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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웨일즈 3편]
웨일즈의 전통을 듬뿍 간직한 곳,
웨일즈 서북부
이 환

전편에서 웨일즈의 고성 마을들과 책마을 헤이온와이, 아서 왕의 전설을 가진 스노도니아를 여행했다. 마지막으로 지중해 이탈리아를 흠모해 만든 포트메리온과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는 방고와 앵글시 섬을 둘러본다. 그리고 아일랜드로 건너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서북쪽 끝 항구도시 홀리헤드를 소개한다.







전에 백화점 그릇가게에서 포트메리온(Portmerion www.portmeirion-village.com)이란 브랜드를 발견하고 이렇게 예쁜 도자기를 만드는 마을은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이곳을 만든 주인공은 잉글랜드 출신으로 어릴 적에 이주한 건축가 윌리엄스 엘리스(Sir Williams Ellis·1894~1978)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마을 포르트피노를 동경한 나머지 1926년부터 이곳을 지중해풍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흔이 되도록 고치고 짓고 또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고 하니 그의 열정에 숙연해진다. 입구의 조각장식 문을 들어서면 천국의 정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원색으로 칠해진 벽과 지붕들, 우아한 정원과 분수, 대리석상 수십 개가 여행자를 맞는다. 포트메리온 도자기도 알고 보니 그의 딸 수잔이 만든 브랜드다.






 

웨일즈 서북쪽 본토의 마지막 큰 도시는 방고(Bangor)다. 웨일즈대학이 있어 젊은 기운이 가득하다. 로마군이 침공했을 때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전투지여서 유적들도 많고 고풍스럽다. 이 도시에서 브리타니아 다리를 건너가면 앵글시 섬에 다다른다. 이 섬은 웨일즈와 잉글랜드를 통틀어 가장 큰 섬이다. 


방고에서 다리를 건너 5분정도 차로 달리면, 작은 마을 기차역이 있다.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기차역 푯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1848년 앵글시 섬에서 첫 번째로 생긴 이 기차역 이름은 숨이 찰 정도로 길다. 



세계적으론 모르겠지만, 최소한 영국에서 가장 길다. 뜻은 ’빠른 물살 소용돌이 옆 흰 개암나무의 구덩이 속 성 마리아 교회와 붉은 굴의 성 티실리오 교회‘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간단히 ’Llanfair PG‘라고 부른다.








웨일즈 본토에서 앵글시 섬을 가는 데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메나이 현수교(Menai Suspension Bridge·1826년 건설), 다른 하나는 브리타니아교(Britania Bridge·1850년)다. 브리타니아교 아래로는 기차 철길이 있다. 


모터보트를 타고 메나이 해협을 둘러보았다. 섬 주변을 둘러보는 데는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 물개들이 한가로이 모여 햇볕을 쬐는 바위자락이 가장 인기 있어 보인다.


이 지역은 옛 드루이드교의 흔적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고대 켈트족의 믿음으로 알려진 이 종교는 드루이드라는 사제들이 지도자 역할을 했는데 신전을 만들지 않았고 문헌도 남기지 않았다. 다신교에 영생불멸을 믿었고 마법과 주술이 발달했다. 숲 속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사람을 죽여 피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이런 제의식 때문에 로마군이나 잉글랜드군이 침입했을 때 많은 핍박을 받았다. 잉글랜드 남부의 거석유적인 스톤헨지(Stonehenge)도 이들이 만들었고 할로윈이란 서양풍습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앵글시 섬에서 아일랜드로 넘어가는 관문이 바로 홀리헤드(Holyhead) 항구다. 페리로 3시간 15분, 쾌속선으로 1시간 20분이면 더블린에 도착한다. 대합실에서 아일랜드로 수학여행 가는 전통 옷을 입은 웨일즈 여학생들을 만났다. 


앙증맞은 모자와 레이스 자수로 장식된 숄에 체크치마를 단정히 입은 모습이 정감 있다. 검정색의 기다란 ‘웰시 모자’는 체크무늬 앞치마와 함께 이곳 전통의상의 특징. 시골 아낙네들이 주로 입었던 옷 양식이 전통의상으로 정착했다고 한다.








여행(旅行)의 한자말은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간다’라는 의미다. 영어 ‘travel’의 어원은 좀 다르다. ‘travail’에서 나왔는데 노동, 고생을 뜻한다. 여행 장비와 교통수단이 부족했던 먼 옛날 바깥나들이는 고행 길이었을 것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를 거쳐 여기까지 오는 데는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땅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한편으로 기쁨이었다. 이제 포크음악의 본고장, 아이리시펍과 기네스의 나라 아일랜드로 향해간다.





