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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아메리칸 소울, 햄버거
정동현
#정동현



“살이 왜 쪘냐고? 왜냐면 일 마치고 나면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으니까.”

 

“오, 이렇게 예쁘고 멋진 음식을 만드는 당신 같은 요리사가요?”

 

포니테일 헤어스타일을 하고 동그랗고 큰 안경을 쓴 신참 웨이트리스 제인이 주방장 제이크의 배를 보며 사연을 물었다.. 전후 사정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오래 일하고(일주일에 70시간) 잘 먹지도 못하는데(먹을 틈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이 찌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제이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대화를 듣던 다른 요리사들은 공범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그 중 미국에서 온 마이클의 눈빛은 ‘햄버거’라는 단어에 급격히 반응했다. 분명 입 안에서 침이 돌고 있을 마이클을 보며 나는 ‘저 치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미국의 배추김치, ‘치즈 버거’

영국 시골의 펍(pub)에서 치즈버거를 발견 했을 때 단 1초도 망설이지 않던 학교 친구 프랭키의 구수하고 느끼한 미국 악센트도 떠올랐다. 몇 안 되는 나의 미국 친구들은 모두 햄버거를 사랑했다. 그것은 분명 한민족에게 김치와 같은 위상이었다. 그리고 ‘치즈 버거’는 ‘배추 김치’와 비슷했다.

 

아이언맨(2008년)의 토니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탈출해 처음 주문한 것도 바로 치즈 버거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딱 두 개야. 첫번째는 어메리칸 치즈 버거. 그리고 기자회견을 준비해줘. 일단 치즈 버거.”

 

피투성이가 된 토니 스타크는 배달된 치즈버거(맥도날드가 아니라 버거킹이었다)를 먹으며 기자 회견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기자 회견장에서 두 번째 햄버거를 마저 먹고 나서야 입을 연다. 2016년 지금이었다면 아마 토니 스타크는 버거킹이 아닌 다른 햄버거를 먹었을 것이다.



| 미국 동부를 주름잡고 있는 셰이크쉑(Shake Shack)

 

지금 미국 햄버거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 계의 대부 대니 마이어가 2001년 뉴욕 메디슨 파크에서 처음 시작한 셰이크쉑(Shake Shack)은 햄버거의 신약 성경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것은 동부의 사정. 메이저 리그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로 나눠지듯 햄버거의 신약 성경도 미국 서부에서는 셰이크쉑이 아닌 인앤아웃(IN-N-OUT)버거다.



  

| 동부에 셰이크쉑이 있다면, 서부에는 인앤애웃(IN-N-OUT)

 

이 두 버거의 인기 비결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만드는 것.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라는 말 처럼 들리는 이 비결 뒤 본질을 보면 이 또한 햄버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빵 사이에 소고기 패티와 양파, 양상추, 피클, 그리고 치즈를 넣은 치즈 버거다.

    

 

햄버거, 결코 단순한 정크푸드가 아니다!

치즈 버거의 구성은 음식 공학적으로 볼 때 거의 완벽하다. 햄버거 빵은 폭신하고 살짝 구운 빵 안 쪽은 바삭하다. 양파와 양상추는 바삭한 식감과 신선한 감각을 선사한다. 피클은 산미로 식욕을 돋우고 구운 패티에서는 인류가 거부할 수 없는 구운 맛이 난다. 열량 가득한 지방인 치즈는 이성을 마비시키며 햄버거 속 재료를 하나로 묶는다.


  



단순하기 보다 복합적인 감각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그리고 요리사들)은 이렇게 무력해진다. 영양학적으로도 그렇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으로 이뤄진 3대 영양소가 딱 보기에도 적절히 안배된 구성이다.

