부터 크레타 문명을 받아들여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하여 기원전 1500년경에 이르러 지중해 동부의 해상권과 교역권을 모두 장악하였다.

크노소스 궁전은 이라클리온 항구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도 멀지 않다. 이 궁전은 BC 1700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낮은 언덕산 아래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그 당시 24,000 제곱미터로 최대 5층 높이의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무려 1,300여 개의 방이 있었다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 리비린토스(Libirinthos)가 충분히 있을 법하다.

미궁 속 괴물 이야기는 이렇다. 먼 옛날 제우스는 에우로페(Europe, 유럽이란 단어의 기원이 이 이름이다)라는 여인에 푹 빠져 그녀를 납치해, 크레타로 날아와 세 아이를 낳는다. 그 아들 중 하나가 미노스(Minoan)다. 제우스는 이후 에우로페를 크레타 왕인 아스테리온(Asterion)과 결혼시키고 자식들까지 양자로 준다. 이후, 성장한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기도하고 황소를 얻은 후 크레타의 왕위에 오르는데, 포세이돈에게 받은 황소를 다시 제물로 바치겠다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Pasiphae)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왕비는 왕궁의 설계자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Daedalus)에게 부탁해 나무로 황소를 만들어 매일 황소와 노니는데,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지하에 복잡한 미궁을 만들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고 매년 처녀와 총각을 제물로 바친다. 이 미궁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미로 감옥이지만 테세우스(Theseus)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성공적으로 미로를 빠져나온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에 반한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Ariadne)가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실타래의 실을 이용해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왔다.

신화의 흥미진진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이달로스는 이 일이 발각돼 아들 이카로스(Icarus)와 함께 탑에 갇힌다. 천하의 발명가는 아들과 함께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아들 이카로스는 태양쪽으로 너무 높이 날아 날개가 녹으며 추락해 죽게 된다.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로 도망가지만, 나중에 미노스가 보내온 군사에 의해 죽게 된다.

이곳의 물은 10km 떨어진 곳에서 흘러온다. 그 먼 옛날에 흙으로 구운 도관(테라코타, Terracotta)이 이미 발명됐으니, 당시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고도 남는다. 왕의 방에는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고 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곳 유적 역시 이탈리아의 폼페이처럼 지진과 화산폭발로 땅속에 묻혀있었다. 폼페이보다 훨씬 오랜, 수천 년 동안 묻혀있었던 걸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가 발굴에 성공한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세상에 선사한 또 다른 영웅이다.

신화와 현실의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실제 그리스 신화의 상당부분이 실제 유적지로 발견되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만 전해내려 온 이야기를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발굴해 고대도시 트로이가 실제 존재했음을 세상에 보이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을 확장해간다면 정말 이 곳에서 제우스(Zeus)가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Ouranos)와 땅의 신 가이아(Gaea) 사이에서 크로노스(Cronos)가 태어난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쫓아내는데 우라노스는 <너도 결국 아들에게 쫓겨나게 될 것이다>라며 저주를 남긴다. 이를 두려워한 크로노스는 나중에 아내 레아(Leah)가 아이들을 낳는 즉시 삼켜버린다. 나중에 제우스를 임신한 레아는 아이 대신 돌덩이를 주고, 아들 제우스를 크레타 섬 동굴에 숨긴다. 이 아이가 신들의 신, 제우스다. 제우스는 성장해 아버지 크로노스를 찾아가 몰래 구토제를 먹여 삼킨 아이들을 다 토해내게한다. 그들이 하데스(Hades), 헤라(Hera), 포세이돈(Posseidon), 테메테르(Demeter) 등 유명한 그리스의 신들이다. 제우스가 숨어 자랐다는 그 동굴이 크레타 섬의 딕티안(Dikteon) 동굴이다. 이라클리온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60km 떨어져 있다. 오늘날도 매우 신성한 동굴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궁전의 백미는 벽에 장식된 프레스코화다. 돌고래, 소 같은 생동감 넘치는 동물들의 움직임과 다양한 남성,여성들의 모습으로 당시 문화와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여름의 태양은 이 곳도 예외 없이 뜨겁게 비춘다. 더위 속에서도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를 찾아서

이곳에 힘들게 오게 된 이유 중 하나!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 크레타 출신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로 세상에 알려진 작가. 그의 무덤은 이라클리온 도심에서 2km 떨어진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다.

베네치아 성벽 옆 마르티네고 요새(Martinego Bastion)다. 2007년, 그리스 정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기념 주화를 발행했을 정도니 그 유명세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간 언덕 끝, 성벽 옆 정원이다. 의외로 소탈한 무덤에 오히려 방문자가 놀랐다. 나무 십자가 하나. 그리고 묘비 하나. 그리고 돌무덤! 바로 옆 잔디 위엔 아내 엘리니 사미우(Eleni Samiou)의 묘가 있다. 좀 더 붙어있었으면 좋았을걸…

그의 소설은 1964년 미카엘 카코야니스(Michael Cacoyannis)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 유명해졌다. 안소니 퀸(Anthony Quinn)이 자유인 조르바 역을 맡았다. 능청스럽고도 세상에 초연한 그 조르바!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 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그는 소설에서 수많은 조르바의'어록'을 남겼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자유(自由)다.-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그의 유명한 묘비명, 모르고 왔더라면 해독 불가의 돌덩어리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낮의 더위를, 주변의 잡상을 떨칠 명문이다.