영국관광청 웹사이트   

www.visitbritain.com  


웨일즈관광청 웹사이트 

www.visitwa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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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 네팔 2 편
이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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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이환





위치

아시아의 산맥으로 인도아대륙과 티베트 고원 사이, 파키스탄, 인도, 중화인민공화국 시짱 자치구, 부탄, 네팔에 걸쳐 위치

최고봉

높이8,848m (29,029ft)의 에베레스트 산

기후

산의 높이에 따라 기후차가 심하고, 우기(6-9월)와 건기(10월-5월)가 있음













셰르파는 티베트말로 ‘동쪽 사람들’이란 뜻이다. 산에서 만나는 많은 포터와 고산 안내자의 이름엔 ‘셰르파’가 꼭 들어간다.





렌조 패스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쿰부히말. 먼 옛날 이곳은 바다였다. 물 아래에서 커다란 땅덩어리들이 부딪혀 하늘 위로 치솟은 땅, 이곳이 히말라야다.


가파르고 험한 고개인 렌조 패스 Renjo Pass, 5417m를 만났다. 기암괴석의 바윗돌 수천 개를 밟은 끝에 겨우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히말라야의 모든 고개에는 티베트 불경이 인쇄된 오색 깃발이 나부낀다. 에베레스트와 주변 고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숨통이 트인다. 이곳은 쿰부히말의 상당 부분을 가장 넓게 조망할수 있는 뷰포인트다.





렌조 패스를 넘어 고쿄 피크 중턱에서 바라본 마을과 호수. 고쿄 피크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훌륭하다.





앙상한 가지에 맺힌 은빛 얼음꽃이 피었다.





호주에서 온 용감한 대학생 토라와 세라 자매다. 부모님께 겨우 허락을 받고 한 달 동안 트레킹을 한다고 했다. 이 험한 길을 여자 두 명이서 도전하다니, 얼마나 용감한가!





촐라 패스라는 관문을 넘어서면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봉우리로 이름난 아마다블람의 야경을 담았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뻗어 나오는 수많은 별빛!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더욱 밝게 빛난다.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야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중 하나다. 쿰부히말을 트레킹하다 보면 어디에서든 아마다블람의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촐라체가 하늘 위로 치솟아 있다. 자세히 보면 소름 끼칠정도로 거친 바위산이다. 골 사이사이 쌓인 흰 눈덩이 때문에 산이 더 시커먼 느낌이다.





촐라 패스를 넘어 눈밭을 걷고 나면 가느다란 등산로가 바위산을 끼고 시작된다. 저 너머에는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커다란 빙하가 절벽을 이루고 있다.


히말라야의 뜻과 에베레스트 산의 진짜 높이 히말라야 Himalaya는 산스크리트어로 히말 Himal(Snow)+알라야alaya(House), 즉 ‘눈의 거처’란 뜻이다. 에베레스트는 영국인들이 1865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초대 측량부 장관 조지 에베레스트 George Everest 경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네팔 지도에는 에베레스트란 이름의 산이 없다. ‘사가르마타 Sagarmatha’가 있을 뿐이다. 네팔의 모든 정부 공식문서나 행정구역명엔 사가르마타가 표준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머리 Head of the Sky’라는 뜻이다. 하지만 셰르파들은 초모룽마 Chomo rungma라고 부른다. ‘세상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중국도 초모룽마를 차음해 주무랑마 珠穆朗瑪라고 한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칸첸중가가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줄 알았다.하지만 영국 측량대가 실제 측량을 하다 보니 더 높은 산이 칸첸중가 너머에 있었다. 보통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8848m로 알려졌다. 하지만 8880m나 8863m로 표시되기도 한다. 미국 탐험대는 GPS 장비를 이용해 8850m라고 발표했다. 2005년 중국의 한 기관은 8844.4m라고 주장했다. 기준이 되는 해수면의 높이가 날마다 들쭉날쭉 달라질뿐더러, 측정 방법에 따라 또 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산꼭대기 위의 빙설이 3.5m나 된다. 어찌됐든 네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높이는 8848m다. 혹자는 지구온난화에 의해 3.5m나 되는 빙설이 녹아 내려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질 학자들은 지각운동에 의해 해마다 6mm씩 동북쪽으로 움직이면서 높아진다고 말한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 중에는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8848’인 경우가 많다. 고 박영석 대장이 그랬고, 엄홍길 대장도 그렇다.





촐라체에서 딩보체 마을로 내려가는 길.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사이에 드넓은 초지가 펼쳐져 트레킹의 진수를 맛볼수 있다.