 

여기서 잠깐. 이 치즈버거는 음식으로만 분석하기엔 그 함의(含意)가 재미나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요소 요소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된 치즈 버거는 서양 환원주의(Reductionism) 철학이 음식으로 현현(顯現)한 가장 똑부러지는 예이기도 하다. 어떤 상태나 물질을 최소 단위를 향해 나눠가다보면 그 요소 뿐만 아니라 전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으리란 사고가 바탕이 된 환원주의. 그 환원주의처럼 치즈 버거는 고기, 채소, 빵, 치즈라는 구성 요소 그 자체를 겹쳐 만든 공학적 음식이다. 그리고 이 치즈 버거를 빨리 달라고 외치는 아이언맨은 미국 액션 히어로 물의 전형이라는 면에서 또 다른 환원주의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세계 각지의 민속 신화를 수집 분석 했던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Joseph Campbell)은 그의 저서 ‘천 가지 얼굴을 한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에서 모든 신화는 한 가지 유형을 띈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는 영웅이 미지의 땅으로 뛰어들고 (출발, Departure) 그곳에서 악의 무리와 만나 결국 승리 한 뒤 (시련, Initiation)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물을 가지고 온다는(귀환, Return) 것이다. 이것은 아이언맨의 스토리 라인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무슨 뜻일까? 빵(도입)을 거쳐 양파와 양상추(전개)가 이에 닿으면 그 후는 피클의 신맛(위기), 구운 패티와 치즈로 클라이막스(절정)에 이르고 다시 결말(빵)으로 향하는 구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아이언맨 속 치즈버거는 부분이 전체를 반영하고 복제하는 프렉탈(fractal) 구조를 닮아 있다. 그리고 관객은 치즈 버거를 먹으며(또!) 아이언맨을 보고, 아이언맨 속 풍경과 비슷한 세상에서 같은 삶을 반복한다.

 

아이언맨에서 '조력자'에 해당하는 깡마른 안경잡이 기술자 ‘잉센’은(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부상 입은 토니 스타크를 고쳐준다) 가족이 없다는 스타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중요한 게 없군요.”

 

나는 늦은 밤 치즈 버거를 먹으며 배가 부르고 혀가 즐거웠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에 맥주를 마시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었다. 그 나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요리를 하겠다고 하루종일 주방에 서 있는 나의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삶과, 그 치즈 버거의 완벽한 효율성의 괴리. 그리고 측정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은유와 충동이 그 치즈 버거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날 밤 포니테일의 예쁘장한 제인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들여 먹는 비효율적인 식사를 떠올리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얕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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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김치찌개를 찾아서
정동현
#정동현

*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김치찌개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전에 이야기 했듯이 지인은 얼마 전부터 냉면문화연구소에 출근을 시작했다. 이름이 이름이다보니, 역전의 주자처럼 지치지 않고 냉면을 먹고 있는데, 아무리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일주일 연속으로, 하루 세 번, 스물 한 끼를 냉면으로 떼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최소한 술 마신 다음날은 해장라면, 회식 할 때는 삼겹살이라는 패턴이 있다.

 

그러나 이놈의 냉면문화연구소는 해장으로는 팔도비빔면, 회식으로는 중화냉면을 먹는 만행을 저지른다고 하니, 지인은 이러다가 몸의 피는 육수가 되고 근육은 냉면가닥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인은 용기를 내어 동료 연구원들에게 "오늘 점심은 냉면 말고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제안을 했다. 이에 연구원들은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흠칫 놀라더니 '허허, 이 사람 참 맹랑하구먼' '아직 새해도 오지 않았는데, 다른 메뉴라니요, 남사스러워서' '아직 신입이라 어쩔 수 없는가보죠'라며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과는 달리 그들의 눈은 묘한 희열과 해방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제일 연장자 격인 김선생이 말을 꺼냈다.

 

"뭐 그럼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도록 하죠.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지인이 말했다.

 

"오늘따라 유난이 속이 허하니, 얼큰하고 시원한 김치찌개가 어떠합니까?"





이에, 사람들은 말문이 트인 벙어리처럼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한 것이, 코 옆에는 콩알만한 점이 있는 박선생이 선수를 쳤다.