에게 해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문명의 흔적을 둘러보면서 또다시 머릿속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누군가 그랬다. 모든 것은 변한다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고…




이  환


'유랑'을 중심주제로 오지를 탐닉하는 지구별 여행자다.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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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꿈, 역사 그리고 신들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
이 환
#이환작가



Introduction


수도 아테네 Athens 위치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의 남단 언어 그리스어 인구 1077만 5643명(2015년 기준) 정식명칭 그리스공화국 Hellenic Republic : Greece 종교 그리스정교, 이슬람교

꿈의 도시·역사의 도시·신들의 도시

아테네
ATHENS

오늘날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는 서구의 제도와 문화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다. 그 서양정신문화 유산의 원류는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학교 다닐 적, 모든 사회, 세계사 교과서의 초입 부분을 장식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알았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봐도 철학, 정치, 의학, 문학, 예술 등 인간을 아우르는 거의 모든 영역의 원천은 바로 이 곳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아테네. 인류 정신사의 기나긴 여정의 총집합이지만, 조금이나마 살펴보기로 하자.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
아크로폴리스 Acropolis, 신들의 집

신화(神話,Myth)는 그저 상당수 영어단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 상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론하고, 신들의 희로애락 이야기에서 삶의 통찰을 얻고 지혜를 얻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상식 이상인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신화 속에 등장한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 트로이 등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실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냥 허구로만 볼 일은 아니다.

내게 어떤 단어든 물어봐.
어떤 말이든 그리스말에서 생겼다는 걸 증명해줄 테니까
-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중 -

그리스 수도 <아테네>가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수호신이 〈아테나〉 여신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옛 이름은 <아테나이>, 즉 <아테네 여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을 아크로폴리스(Acropolis)라 불렀다. 아크로폴리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도시국가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새였지만, 종교적인 행사장이기도 했다. 각 도시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그 도시의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신의 집이 있었다.

석회암반으로 구성된 해발 156m의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파르테논 신전이 우뚝 서 있다. ‘처녀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바로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다. 이곳은 신성불가침 지역 그 자체였다. 가로와 세로가 1:1.682의 황금비〔黃金比〕로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다.

아크로폴리스는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항상 복잡하다. 입구를 통과하자 거대한 근육질의 신전이 파란 하늘을 지붕 삼아,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답고 장중하며 위엄있다. 46개의 기둥은 지름만 해도 1.5~1.9m, 한 번에 안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13미터 높이의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 상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신전 안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모든 것은 파괴되고 사라져버렸다. 고대 여행가들의 기록에는 목조상에 금박을 입혔고, 얼굴과 손발만이 상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상당수 벽장식 등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엘긴스 마블(Elgin’s Marble)로 알려진 정교한 부조장식은 1802년 헐값에 당시 그리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반입됐다. 오늘날 그리스 정부는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을 반환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파르테논 외에 현재 남아 있는 신전으로는 아크로폴리스 입구 쪽 아테나 니케 신전과 왼쪽에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 그리고 아테나 폴리아스 신전 및 포세이돈 신전 등이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신상들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신전 아래에는 고대의 시장 및 광장인 〈아고라〉가 있다.

제우스의 딸로 태어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는 완전 무장한 채 제우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테나는 남성에게 필요한 기술인 농경, 원예, 항해술부터 여성에게 필요한 기술인 길쌈, 베 짜기, 바느질 기술까지 관장했다.
왜 하필 이곳이 아테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테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이 도시의 주인 자리를 두고 겨루었다. 이들을 제외한 올림푸스의 신들(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데메테르, 헤스티아, 아폴론, 헤르메스, 헤파이토스, 아레스, 디오니소스)은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선물을 주는 이에게 이 도시를 주겠다고 했다. 포세이돈은 소금호수(일부 기록은 말)를,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솟아나게 해 각각 선물로 내렸다. 신들은 소금과 올리브를 비교해 역시 올리브가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판정, 이 도시를 아테네에 주었다. 이 도시의 이름을 아테네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올리브나무인 것이다.
아직도 파르테논 옆 에레크테이온 신전 옆에는 몇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많은 관광객이 그리스인들에게 올리브가얼마나 중요한 작물인 걸 아는지 모르는 지… 그 나무들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들의 신, 제우스 신전
Temple of Zeus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신전들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정면 쪽에서 가장자리를 향해 쭉 걸어나가면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면 신전 터가 하나 보인다. 얼른 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덩그러니 기둥들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이 바로 아테나 여신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우스 신전은 높은 언덕 아래에 있는 평지에 세워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인다.

막상 아크로폴리스를 내려가 제우스 신전의 성역에 들어서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다. 실제로 제우스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크고 넓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이 총 46개였다면 제우스 신전의 기둥들은 104개나 된다. 또한, 파르테논의 기둥 높이가 11m인 데 비해 제우스 신전의 기둥 높이는 17m나 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기둥은 고작 16개뿐이다.

헤로데이온 Herodeion
예술의 전당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푸른 숲으로 싸인 극장이 보인다. 기원후 160년경에 로마의 귀족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아내 레기나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극장이다. 당시엔 지붕과 벽이 가득하고 무려 6000명이나 수용했다니 그 규모가 엄청난 극장이다.