부처님의 자비, 힌두 신들의 보호, 어느 신이든 절대자의 살핌 없이는 저 고봉을 오를 수 없다. 거대한 자연의 품에 마음과 몸을 맡기고 겸허하게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우리가 묵은 로지 주인장의 네 살 꼬마 공주 리마 Lima가 깜찍한 재롱을 피운다. 어눌한 토막 영어로 거리낌 없이 말을 붙여 왔다. 동네 영어교실에서 익힌 솜씨란다. 짐짓 어른인 우리에게 큰 소리로 야단도 친다. 귀엽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외국인들의 왕래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네 살이지만 결코 응석받이가 아니다. 혼자서 차가운 수돗물에 자기양말과 신발 빨래를 거뜬히 해낸다. 한국의 네살배기와는 천지 차이다.







남체 Namche, 3420m로 내려오는 내내 구름이 발갛게 불이 붙어 있었다. 활활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서쪽 하늘이 붉디붉게 물들었다. 고산의 공기층이 아래 지역과 달라 아침저녁 노을빛이 다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만날 수 있는 신기한 볼거리 중 하나다.





히말라야의 겨울 구름은 오묘하다. 무지갯빛을 발한다. 신비하다. 어찌 보면 악마가 입을 벌려 삼킬 듯 기괴하기도 하다. 금세 광풍이 몇 차례 일더니, 양털 구름이 푸른 하늘에 일자 모양으로 획을 긋는다. 한참을 히말라야의 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었다. 고단한일정 속에서 잠시 잠깐 느껴 보는 여유다.





남체는 산 발치다. 루클라 쪽에서 올라온 많은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하루 이틀 묵는데 본격적인 고산 적응을 위해서다.





남체에는 엄홍길대장의 이름이 새겨진 방이 따로 있다. 한국인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그를 기리는 방이다.





소년들이 당구대 같은 나무판 위에서 ‘카롬 Carom’이라는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시야 속에 들어왔다. 카롬은 원반 돌을 손가락으로 밀쳐 구멍에 넣는 것인데 네팔의 국민 게임이다.





네팔에 사는 부족들 바깥세계엔 셰르파족이 가장 많이 알려졌다. 산악인들이 주로 이들과 탐험에 나서기 때문이다. 쿰부히말 주변에만 3만5000여명이 살고 있다. 예전엔 산 너머 티베트와의 교역으로 먹고살았지만, 요즘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셰르파는 종족의 이름이면서 성 姓이다. 포터들의 이름을 물으면 성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아 처음엔 헷갈린다. 우리 팀에도 파상 셰르파가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키 큰 파상’, ‘술 잘 먹는 파상’이라고 구별해 불렀다. 셰르파족은 아이 이름을 태어난 요일에 따라 짓는다. 자연히 같은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월요일에 태어나면 다와 Dawa, 화요일에 태어나면 밍마르 Mingmar라고 부른다. 라크파(Lhakpa, 수요일), 푸르바(Phurba, 목요일),파상(Pasang, 금요일), 펨바(Pemba, 토요일), 니마(Nyima, 일요일) 이런 식이다. 남자 여자 똑같이 짓는다.


이 밖에도 네팔 전역엔 여러 부족이 살고있다. 네와르족 Newars은 100만 명이 넘는다. 카트만두 계곡 쪽에 몰려 있으며, 유명한 예술가가 많다. 네와르 건축과 미술 양식도 이들의 창조성에서 비롯됐다. 포터들 중에는 셰르파족 외에 구룽, 타망, 라이족 등이 있다. 구룽족 Gurungs은 티베트-미얀마계인데 안나푸르나가 있는 포카라 주변에 많이 산다. 구르카 용병으로 많이 활동한다. 라이족과 림부족은 동부 네팔 국경 산악 지역에 많이 산다. 인도 시킴에서 이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도 쿠쿠리라는 칼을들고 다니며, 구르카 용병으로 많이 들어갔다. 타망족 Tamangs은 카트만두 북부에 많이 살며 육체 노동자가 많다. 카트만두 기념품 가게에서 만나는 탱화나 카펫은 대부분 이들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순수 티베트족도 있다. 이들은 중국의 티베트 침공 때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온 12만 명의 망명자 중 일부다. 1만2000여 명이 네팔로 이주해 살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 호텔, 음식점 사장들은 거의 티베트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가 많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엄청난 자연 재앙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10년 안에 히말라야 산맥의 50여 군데에서 큰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유엔환경계획 UNEP이 경고했다.





물건을 나르는 좁교 행렬. 3000m 위에서는 야크가 힘을 발휘하고, 그 아래에서는 좁교가 짐을 나른다. 좁교는 야크보다 털이 적고 몸집도 작다.