 

"역시 김치찌개라면 광화문에 있는 광화문집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김치찌개 용으로 젓갈을 적게 넣어 김치를 담궈 국물이 시원하며, 돼지 목살을 아낌 없이 썼기에 든든하기까지 하니, 장안의 김치찌개 집 중에서는 최고라는데 이견이 없지요. 게다가 계란말이까지 곁들이면 한끼 식사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혀가 있고 맛을 느낄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이 집을 가야 합니다."

 

"광화문집에 들어간 고기가 고기요? 그걸 가지고 고기라고 말한다면 저기 우래옥 옆에 있는 은주정의 고기는 맘모스 정도 되겠소이다. 자고로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고기란 은주정 정도 되어야, '아 고기가 들어갔구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기가 적어 속이 허전하니 계란말이 같은 것을 시키는 게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은주정은 상추까지 따로 주니, 광화문집이랑은 비할 것이 아니지요."

 

"아니, 이 사람 키만 작은 줄 알았더니, 김치찌개 맛도 잘 모르는구려. 원래 김치찌개란 것이 김장김치가 남아서 처치 곤란할 때, 봄 쯤 되어서야 먹을 수 있던 그런 음식 아니겠소? 우리가 이렇게 사시사철 김치찌개를 먹은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소. 그런 면에서 광화문집이나 은주정의 김치찌개는 김치찌개의 원형에서 한참 벗어난 것임을 모르시나 보군요. 게다가 부르스타 위에 냄비를 올려 끓여먹는 것 역시 80년 대 이후에 나타는 풍습이라오. 그런면에서 공덕 굴다리집이야 말로 김치찌개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하는 곳이지요. 냉면 그릇 가득, 살살 녹는 김치에 돼지 앞다리 살을 써서 쫀득거리면서도 비계의 달달한 맛이 살아있는 그 김치찌개의 맛은 가히 장안의 최고 아니겠습니까? 을지면옥 운운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입맛 참."

 

"거기서 을지면옥이 왜 나옵니까? 계속 원형 원형 그러는데, 어차피 모든 음식은 발전하고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선생들이 말한 그 김치찌개집들은 반찬재활용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산더미처럼 김치나 반찬들을 내놓던 곳이 아니요? 그 전후로 내놓는 반찬의 양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럼 뻔한 것이지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정된 맛으로 접객을 하는 새마을 식당에 가는 것이 낫습니다. 7분 김치찌개는 비록 체인점이지만, 얇게 썰어낸 돼지고기에 김치를 듬뿍 올려 자작하게 끓여낸 것이, 백종원 씨의 탁월한 감각이 발휘된 명작이지요. 자고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이지요. 거, 자기 입맛이 최고라고 으시대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요. 쯧쯧, 그러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지요."

 

"갑자기 웬 나라 타령이요? 그때도 함흥냉면 타령 하시더니 역시 입맛이 영 유치하시구랴, 그렇게 화학조미료 팍팍 들어가고 어린 애들 알바 써서 내놓는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소? 당신 머리 빠진 것도 다 그런 화학조미료 때문에 그런거요. 유전자도 한 반 쯤 변형 되었을 것이니, 조금만 지나면 초록색으로 변할지도 모를 일, 조심하시오, 조선생."

 

"머리카락 이야기는 왜 해? 니가 탈모인의 심정을 알아? 함흥냉면에도 깊이가 있고, 그 싼 김치찌개 한 그릇에도 문화가 담겨 있는 거라고."

"그래봤자 대머리고 그래봤자 싸구려 음식이지, 그런 걸 먹으니까 머리가 빠지는 거야."

"누군 빠지고 싶어서 빠지냐! 내가 오백만 탈모인을 대표해서 너를 응징하리라. 이 자식아!"