이곳 역시 복원이 매우 잘 돼 매년 여름엔 야외공연이 열린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이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스팅, 엘튼 존 등 세계적인 가수, 연주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이다. 그리스 국민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의 고별공연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조수미씨도 2005년 호세 카레라스와 공연했다고 하니 명소임은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 국가의 중심,
삶의 현장 아고라 Agora

옛날 그리스인들은 이곳 아고라(Agora)에서 철학, 정치 등을 논했다.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거리였다. 그리스어로 '함께 모이다'라는 동사에서 나왔고 집회 또는 모임 장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고대 아테네의 민회가 열렸던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지 토론이나 재판 및 공적 업무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고 시장의 기능도 하던 도시의 중심가였다. 즉, 아고라는 아테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이자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정치와 경제 및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대의 아고라는 여기저기 돌무더기만 눈에 띄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금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헤파이스토스 신전뿐이다. 옛날에 아고라에 있었다고 말해지는 아폴론 신전 및 아레스 신전은 주춧돌도 찾지 못할 정도로 흔적조차 없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종교적인 성지고,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꽃핀 곳은 다름 아닌 아고라다.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정치와 철학은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한 복원,
아탈로스의 스토아 Stoa of Attalos

다른 건물에 비해 멀쩡하고 멋졌다. 복원이 잘되어 그리스식 주랑이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헬레니즘에 의해 번성을 누렸던 페르가몬 왕국의 아탈로스 2세가 아테네 유학을 마치고, 감사의 뜻으로 아테네에 헌정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록펠러 2세에 의해 옛 양식과 형태를 그대로 살려 복원되었다. 그리스의 유적 중 유일하게 완전 복원된 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 그리고 현대
수 천년의 시간이 공존하는 아테네 Athens

아테네의 밤이 깊어지면 여행자들은 주로 오모니아(Omonia) 광장 부근으로 모인다. 이곳에 많은 호텔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오모니아 광장은 현대 아테네인들의 경제 중심지다. 도시의 이름은 '일치' 혹은 '동의'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사람이 출퇴근하기 위해 북적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모니아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타그마(Syntagma) 광장이 있다. 신타그마는 그리스어로 '헌법'을 의미한다. 이곳에 국회 의사당 건물이 있다. 1843년 그리스 최초의 헌법을 제정한 후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 시내의 중심이다. 1456년부터 오스만제국의 지배에 항거한 독립전쟁의 전사자들과 1, 2차 세계대전 전사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이들도 모셔져 있다. 무명용사의 무덤 뒤 벽엔 비문이 있는데 페리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 희생장병을 위한 추도연설문 중 일부를 발췌한 명문장이다.

만들어졌지만 아직 비어있는 관 하나가 있다.
무명용사의 관. 용감한 자들에게는
어디나 무덤이 될 수 있다.

대통령 근위대인 ‘에브조니(Evzones)는 185cm 이상의 건장한 청년만 선발하는데 빨간 베레모에 화려한 금박자수가 박힌 조끼와 주름 잡힌 치마, 검은색 방울이 달린 신발이 눈길을 끈다. 에브조니란 이름도 오스만제국 지배 때 저항했던 산악 게릴라의 이름과 복식에서 유래됐다.

수많은 시민들이(이 중에 관광객도 많으리라) 삼삼오오 식당 옆 노변을 가득 채워 식사하랴 이야기하랴 분주하다. 하루의 고단함을 다 내려놓고 좋은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항상 이곳에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경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거의 매일같이 신타그마 광장은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아테네에 머물면서 깊은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이 위대한 문명을 이룬 그리스인들은
어디 가고 초라하고 역사의 무게에 찌든
저 농부들만 남았는가?

장기 경제침체로 그리스는 전체적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외곽 벽은 곳곳에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백화점 세일 폭은 50~70%로 놀랄 정도로 높다.

그리스 신의 전설이 숨쉬는
리카베토스 언덕 Lycabettus Hill

숙소에서 가장 높이 보이는 언덕. 아테네 어딜 돌아다니든 눈에 띄는 언덕, 리카베토스 언덕이다. 저녁 무렵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이 언덕에 올라섰다. 해발 277m로 아테네 중심부에서는 가장 높은 언덕이다.

저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야간조명과 어울려 위용을 자랑한다. 도시 끝자락 피레우스 항구와 에게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척박한 땅에서 그리스인들은 수천 년 동안 오늘날 인류의 기초자산을 일구어왔다. 아테네에서 보았던 수많은 돌은 그저 단순한 파편들이 아니다. 말없이 지천으로 깔린 옛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먼 옛날의 화려함을 떠올린다. 인류는 그렇게 땀 흘리고 고민하며 정신과 물질세계를 서서히 진화시켜왔다. 인류의 무한한 상상력, 가능성과 함께 인간 존재의 왜소함과 겸손함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한 여행자는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킨 채 이렇게 서 있다.
한바탕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친다.아!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철학을 꽃피운 가장 아름다운 도시 아테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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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의 1주일 (2)
김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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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환학생 자취 경력이 있는 동기 덕분에, 매일 아침 맛있는 브런치를 먹을 수 있었는데요. 근처 마켓에서 연어와 치즈, 올리브 조림을 사와 숙소에 준비된 ITTALA 식기 위에 예쁘게 플레이팅 하여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4일차 Rent a bike

현지인 처럼!

오늘은 자전거의 도시, 코펜하겐에서 현지인처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뇌레포트 역 근처의 로젠버그 사이클러라는 바이크 대여숍에서 약 2만원으로 6시간동안 자전거를 대여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전거가 저희에게 얼마나 멋진 풍경을 선사해줄 지 전혀 몰랐죠!

4일차 Rent a bike

현지인 처럼!

코펜하겐은 전세계에서 사이클링에 가장 친화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도시차원에서도 더 안전한 사이클링을 위해 노력 중인데요. 신호대기구간에 사이클러가 편하게 발을 내릴 수 있도록 footplates를 설치하고, 바이크 차선을 넓히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사람들의 35%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하루 평균 백만km 이상을 페달링 한다고 하니… 코펜하겐 사람들의 바이크 사랑을 짐작하실 수 있으신가요?!