루클라 공항은 경비행기 전용으로 커다란 운동장이 활주로다. 커다란 버스터미널 같다. 활주로 아래는 낭떠러지다.이륙할 때는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두둥실 탄력을 받고, 착륙할 때는 골짜기에서 절벽으로 오르는 동안 자연히 속도가 줄어든다. 비행기표에는 지정 좌석이 없다. 그냥 전망 좋은 곳에 앉으면 된다. 카트만두로 갈 때는 오른쪽 창가에서 에베레스트와 고산들을 볼 수 있다. 루클라에 올 때는 왼쪽이 고산 밀집 지역이다.





가난한 산골 마을을 찾은 이방인들을 보기 위해 전교생이 교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제 10년 뒤,20년 뒤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마을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세계 어디에서나 어린이는 어린이다. 한 가정에서 나라에서 이들은 미래요 희망이다.







나마스테 Namaste! 안녕하세요!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은 또 다르다. 날이 맑아 한 달 내내 걸었던 가우리샹카르와 에베레스트 산군도 구별할 수 있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한 달 동안이나 두 발로 걸었다. 참 우습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제는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때다.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인도의 동북쪽 끝 시킴과 네팔 끝 일람의 차밭까지 180일간의 히말라야 유랑 流浪이 끝났다. 언젠가 이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 마을들을 다시 올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웃음, 눈물, 도전, 실망, 두려움, 좌절로 뒤범벅된 긴 시간이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자신도 돌아봤다. 견디기 힘든 자갈밭과 눈밭, 추위에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원정 기간 내내 가장 소중했던 건 결국 ‘사람’이었다. ‘사람’은 ‘사랑’이었고 스승이었다. 삶은 기나긴 여행이며 유랑이다. 또 다른 유랑의 시간이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유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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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 북인도 편
이 환
#이환작가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저마다 인도의 인상을 이야기하지만, 모두가 제각각이다. 한두 번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게 인도를 정의한다. 하지만 서너 번쯤 방문한 사람은 “글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수십 번 가본 사람은 아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렇게 그 속을 알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인도다. 인도의 인적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초등학생은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운다고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이다. 문화는 어떤가? 고대 인더스문명을 시작으로 시대마다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인도 히말라야는 인도 북부 카슈미르 Kashmir에서 동쪽 중국 네팔 접경까지 동서로 뻗어 있다. 이 긴 루트 중 핵심 지역을 꼽자면 잠무 카슈미르 Jammu-Kashmir와 히마찰프라데시 Himachal Pradesh 지역이다. 잠무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 지대로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할 때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남부 쪽이 인도에 귀속되면서 종교 분쟁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물의 도시 스리나가르 Srinagar! 행정구역상 잠무 카슈미르 주의 주도다. 히말라야 아래 해발 1700m에 위치한 스리나가르는 풍광 좋고 물자가 풍부한 매력적인 곳이다.

‘동양의 베네치아, Almost Heaven’이라 불리는 물의 도시 스리나가르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자신들의 수상 호텔 House Boat로 가자며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달 호수 Dal Lake엔 1400여 개의 수상 호텔이 가장자리를 따라 빙 둘러 자리 잡고 있다. 호텔마다 내건 울긋불긋 꽃 등불이 자못 몽환적이다. 곤돌라 모양의 배 시카라 Shikara를 타고 하우스 보트로 이동해야 한다.






스리나가르에서 동쪽인 레로 갈수록 확연히 공기가 달라진다. 우선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가 평소 우리가 접해 온 인도인들과 확연히 다르다. 티베트인들이다. 우리와 같은 몽골리안이다. 인도지만 인도가 아닌 듯하다.


레와 가까워질수록 티베트 불교 사원 곰파 Gompa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옛 불교 왕국답다고나 할까. 깎아지른 바위산 위의 곰파들은 모두 유서 깊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파키스탄, 중국과의 접경지대에서는 민간 헬기 섭외가 다소 어려웠으나, 운 좋게 성공해 히말라야 설산을 하늘에서 볼 수 있었다. 국내 최초로 이 지역을 촬영하는 행운을 얻었다. 하늘에서 본 히말라야의 광활한 설산과 빙하, 아직 채 얼지 않은 옥빛 호수들, 수백 겹 첩첩이 이어지는 설산, 한 번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진풍경에 쏙 빠져들었다.




히말라야 설산이 호수의 파란물에 쏙 담겼다. 온 천지가 새하얀 산꼭대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니!







인도히말라야 아래 뉴테리 산골마을에서 만난 여인들이 땔감을 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인들이 뭔가를 이고 지고 다니는 모습을 어디 가든 쉬이 볼 수 있다. 이 곳 여인들의 삶은 더더욱 고달프다. 냉장고며 가스레인지 등 문명의 이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여인들은 산에서 땔감을 거두고, 무거운 짐을 메고 다닌다. 온갖 빨래와 음식 만들기, 농사일, 아기 양육 등이 모두 여인들의 몫이다.