그 말과 동시에 건축을 전공한 조선생이 책상 위로 올라갔고,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박선생은 조선생에게 머리채가 붙잡혔다. 이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법학박사 정선생도 협공을 시작, 사무실은 탈모인 대 비탈모인의 대결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직 머리털이 빼곡한 지인은 난리가 벌어지기 직전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간 지라, 참변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요즘엔 주방 찬모들 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캡사이신을 허공에 뿌려대니, 굳이 김치찌개 집이 아니더라도 눈물 콧물 빼어 가며 매콤한 맛을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마 오늘은 광화문 일대가 김치찌개 풍 공기가 될 터이다. 그러니 공짜로 한국 전통의 맛을 즐길 자는 광화문과 시청 주변으로 모이시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태평성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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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 최고의 냉면 맛을 찾아서
정동현
#정동현



* 들어가기에 앞서 본 이야기는 보다 재미있는 냉면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구임을 밝힙니다.


강남 테헤란로 110번지 우리은행 5층, 504호에는 냉면문화연구소(사)가 있다. 그곳에서는 한국 냉면 문화의 역사 및 진흥 발전에 대한 연구 및 대안 제시를 하는 곳이다. 공채는 하고 있지 않으며, 수시로 채용이 이루어지니 입사를 원한다면 연구소 홈페이지 올라오는 채용공고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근래 입사한 지인의 말에 따르면, 연구소원의 평균 스팩은 박사급 5명, 석사급 4명으로, 토익은 물론 중국어에 능통한 이도 다수라고 한다. 전공은 제각각인데, 러시아문학부터 국문학, 그리고 경영학 및 컴퓨터 공학 등 그 공통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단지 그들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특성을 든다면 역시 냉면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지인이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면접을 치룰 때, 면접관은 지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최고의 냉면집은 어디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지인은 ‘제 생각에 을지면옥은 옛날의 명성에 기대어 그 맛이 하락중이고, 역시 강호의 최강자는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우래옥이 아닌가 여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인이 답하자마자 면접은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혼란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인의 답에 면접관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떻게 을지면옥의 맛이 하락세란 말인가?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김선생, 어찌 맛에 객관적인 증거를 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맛이 떨어짐을 안다는 것은 증거가 필요 없는 일이요, 단지 단 것과 짠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누구나 아는 것 아니요, 허허 참.”


“박선생,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구려. 비록 을지면옥을 찾는 이들이 백발성성한 노인들이 대다수라고 하나, 그것이야 말로 을지면옥의 맛이 한결같고 냉면이 추구하는 본질에 가깝다는 증거 아니요?”


“김선생, 노인들의 입맛을 어찌 믿는다는 말이요? 그들의 미각이란 그들이 지나온 세월이 무뎌지고 술 담배 등 각종 유해물질에 감각이 상하여, 면수에도 간장을 타서 먹어야 겨우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지 않소.”



평양냉면 면의 주 재료, 메밀



그때 정선생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에 을지면옥이나 우래옥이나 냉면의 대세에서는 멀어졌다고 봅니다. 이제 우래옥에서 일하던 김태원 명인이 봉피양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종로의 시대는 가고 이제 강남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사대문 냉면 사대천황이니 하던 것들은 이제 옛날 이야기지요.”


그 옆에 있던 조선생이 한 수 거든다.


“장충동에 있는 평양면옥이야 말로, 냉면의 진수이지요. 냉면 한 젓가락을 입 안에 넣고, 육수를 같이 마시면, 메밀꽃 필 무렵의 서정이 입 안에서 펼쳐지니, 그것이야 말로 한국 냉면 문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이자, 한국 민속 문화의 깊이 아니겠습니까?”


이때부터 면접관들은 지인의 존재를 잊은 채 싸움… 논쟁을 이어갔다.



메밀향이 나는 거친 면과 맑은 육수의 평양냉면



“마포에 있는 을밀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소? 살얼음이 낀 육수는 가히 해장 냉면의 최고봉이라고 하는데, 이런 특수적인 상황에서의 냉면의 위치와 효용을 따지자면 냉면집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냉면 육수에 얼음이 껴서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이 연해지고, 마치 녹아버린 팥빙수 먹는 느낌이 나거늘, 을밀대의 냉면은 정파도 아니고, 단지 분식집 냉면이 진화한 것에 불과하지요. 얼음이라니, 쯧쯧.”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입맛이 바뀌고, 거기에 맞춰 발전해나가는 것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분식집 운운하다니요, 을밀대의 역사와 전통을 보세요. 참, 이런 분하고 내가 같이 일하고 있다니!”