쇼핑요정도 코펜하겐에서 자전거를 타보니 이곳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전거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페달링을 하며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활력 넘치는 마켓, 푸른 공원의 풍경 등 도시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특히 운하가 널려있는 이곳의 특성 탓에 다리를 건널 때 마다 감동을 느꼈답니다. 물아일체의 경지라고나 할까요!

코펜하게너들이 자전거를 얼마나 패셔너블 하게 타고 다니는지 궁금한 분들은 아래 사이트의 스냅샷을 구경해보세요. http://www.copenhagencyclechic.com/


코펜하겐 자전거 가이드는 아래 책을 참고하세요.
(위에서 소개드린 미드 센추리 디자인 서적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랍니다.)http://www.thamesandhudson.com/City_Cycling_Copenhagen/9780500291023

4일차 Rent a bike

현지인 처럼!

자전거 요정의 핫스팟 추천

제가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코펜하겐의 사이클 스팟은, 뇌레브로 지구입니다. 이 근처에는 공원이 많아서 어느 쪽으로 페달을 밟던 성공적입니다. 자전거를 주차시켜 놓고 햇살 좋은 날 푸른 잔디에 그냥 누워보세요. 코펜하겐을 마음 속 깊숙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근처는 최근 코펜하게너들에게 가장 힙한 거리이기도 한데요. 뇌레브로 지구의 Jaegersborggade (예어스보르가드) 거리를 꼭 방문해보세요. 우리나라 한남동 뒷골목 느낌의 핫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Radio 레스토랑, #CMYK kld 갤러리, 덴마크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집이라는 #CoffeeCollective , 미슐랭 NOMA 레스토랑의 #Meyer 베이커리 등등.. 눈과 입이 분명 즐거울 것입니다.


구글 자전거 모드

구글 map 자전거 모드로 모든 것이 해결 됩니다.

자전거를 타다 배가 고플 때 쯤엔 토르브할렌 푸드 마켓에 정차하길 권합니다. 훈제 육류, 해산물, 치즈, 디저트, 스뫼어브뢰(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 커피 등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토르브할렌에 가면, ‘스뫼어브뢰’를 꼭 드셔보세요! 꾸덕꾸덕한 호밀빵 위에 연어, 샐러리, 베이컨, 치즈 등을 올린 덴마크식 오픈샌드위치입니다.

커피 콜렉티브의 아이스 라떼도 꼭 드셔보세요. 편의점 우유에 괜히 “덴마크”가 써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덴마크 우유는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라떼도 정말 맛있습니다. 콜렉티브의 원두 또한 정말 맛있습니다. 옆 집 시나몬 롤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

5일차 현대미술의 정점

루이지애나로 가는 길

이른 아침 숙소 앞에 있는 로푸드 레스토랑에서 건강한 아사이 보울을 한 그릇 먹었습니다. 로푸드란 가열하지 않은 음식으로, 음식의 영양분을 있는 그대로 섭취하는 일종의 웰빙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모델 미란다커가 즐겨 먹는다는 아사이베리와 코코넛, 블루베리를 한 가득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건강하고 활력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코펜하게너들에게 이 레스토랑은 꽤나 인기가 많은가봅니다!
(https://www.instagram.com/42raw/)

몸이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라,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또 찾아갔습니다. 아침은 아사이보울, 저녁은 로푸드 피자입니다. 글루텐 프리 제품으로, 밀가루가 아닌 견과류 등을 사용한 식단을 지향합니다.
(그런데도 맛있는 건 함정!)

5일차 현대미술의 정점

루이지애나로 가는 길

오늘은 저희가 이번 코펜하겐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루이지애나 뮤지엄으로 가는 날입니다. 처음으로 어딘가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날이기도 하구요!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와 신발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루이지애나는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있기 때문에 기차를 타야합니다.

현대미술 조각이 공원에 무심히 펼쳐진 루이지애나 뮤지엄의 푸른 언덕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바다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스웨덴이 있습니다. "너랑 나랑 지금 말도 안되는 곳에 앉아있어!" 테라스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말도 안되게 맑은 하늘 아래서, 스웨덴을 바라보며, 또 한 번의 스뫼어브뢰를 먹었습니다. #냠냠

5일차 현대미술의 정점

루이지애나로 가는 길

루이지애나가 위치한 훔레베크 지역은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딱 35분 거리! 하지만 시내 중심과는 다른 시골 정서가 물씬 풍깁니다.
낮은 지붕의 집들 사이사이로 햇살이 들어오는 풍경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습니다.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소박한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씩 먹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재밌는 점은 덴마크를 지배한 편의점이 세븐일레븐이라는 점인데요, 기차역의 세븐 일레븐에서 패키지가 여심을 저격하는 MATILDE 의 카카오 우유를 한 팩 사서 기차 를 탔습니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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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시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의 1주일
김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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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ENHAGEN
쇼핑요정이간다

인생도시 덴마크코펜하겐에서의 1주일

휴가를 이틀만 내면 1주일이 넘어가는 꿀같은 추석연휴를 기회로, 쇼핑요정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났습니다.