산에서 만난 아낙들은 대부분이 변변한 신발도 없이 고무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칠고 가파른 산길을 외지인보다 빨리 움직였다. 발가락을 꼭 오므려 땅에 굳게 지탱하는 힘이 강해 보인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야만 하는 히말라야 어머니들의 능력이 놀랍고 안타깝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자락에 자리 잡은 명상과 요가의 힌두 성지 리쉬케시(Rishikesh). 인도인에게 강가는 삶과 죽음의 모든 의미를 담은 영혼의 강이다. 수백, 수천 킬로 떨어진 고향에서 갠지스강을 찾아온 순례자와 수행자들! 힌두인들은 이 성수(聖水)를 마시고, 목욕을 하며 영혼의 때를 씻어낸다. 죽어서 재가 되어 돌아가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들에게 삶의 시간은 그저 돌고 도는 윤회의 순간일 뿐! 팍팍하고 고단한 삶도 잠깐 왔다 가는 여행일 뿐인 것을…




진리 眞理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들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우리 곁, 우리 안에 있었다. 강가 가트의 벽에 적힌 문구가 짧지만 인상적이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서산으로 숨을 즈음, 갠지즈 강 가에는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해 질 녘이면 갠지스 강은 순례객들의 염원을 담은 꽃 접시 위의 향불로 붉게 변한다. 강의 신(神)이 이들의 소원을 받아들이는 듯 물결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순간 이 강물 앞에 잠깐 선 속 좁은 여행자의 번뇌와 잡념도 사라진다.



뜨거운 인도의 태양은 소년의 겉옷뿐 아니라 마음까지 걷어냈다. 똑바로 보는 세상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소년의 눈에 비치는 힌두사원의 웅장함도, 강물에 몸 담그는 순례자 여인들의 진지함도, 고행길을 하염없이 걷는 사두의 고뇌도, 한 줄기 여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이 소년만큼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시킴은 특별자치주다. 이 말은 인도 본 대륙에서 동북쪽으로 한참을 벗어난 낙후 지역이란 말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인도에서도 특별하게 대우하는지 모르겠다. 주도는 강토크 Gangtok. 방문한 곰파에서 동자승들을 만났다. 시킴에서 1000km도 넘게 떨어진 히마찰프라데시 지역의 라다크에서 온 아이들이다. 히말라야 산간 지역은 9월 말이나 10월이면 눈이 쌓여 길이 끊기기 때문에 가족이 미리 데리고 가지 않으면 오도 가도 못 한다. 저마다 큰 소리로 불경 읽기에 몰두하던 어린 스님들은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이내 개구쟁이들로 변한다. 어딜 가든 아이는 아이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소녀들을 만났다. 망치로 큰 돌을 깨서 자잘한 자갈로 만들고 있었다. 익히 알려진 ‘돌 깨는 어린이들’이다. 이 소녀들이 하루 종일 깨면 90kg의 자갈이 나온다. 얼마 받느냐고 물으니 90루피를 받는다고 한다. 약 1.5달러다. 가슴이 꽉 메어 온다.



인도에는 신기한 직업이 많다. 빨래만 해주거나 도시락을 배달하는 직업도 있으며, 심지어 귀지만 파주는 사람도 있다. 거리의 이발사도 그 중 하나. 손님을 대하는 앳된 얼굴의 소년 이발사의 표정은 제법 진지하고 의젓하다. 아직 노동의 힘겨움을 알기에는 너무 어려 보이지만, 손놀림은 능숙했다.



인도의 직업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카스트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제도는 외부인의 관점에서 보면 참 이해하기 힘든 관습이다. 헌법 15조엔 ‘국가는 국민에 대해 종교, 인종, 카스트, 성, 출신지, 기타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카스트제도는 시골로 갈수록 사람들의 생활 속에 뿌리 깊이 잠재돼 있다. 어느 직업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른바 세습 가업이다. 안타깝다. 같은 하늘 아래 사람들의 삶은 이처럼 천차만별이라니….



시킴 주 아래에 위치한 최대의 휴양 도시이자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 중 하나다. 제국주의 지배 시절 영국인들이 이 마을의 쾌적함과 풍요로움을 지나쳤을 리 없다. 1780년까지 시킴 왕국에 속해 있었으나, 1816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점령한 이후 지금의 인도에 편입됐다. 그래서일까. 시킴 주 경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는 주변은 온통 차밭이다. 평지는 물론 산간 비탈 언덕도 온통 초록빛이다. 영국이 홍차 강국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식민시대의 유산 덕분이다.





이곳의 명물 중 하나로 꼬마 기차 Toy Train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은 이곳에서 재배된 엄청난 양의 찻잎을 운반하기 위해 폭 61cm의 협궤철도를 만들었다. 정식 명칭은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도 Darjeeling Himalayan Railway. 1881년에 운행을 시작해서 그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석탄 연료 증기기관차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기차역은 동네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동이 터 오는 다르질링의 새벽. 하늘 끝에 눈썹 같은 그믐달이 떠 있다. 어둠은 검푸른 빛으로 변해 이내 붉은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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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작가의 DSLR 여행기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 파키스탄 편
이환 작가
#이환작가




낯선 땅에서 만나는 아이의 웃음, 그리고 각자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여행의 의미는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히말라야 2,400km, 시간(時間)…. 그리고 기다림




2011년에서 2012년 초까지 파키스탄, 인도, 네팔에서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히말라야 산맥은 직선 거리로 무려 2,400㎞나 된다. 서쪽 끝 파키스탄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인도 히말라야와 네팔을 거쳐 칸첸중가가 있는 인도 시킴까지 카메라를 동무 삼아 발품을 팔았다.






지구에는 여러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하고 돌아보는 것은 여행의 매력이다. 이 척박한 땅의 풍경과 사람 속에서 내가 담고 싶은 것은 시간과 기다림이었다. 거대한 히말라야 자연(自然)은 그 자체가 ‘시간’이었고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고통스럽기도 하다. 때로는 척박한 돌과 얼음길을 의연하게 한 발 한 발 헤쳐 나가야 한다.



순수의 땅에서 만난 사람들





북파키스탄 산간도시 치트랄 읍내에서 본 거리. 상점 앞에서 뭔가를 질문하는 노인과 그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이 앙증맞다.

첫 번째 이야기는 파키스탄 히말라야다. ‘순수한 땅’을 의미하는 이곳은 몇몇 곳을 제외하면 알려진 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물론, 자연은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곳이다. 해발 8,000m 이상인 히말라야 14좌 중 5개(K2, 낭가 파르바트 Nanga Parbat, 로드 피크 Broad Peak, 가셔브룸 Gasherbrum Ⅰ, Ⅱ)가 이곳에 있다.


히말라야의 서쪽 끝 힌두쿠시 산맥을 가장 빠르게 찾아가는 방법은 항공편이다.





그녀의 이름은 샤닐라.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11살 원주민 소녀가 이제 원숙한 여인이 되었다. 당시 고산증이 찾아와 내려간 마을에서 처음 만난 원주민 아이가 바로 샤닐라이다.





고산증에 시달린 나를 맞아 준 북파키스탄 부니 마을. 처음 만난 외지인 주변을 맴돌던 소녀들의 이름은 메위시, 메라즈, 라일라, 알리샤, 샤닐라… 자세히 물으면 모두가 친척 관계로 얽혀있다. 실크로드 근처로 동서양의 교류가 많았던 이 지역 사람들의 외모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치트랄에서 산길을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아프카니스탄 접경에 ‘칼라시’라는 마을이 있다. 독특한 전통의상을 고집하고, 독자적인 언어와 종교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을 방문한다는 건 의미있어 보인다. 칼라시 계곡은 파키스탄 정부 관광 홍보 책자에 단골로 다뤄지는 지역이다. 전통 복장을 입은 칼라시 여인들의 모습은 홍보 사진의 메인으로 등장한다.









낭가파르바트 산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라마호수에서 폴로경기가 열렸다.

폴로는 이 지역에서 매우 인기있는 스포츠다.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 만으로 이곳이 이슬람 땅임을 실감할 수 있다.





남성들이 운동장 주변에서 응원에 열을 올리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아이들과 함께 뒤편 산 위에 앉아 차분히 경기를 지켜본다.





전반전이 끝나자, 여성 정치인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언덕에 모여있는 여인들에게 다가갔다. 이 지역의 유력 여성 정치인 사디야 장관이다(사진 맨 아래). 조용히 경기를 관람하던 이슬람 여인들은 사디야 장관이 나타나자 환호성을 지르며, 흡사 소녀 팬들처럼 흥분했다.









치트랄에서 길기트 넘어가려면 해발 3,800m의 산두르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돌산이 병풍처럼 휘감은 이 인적 드문 산촌마을에서 한 소녀가족을 만났다. 아홉 살 소녀 샤나이 굴샨의 가족이다.





목동의 딸인 샤나이의 손과 발은 고산 추위에 온통 부르터 있다. 아이의 마음을 얻고 싶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보여줬지만, 굴샨은 눈만 휘둥그래질 뿐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헤어지는 길 십여 미터를 가다 뒤돌아보니, 샤나이는 엄마에게 사진을 보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아이는 아이, 기분 좋은 헤어짐이다.