스카이스캐너로 괜 찮은 비행기표를 건져(?) 베이징 수도 공항에서 5시간을 경유하고 10시간이 넘는 장기간 비행을 버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덴마크가 조금 생소한 SSG블로그 독자 분들께, 덴마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넘어가야겠죠?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럽 북부 사이에 위치해 오랫동안 가교 역 할을 해왔는데요, 그래서인지 덴마크 사람들은 다른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에 비해 자유 분방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덴마크는 우리가 잘 아는 “로열 코펜하겐” 이라는 그릇 브랜드에서 연상 되듯이 왕정국가 입니다. 여왕 마르그레테 2세와 그녀의 가족은 현재 코펜하겐에 기거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덴마크와 좀 멀게 느껴지신다면, 여러분이 어렸을 때 한 번은 만져봤을 ‘레고’가 덴마크 브랜드입니다. 덴마크어로 레고(LEg GOdt)는 ‘잘 놀다’라는 뜻이라고 하구요. 면세점에도 레고 시리즈가 들어와 있을 만큼, 국민장난감으로서의 명성을 자랑합니다. 레고 덕후분들께는 성지이기도 하겠네요.

쥬얼리 브랜드 #판도라와 #필그림 또한 덴마크에서 태어났구요, 명품 오디오 #뱅앤올 룹슨, 요즘 핫한 오디오 #VIFA 모두 덴마크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구 디자이너도 덴마크 출신이 정말 많아요.

#아르네 야콥센, #핀율, #한스 베그너 ...

이쯤 되면 쇼핑요정이 왜 휴가지로 덴마크를 택했는지, 그리고 왜 1주일 동안 코펜하겐 밖으로 나올 수 없었는지 아실 것 같습니다.

쇼핑요정의 취향을 저격하는 브랜드가 모두 덴마크 출신이기 때문이죠! 그럼 이제부터 쇼핑요정의 #인생도시가 된, 코펜하겐 여행기 를 지금 여러분께 본격 리포팅 해드립니다.

7:00 PM 도착

제너레이터 호스텔 >
스트뢰에 쇼핑거리 산책

덴마크에는 입사 동기인 다른 한 명의 쇼핑요정2와 함께 떠났는데요. 이번 여행의 컨셉은 “디자인의 천국 덴마크에서, 안구 정화를 하고오자”는 테마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코펜하겐은 정말 멋지고 세련된 도시 였고, 개성있는 상점과 카페, 박물관과 건축물들의 향연을 제대로 누리고 왔습니다.

저희는 코펜하겐에만 일주일을 있는 대신, 숙소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지역을 꼼꼼하게 누벼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이틀은 코펜하겐의 라틴 쿼터 지역에 있는 제너레이터 호스텔에서 묵었는데요, 제너레이터 호스텔(generator- hostels.com/en/)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부 티크 호스텔 체인입니다. "travel in style"을 지향하면서도 "budget"을 생각하는 여행자들에게 적합한 곳이에요. 런던에서 시작했고 암스테르담, 베를린, 바르셀로나, 파리, 코펜하겐, 스톡홀롬, 로마로 확장하고 있구요. 호스텔이 위치한 도시들 모두 아름다운 곳들이죠!

첫 날은 너무 피곤해서 호스텔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스트뢰에 쇼핑거리를 산책했습니다. 요즘 명동 롯데백화점과 판교 현대백화점에 줄줄이 오픈 한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이 바로 이 곳, 코펜하겐 출신입니다. 타이거 코펜하겐을 간단히 눈팅하고, KITKAT 초콜릿 하나가 뿅 꽂혀있는 주먹만 한 콘 아이스크림을 한 입 하고 돌아와서 푹 잤습니다. (숙소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잔에 거하게 취한 건 안 비밀!)

2일차 워밍업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까지
무작정 걷기

둘 째날 얼리버드(가 아닌 시차 적응에 실패한) 두 명의 쇼핑요정은 너무 일찍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아침 5시에 눈을 떠서 뒤척이다가 7시가 조금 넘어 시내 산책을 시작 했다죠. 사실 코펜하겐은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1-2시간 안에 주요 장소를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디로 가자 는 대책도 없이 나와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요. 어쩌다 코펜하겐의 상징적인 항구인 “뉘하운”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생애 대부분을 이 곳에서 보냈을 정도로, 정말 동화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집들은 거짓말같이 아름다웠고, “이 세상에 우리 만큼 귀 여운 집들이 모여있는 곳 봤어?” 하며 줄 지어 있는 풍경에 넋을 잃고 1시간 동안 셔터를 날렸습니다. 원래 뉘하운 항구는 관광객이 굉장히 많이 몰리는 지역임 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아침부터 너무 일찍 부지런을 떤 탓에 거리에 아무도 없더군요. #사진찍기_넘나좋은것!

셔터를 누르다 누르다 지친 둘은 커피나 한 잔 하자며 부둣가의 노천 카페들을 탐방했습니다. 날씨는 또 어찌나 맑던 지 밝은 햇살을 받으며 아이리쉬 커피가 맛있다는 한 카페에 앉아 주문했습니다.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 위에 생크림이 풍성하게 올려져 있고, 생크림 위에는 허니콤이 쿡 꽂혀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꿀이 녹아 커피가 더 달아집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아침에 따뜻한 아이리쉬 커피는 환상의 조합이었습니다.

2일차 워밍업 코펜하겐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으로!