낭가파르밧 올라가는 중턱에서 만난 꼬마들. 부모가 들판에서 감자를 수확하는 동안 꼬마들은 바위 위에서 끼리끼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소년들은 얼마나 자랐을까?




파키스탄 남부

시골 마을로 가는 길




파키스탄 남부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금광산 ‘큐라’가 있다. 수십만 년 전 바다가 치솟아 올라왔을 때 그 바닷물이 말라 소금광산으로 변한 것이다. 위 사진은 소금 조각으로 장식해 조명을 비춰 장식한 동굴을 저속셔터로 표현한 것이다.





파키스탄 시골길에서 만난 달구지와 화물트럭. 과거와 현대의 교통수단을 같은 시공간에서 보니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히말라야의 트럭은 국가를 불문하고 화려한데 그 중 으뜸은 파키스탄 트럭이다. 차 가격보다 장식 비용이 더 크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거의 모든 트럭 뒤엔 ‘Horn Please’, ‘Blow Horn’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서는 경적을 자주 울리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길기트에서 북쪽 중국 방향으로 달리면 카라코람 하이웨이 (KKH)가 나온다.

이 길을 세 시간 달리다 큰길을 따라 빠지면 아담한 언덕 마을 훈자(지도 상의 명칭은 칼리마바드 Kalimabad)가 나타난다.

국내의 한 광고에도 등장한 장수 마을이다.





훈자 마을 뒤쪽으로는 형태가 멋지기로 유명한 레이디 핑거 Lady finger를 만날 수 있다(위 사진). 여인네의 뾰족한 손가락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레이디 핑거 뒤로는 울타르 피크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다.




예전방식을 이어 살아가는 훈자 마을 사람들




훈자마을의 랜드마크 발티트 성. 얼핏 보면 티베트 라사에 있는 포탈라 Potala 궁과 모양이 흡사한 이곳은 700여 년 전 국왕 아야쇼 2세가 발티스탄의 공주를 신부로 맞으면 지은 것이다. 티베트 건축 스타일로 만들어진 고즈넉한 성채로 훈자 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훈자 호텔에 묵는 동안 동네에 성대한 전통결혼식이 있어 초대를 받았다. 이국 땅에서 보는 결혼식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화려한 장식과 화장 속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팔의 문신이다. 인도의 헤나와 유사한 것으로 우르두어로 메흐디 Mehdi라고 한다.





마을골목 어귀에서 만난 훈자마을 소녀들.

부니마을처럼 북쪽에 위치한 훈자마을,

그래서 이곳 사람의 얼굴에도

동서양의 장점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훈자마을 뒷산 이글 네스트(Eagle Nest)에 동네 여인들이 소풍을 왔다. 언덕 위 바위마다 뚫려 있는 구멍이 독수리 둥지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배경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북파키스탄 힌두쿠시의 끝자락 부니산에서 한 주민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곳 산촌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자연의 위용 앞에 인간은 한낱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 우리의 남산 같은 마르갈라 언덕에서 본 석양 풍경.





치트랄에서 길기트로 넘어가는 가장 큰 고개인 산두르패스 호수의 석양. 자연의 색깔은 세상에 존재하는 색의 수만큼 다양하다. 새로움을 찾는 여행은 이런 다른 색깔을 맛보고 즐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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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고수 밥장이 전하는
2016 스타벅스 다이어리 활용법
#스타벅스커피코리아


2016년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출시된 지도 어언 한달, 조금 이른 듯 하지만 벌써 새해 다이어리를 득템한 분들도 꽤 많으신데요. 몰스킨의 자태를 뽐내는 이 예쁜 새해 다이어리를 보니, 어느새 2015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훌쩍 다가왔음이 실감나는 것 같습니다.





이 새해 다이어리만큼은 기필코 멋지게 끝장까지 채워보겠다는 많은 분들의 결심이 작심한달로 끝나지 않도록! SSG블로그가 특별한 다이어리 마스터를 찾아 그의 비법을 전수받아 왔습니다. 그 특별한 다이어리 마스터가 누구냐구요? 바로 소문난 기록의 고수,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님입니다.

 

 

기록의 고수를 만나다





풍문으로만 듣던 기록의 고수 밥장 님을 만나기 위해 찾은 그의 아지트 ‘믿는 구석’. 이곳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한 켠에 그의 기록의 역사가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껏 써온 다이어리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은 실로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고수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008년부터 보관해 온 저의 역사이자 기록입니다.”