쇼핑요정의 코펜하겐 아이템 01. Magasin 백화점 PB 배스 타월과 마비스 치약

쇼핑 워밍업을 마치고 저희는 또 걷고 걸어서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1시 부터 영어로 도슨트 가이드가 있다고 하여 그 전까지 저희는 기념품 샵에서 30분을 보 냈습니다. 수많은 디자이너와 예술가가 탄생한 덴마크 답게 기념품 샵의 퀄리티 또한 어마어마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구매한 아이템은 MID-CENTURY-MODERN (Icons of Design) 이라는 디자인 서적인데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하여 현대 가구 디자인의 정점을 찍은 미드센트리 가구의 상징적인 제품들을 브리핑 받을 수 있습니다. 엽서 모음처럼 생긴 이 책은 뒷 면에 제품의 일러스트가 그려져있고 앞 면에는 제품의 설명이 적혀있습니다. 책이 정말 얼마나 예쁘고 내용 또한 알찬지! 구글에 꼭 좀 검색 해보세요!

http://www.thamesandhudsonusa.com/books/mid-century-modern-icons-of-design-softcover

쇼핑요정의 코펜하겐 아이템 02. Mid Century Modern (Icons of Design) book

1시 부터는 디자인 뮤지엄의 도슨트 가이드를 챙겨 들었습니다. 아르네 야콥센, 베르너 팬톤, 한스 베그너 등 거장들의 오리지널 피스를 직접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덴마크의 체어 디자인은, 매우 “Organic”한 곡선을 갖고 있으며 사람의 체형을 고려한 “Human”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디자이너들은, 우울한 분위기에 반하여 인간적이고 경쾌한 선을 가구에 가미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중에서도 쇼핑요정의 베스트를 꼽자면, 여타 작가들과 달리 컬러나 소재 사용 모두 독보적인 베르너 팬톤의 체어입니다. 그 중에서도 1970년 보그 표지를 장식한 S라인 팬톤 체어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아 참, 디자인 뮤지엄에 얽힌 한 가지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요. 이 건물은 원래 18세기 코펜하겐에 최초로 지어진 병원이었다고 해요. 건물이 속이 뻥 뚫린 네모난 도넛츠 처럼 생겼는 데요. 과거 병원으로 사용될 때는 복도가 없어서 코너에서 코너까지 환자를 이송하기 매우 불편한 구조였다고 하네요. 이 건물은 애초에 디자인 뮤지엄이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커피를 마시고는 다시 라틴 쿼터 지역으로 돌아가 “Magasin” 백화점에서 오전을 모두 보냈구요. 쇼핑요정은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Magasin 백화점 한정판 #배스_ 타월과 치약계의 샤넬이라 불리는 #마비스_치약을 겟 했습니다. 덴마크는 리빙 강국이기 때문에 이번 캐리어는 모두 리빙 제품으로 채우겠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죠.

박물관 이용 꿀팁!

(사실) 저희는 아직 만 24세 이기 때문에 디자인 뮤지엄 입장이 free pass 였다는 사실! 25세까지는 프리패스인 점을 참고해주세요!

2일차의 밤은 스트뢰에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나초와 아이스티를 마시며 깔끔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아보카도와 토마토, 크림 소스에 치즈 듬뿍 나초를 쿡쿡 찍어 먹으며, 덴마크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던 순간이 꿈만 같아요. 세상 맛있던 이 나초 2인 세트는 혹시라도 코펜하겐 스트뢰에 거리에 가신다면, CAFE NORDEN 에서 꼭 드셔보세요. ^^

3일차 아침은 간단한 코펜하겐식 브런치로 시작했습니다. 덴마크에 갔으니, “Danish Croissant”을 맛봐야겠죠?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핫한 브런치 카페 #아틀리에_셉템버가 마침 저희가 묵은 제 너레이터 호스텔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http://www.ateliersep tember.dk/)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내가바로_핫플이다 느낌의 사진들을 무수히 양산하는 힙한 장소입니다. 흑임자가 올려진 데니쉬 크로아상과 함께 교토산 Marukyu Koyamaen Uji 맛차를 아이스로 한 잔 했습니다. 뭔가 아시아적인 조합인가요?^^ 또 다른 쇼핑요정님은 자몽 샐러드를 한 접시 하셨구요! 요기에 따뜻한 코코아를 곁들였습니다.

* 이른 아침부터 금발머리 모녀가 수다 떨며 요거트와 크로아상을 먹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요! 시크하게 차려입은 커리어 우먼으로 추정되는 여자들이 간단하게 커피와 빵을 주문해서 가게 앞에 걸터 앉아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3일차 Danish Girl

데니쉬 걸 처럼 놀아볼까?

디자인 유토피아,
일룸스볼리후스 백화점

3일차는 케리어를 두둑하게 채우는 날입니다. 두 쇼핑요정은 덴마크의 랜드마크 백화점, “일룸스 볼리후스(illums Bolighus)”로 향했습니다. 리빙, 퍼니싱 디자인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에서는 프리츠 한센부터 노만 코펜하겐, VITRA, GUBI, 루이스 폴센 등 리빙 브랜드의 모든 제품을 탐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디자인 뮤지엄보다 일룸스 볼리후스에서 공간 구성에 대한 영감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지갑을 열도록 만들기 위해 모든 브랜드가 작정을 하고 쇼룸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죠. 쇼핑요정은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눈 먼 심봉사가 눈을 뜨는 순간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쇼핑요정은 일룸스 볼리후스의 3층과 4층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의 세계에 눈이 번쩍 뜨였지 말입니다.

3일차 Danish Girl

데니쉬 걸 처럼 놀아볼까?

쇼핑에 지친 쇼핑요정들은 중간 중간 카페에서 쉬기도 했습니다. 일룸 백화점 옥상에서 멋진 뷰를 자랑하는 “오리지널 커피”와 스트뢰에 거리의 명물 “유로파” 카페를 추천 합니다. 다리가 좀 아프더라도 이 두 곳의 맛있는 라떼 한 잔이면 에너지가 금방 충전 될걸요!

셋째 날부터 3일 동안은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Klaus의 집에 묵었는데요, 이 집이 저희 여행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펜하겐 쇼핑의 중심, 스트뢰에 거리의 “HAY” 매장 바로 뒷 편에 위치한 아파 트 2층의 클라우스 하우스는, 독보적인 인테리어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쇼핑요정들이 쇼핑 중간 중간 무거운 짐을 올려두고 내려오고 왔다갔다 할 수 있게 해 줄 만큼 중심가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코너만 돌면 Urban Outfitters가 나오는 정도랄까요? ^^ 저희는 정말 대니쉬 걸처럼 브런치도 해먹고 와인도 마시고 TV도 보면서 제대로 된 대니쉬 라이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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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 네팔 2 편
이 환
#이환작가
#히말라야
#이환





위치

아시아의 산맥으로 인도아대륙과 티베트 고원 사이, 파키스탄, 인도, 중화인민공화국 시짱 자치구, 부탄, 네팔에 걸쳐 위치

최고봉

높이8,848m (29,029ft)의 에베레스트 산

기후

산의 높이에 따라 기후차가 심하고, 우기(6-9월)와 건기(10월-5월)가 있음













셰르파는 티베트말로 ‘동쪽 사람들’이란 뜻이다. 산에서 만나는 많은 포터와 고산 안내자의 이름엔 ‘셰르파’가 꼭 들어간다.





렌조 패스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쿰부히말. 먼 옛날 이곳은 바다였다. 물 아래에서 커다란 땅덩어리들이 부딪혀 하늘 위로 치솟은 땅, 이곳이 히말라야다.


가파르고 험한 고개인 렌조 패스 Renjo Pass, 5417m를 만났다. 기암괴석의 바윗돌 수천 개를 밟은 끝에 겨우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히말라야의 모든 고개에는 티베트 불경이 인쇄된 오색 깃발이 나부낀다. 에베레스트와 주변 고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숨통이 트인다. 이곳은 쿰부히말의 상당 부분을 가장 넓게 조망할수 있는 뷰포인트다.





렌조 패스를 넘어 고쿄 피크 중턱에서 바라본 마을과 호수. 고쿄 피크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훌륭하다.





앙상한 가지에 맺힌 은빛 얼음꽃이 피었다.





호주에서 온 용감한 대학생 토라와 세라 자매다. 부모님께 겨우 허락을 받고 한 달 동안 트레킹을 한다고 했다. 이 험한 길을 여자 두 명이서 도전하다니, 얼마나 용감한가!





촐라 패스라는 관문을 넘어서면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봉우리로 이름난 아마다블람의 야경을 담았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뻗어 나오는 수많은 별빛!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더욱 밝게 빛난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중 하나다. 쿰부히말을 트레킹하다 보면 어디에서든 아마다블람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촐라체가 하늘 위로 치솟아 있다. 자세히 보면 소름 끼칠정도로 거친 바위산이다. 골 사이사이 쌓인 흰 눈덩이 때문에 산이 더 시커먼 느낌이다.





촐라 패스를 넘어 눈밭을 걷고 나면 가느다란 등산로가 바위산을 끼고 시작된다. 저 너머에는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커다란 빙하가 절벽을 이루고 있다.


히말라야의 뜻과 에베레스트 산의 진짜 높이 히말라야 Himalaya는 산스크리트어로 히말 Himal(Snow)+알라야alaya(House), 즉 ‘눈의 거처’란 뜻이다. 에베레스트는 영국인들이 1865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초대 측량부 장관 조지 에베레스트 George Everest 경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네팔 지도에는 에베레스트란 이름의 산이 없다. ‘사가르마타 Sagarmatha’가 있을 뿐이다. 네팔의 모든 정부 공식문서나 행정구역명엔 사가르마타가 표준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머리 Head of the Sky’라는 뜻이다. 하지만 셰르파들은 초모룽마 Chomo rungma라고 부른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중국도 초모룽마를 차음해 주무랑마 珠穆朗瑪라고 한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칸첸중가가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줄 알았다.하지만 영국 측량대가 실제 측량을 하다 보니 더 높은 산이 칸첸중가 너머에 있었다. 보통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8848m로 알려졌다. 하지만 8880m나 8863m로 표시되기도 한다. 미국 탐험대는 GPS 장비를 이용해 8850m라고 발표했다. 2005년 중국의 한 기관은 8844.4m라고 주장했다. 기준이 되는 해수면의 높이가 날마다 들쭉날쭉 달라질뿐더러, 측정 방법에 따라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산꼭대기 위의 빙설이 3.5m나 된다. 어찌됐든 네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높이는 8848m다. 혹자는 지구온난화에 의해 3.5m나 되는 빙설이 녹아 내려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질 학자들은 지각운동에 의해 해마다 6mm씩 동북쪽으로 움직이면서 높아진다고 말한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 중에는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8848’인 경우가 많다. 고 박영석 대장이 그랬고, 엄홍길 대장도 그렇다.





촐라체에서 딩보체 마을로 내려가는 길.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사이에 드넓은 초지가 펼쳐져 트레킹의 진수를 맛볼수 있다.





부처님의 자비, 힌두 신들의 보호, 어느 신이든 절대자의 살핌 없이는 저 고봉을 오를 수 없다. 거대한 자연의 품에 마음과 몸을 맡기고 겸허하게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우리가 묵은 로지 주인장의 네 살 꼬마 공주 리마 Lima가 깜찍한 재롱을 피운다. 어눌한 토막 영어로 거리낌 없이 말을 붙여 왔다. 동네 영어교실에서 익힌 솜씨란다. 짐짓 어른인 우리에게 큰 소리로 야단도 친다. 귀엽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외국인들의 왕래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네 살이지만 결코 응석받이가 아니다. 혼자서 차가운 수돗물에 자기양말과 신발 빨래를 거뜬히 해낸다. 한국의 네살배기와는 천지 차이다.