 

멋진 글과 그림으로 채워진 그의 다이어리는 한 권의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요. 보통사람들은 흉내내기 힘들 것 같은 아우라가 구경꾼들을 압도했습니다. 연신 이어지는 감탄사에 밥장 님은 손사레를 치며 다이어리를 단지 “일상의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면서 옆에 두고 나의 이야기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기록의 고수가 다이어리를 활용하는 방법


1. 다이어리는 단순한 플래너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이어리를 단순히 달력 또는 플래너로만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록의 고수 밥장님은 다이어리의 본질은 경험의 기록이고 그 기록에는 경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글, 그림 등 어떤 방법으로든 나의 기호로 다이어리에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 생각, 시선 또 함께한 사람들…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이야기들에 경계는 없어요. 이것은 나의 시간에 대한 증명이자 곧 영감의 원천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 여행가 그리고 방송인. 이렇게 다양한 직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크리에이티브는 결국 경험에서 나오는 것. 경험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로 아이디어 노트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잊혀지는 아이디어를 잡아내는 것 또한 기록입니다. 특히 손으로 남기는 기록의 각인효과는 두 배, 활용도는 200%입니다.

 


2. 여행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밥장표 다이어리의 화룡정점은 누가 뭐래도 여행다이어리입니다. 그는 여행 때마다 하나의 스페셜 노트를 만든다고 했는데요. 여행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고, 사색의 내용을 글로 옮기기도 하고, 티켓이나 사진•브로슈어 같은 것들을 스크랩하기도 합니다.

 

“가끔 서울 시내에서 마주치는 관광객들을 보며 ‘저런 사진을 왜 찍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근데 우리도 막상 여행자가 되면 그들과 똑같을 거예요. 여행지에서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감수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처럼 여행은 나도 모르던 나의 오감이 활짝 열리는 경험이예요.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그 순간 순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여행의 추억을 더욱 특별하게 남기는 방법인거죠.”

 

이집트, 발리, 아르헨티나, 나가사키, 가장 최근에 몽골까지. 그의 여행 다이어리는 한 권의 여행 서적을 방불케 하는데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여행 가이드 북 입니다.

 

“여행갈 때 카메라나 노트북 챙기는 사람은 많지만 펜과 다이어리 챙기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조금만이라도 시간 내서 생각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림도 좋고 글도 좋아요.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을 그냥 흘려 보내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펜과 다이어리는 공항 소지품 검사 때도 문제없고 기내 반입도 편리하고, 분실 우려도 적은데 얼마나 좋아요.(하하)”

 


3. 내가 바로 저널리스트!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여행 뿐 아니라 내가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일을 할때는 평소보다 더 큰 감명을 받게되는데요. 그때의 풍부한 생각은 금새 날아가기 일쑤입니다. 이런 휘발성이 높은 이야기를 붙잡아 놓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따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북 저널, 영화 저널, 비어 저널까지. 관심사에 따라 다르게 설정한 다이어리에 따로 이야기를 새겨놓습니다. 여기서는 내가 바로 스페셜리스트이며 내가 바로 저널리스트입니다.

 

“이렇게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따로 기록을 해놓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으면,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 책을 쓸 때 고생을 안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제 경험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경험과 감상들을 따로 기록해놓은 이 다이어리를 한번만 다시 쫙 읽어봐도 그때의 느낌이 금새 살아나서 이야기가 잘 정리가 되거든요.”

 

밥장 님이 일러스트 가이드북 뿐 아니라 에세이, 여행서적, 인문학 책 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작가가 될 수 있던 비결도 바로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스타벅스 다이어리도 밥장처럼!





이 많은 기록의 장점과 매력,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하시는 분들 여전히 많을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미루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버리기도 하고, 좀 더 잘 써보고 싶은 마음에 쉽게 펜을 들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스티커 하나 하나 공들여 득템한 스타벅스 다이어리도 1,2월이 지나면 책상 한 켠에 처박혀있기 일쑤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다이어리에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하고 한땀 한땀 신경써서 열심히 썼었어요.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하더라구요. 사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다이어리를 쓰는 건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색깔을 찾아야 해요.”

 

나의 이야기를 담은 기억의 습작. 그 시작은 내 마음의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글솜씨도, 예쁜 글씨체도, 유려한 그림도 필요 없습니다.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있고 SNS도 있지만 직접 손으로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손맛은 한번 맛들이면 끊기가 힘듭니다. 나만의 기호로 완성된 나의 손 때묻은 이야기가 한권씩 쌓이는 재미와 보람도 쏠쏠합니다.





“일단 한 권만 써보세요. 예쁘지 않아도 되고 멋지지 않아도 되요. 뒷장까지 빽빽하게 채우지 않더라도, 앞장만 써서 한장 한장 넘겨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예요. 나의 이야기를 담은 다이어리 한 권이 완성되고 나면 작품 하나를 완성한 것 같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거예요. 그것이 기록하는 습관의 시작입니다. 새해에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한번 완성해보세요. 저도 2016년에는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시작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