남체 Namche, 3420m로 내려오는 내내 구름이 발갛게 불이 붙어 있었다. 활활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서쪽 하늘이 붉디붉게 물들었다. 고산의 공기층이 아래 지역과 달라 아침저녁 노을빛이 다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만날 수 있는 신기한 볼거리 중 하나다.





히말라야의 겨울 구름은 오묘하다. 무지갯빛을 발한다. 신비하다. 어찌 보면 악마가 입을 벌려 삼킬 듯 기괴하기도 하다. 금세 광풍이 몇 차례 일더니, 양털 구름이 푸른 하늘에 일자 모양으로 획을 긋는다. 한참을 히말라야의 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다. 고단한일정 속에서 잠시 잠깐 느껴 보는 여유다.





남체는 산 발치다. 루클라 쪽에서 올라온 많은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하루 이틀 묵는데 본격적인 고산 적응을 위해서다.





남체에는 엄홍길대장의 이름이 새겨진 방이 따로 있다. 한국인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그를 기리는 방이다.





소년들이 당구대 같은 나무판 위에서 ‘카롬 Carom’이라는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시야 속에 들어왔다. 카롬은 원반 돌을 손가락으로 밀쳐 구멍에 넣는 것인데 네팔의 국민 게임이다.





네팔에 사는 부족들 바깥세계엔 셰르파족이 가장 많이 알려졌다. 산악인들이 주로 이들과 탐험에 나서기 때문이다. 쿰부히말 주변에만 3만5000여명이 살고 있다. 예전엔 산 너머 티베트와의 교역으로 먹고살았지만, 요즘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셰르파는 종족의 이름이면서 성 姓이다. 포터들의 이름을 물으면 성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아 처음엔 헷갈린다. 우리 팀에도 파상 셰르파가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키 큰 파상’, ‘술 잘 먹는 파상’이라고 구별해 불렀다. 셰르파족은 아이 이름을 태어난 요일에 따라 짓는다. 자연히 같은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월요일에 태어나면 다와 Dawa, 화요일에 태어나면 밍마르 Mingmar라고 부른다. 라크파(Lhakpa, 수요일), 푸르바(Phurba, 목요일),파상(Pasang, 금요일), 펨바(Pemba, 토요일), 니마(Nyima, 일요일) 이런 식이다. 남자 여자 똑같이 짓는다.


이 밖에도 네팔 전역엔 여러 부족이 살고있다. 네와르족 Newars은 100만 명이 넘는다. 카트만두 계곡 쪽에 몰려 있으며, 유명한 예술가가 많다. 네와르 건축과 미술 양식도 이들의 창조성에서 비롯됐다. 포터들 중에는 셰르파족 외에 구룽, 타망, 라이족 등이 있다. 구룽족 Gurungs은 티베트-미얀마계인데 안나푸르나가 있는 포카라 주변에 많이 산다. 구르카 용병으로 많이 활동한다. 라이족과 림부족은 동부 네팔 국경 산악 지역에 많이 산다. 인도 시킴에서 이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도 쿠쿠리라는 칼을들고 다니며, 구르카 용병으로 많이 들어갔다. 타망족 Tamangs은 카트만두 북부에 많이 살며 육체 노동자가 많다. 카트만두 기념품 가게에서 만나는 탱화나 카펫은 대부분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순수 티베트족도 있다. 이들은 중국의 티베트 침공 때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온 12만 명의 망명자 중 일부다. 1만2000여 명이 네팔로 이주해 살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 호텔, 음식점 사장들은 거의 티베트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가 많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엄청난 자연 재앙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10년 안에 히말라야 산맥의 50여 군데에서 큰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유엔환경계획 UNEP이 경고했다.





물건을 나르는 좁교 행렬. 3000m 위에서는 야크가 힘을 발휘하고, 그 아래에서는 좁교가 짐을 나른다. 좁교는 야크보다 털이 적고 몸집도 작다.





루클라 공항은 경비행기 전용으로 커다란 운동장이 활주로다. 커다란 버스터미널 같다. 활주로 아래는 낭떠러지다.이륙할 때는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두둥실 탄력을 받고, 착륙할 때는 골짜기에서 절벽으로 오르는 동안 자연히 속도가 줄어든다. 비행기표에는 지정 좌석이 없다. 그냥 전망 좋은 곳에 앉으면 된다. 카트만두로 갈 때는 오른쪽 창가에서 에베레스트와 고산들을 볼 수 있다. 루클라에 올 때는 왼쪽이 고산 밀집 지역이다.





가난한 산골 마을을 찾은 이방인들을 보기 위해 전교생이 교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10년 뒤,20년 뒤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마을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세계 어디에서나 어린이는 어린이다. 한 가정에서 나라에서 이들은 미래요 희망이다.







나마스테 Namaste! 안녕하세요!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은 또 다르다. 날이 맑아 한 달 내내 걸었던 가우리샹카르와 에베레스트 산군도 구별할 수 있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한 달 동안이나 두 발로 걸었다. 참 우습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제는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때다.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인도의 동북쪽 끝 시킴과 네팔 끝 일람의 차밭까지 180일간의 히말라야 유랑 流浪이 끝났다. 언젠가 이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 마을들을 다시 올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웃음, 눈물, 도전, 실망, 두려움, 좌절로 뒤범벅된 긴 시간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자신도 돌아봤다. 견디기 힘든 자갈밭과 눈밭, 추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원정 기간 내내 가장 소중했던 건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은 ‘사랑’이었고 스승이었다. 삶은 기나긴 여행이며 유랑이다. 또 다른 유랑의 시간이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유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