고구마 전분의 쫄깃한 면과 새콤달콤한 육수의 함흥냉면



“아니, 그럼 함흥냉면은 어떻게 할겁니까?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의 솥을 받치는 세 개의 발 마냥, 오장동을 지배하는 세 곳의 냉면집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요? 이거 너무 편협한 것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함흥냉면도 평양냉면에 비해 못할 것 없는 역사와 맛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갑자기 웬 함흥냉면이요? 이 사람 입맛 참 후지네.”


“뭐라고? 아니 그럼 발씻은 물 맛 나는 육수가 좋다고 하는 당신 입맛은 뭔데?”


“발 씻은 물이라니, 그 은은하고 진하며, 깊디 깊은 맛을 그렇게 말해?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요, 찬란하고 고귀한 기호를 꿋꿋히 지켜가는 천만 냉면인에 대한 모욕이야!”


그 말과 동시에 책상 위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박사가 올라가고, 국문학 박사의 구두가 날아다녔으며,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법학박사는 몇 줌 없는 머리카락이 뽑혔다. 지인은 그 아수라장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


며칠 후 지인에게 합격을 알리는 편지가 도착했는데, 지인이 추측하기로 우래옥을 좋아한 연구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그 연구원은 지인에게 ‘참으로 강단있고 소신있는 사람’이라며 반겼다고 한다.


냉면의 계절 여름, 더욱 냉면연구소에 할 일이 많아졌다. 냉면이 가장 인기많은 시기에 발맞춰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 한국 전통 문화 발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웬만하면 함흥냉면이나 비빔냉면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빨개서라나. 냉면이름에 평양이니 함흥이니 이름이 붙어 가뜩이나 의심의 눈길을 사고 있는데, 더 나아가면 안된다며,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조심할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나는 ‘하여간 먹물들은 어쩔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호기롭게 빨간 냉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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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한국인의 힘, 매운맛
정동현
#삼식일기



“쏘 스파이시!”

 

요리사들의 식사 시간, 같이 일하던 한국 요리사가 한국 특산품이라며 뭔가를 끓여 솥째 냈다. 한눈에 봐도 시뻘건 그 무엇, 호기심 많은 몇몇이 젓가락 대신 포크를 대보았지만 다 나가떨어졌다. 오마이갓!

 

“왓 이즈 잇?”

“잇츠 코리안 누들, 라면.”

 

득이양양한 미소를 짓던 그 한국 요리사의 얼굴, 반면 입안에 라면을 넣었던 하얀 얼굴의 요리사들은 얼굴이 삶은 랍스타처럼 시뻘개졌다. 한국에서 술 마신 다음 날이면 꼭 끓여먹던 그 빨간 포장의 라면, 외국인들에겐 도저히 입도 못댈 음식이었다. 하긴 나도 외국에 있다 한국에 오면 꼭 며칠을 고생했다. 위가 맵고 뒤가 매워서 말이다.

 

 

한국인의 ‘매운맛’



그 고생을 하면서도 외국에 있으면 빨갛게 매운 것들이 자주 당겼다. 지금도 날이 쌀쌀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속이 허전하면 방법이 없다. 그런 날은 무교동으로 향한다. 낙지 반 양념 반, 고추장, 고춧가루를 아낌 없이 털어넣어서, 한 입 넣으면 입 안이 타들어가고 속이 쓰린 낙지 볶음을 파는 그곳, 단무지나 조개탕이 없으면 도저히 하나를 다 해치울 수가 없기에, ‘이것은 조개탕을 팔기 위한 수작인가’, 라는 음모론을 품기도 하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며 이런 것을 먹어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불평을 하지만, 이게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구남친의 문자처럼, 불현듯 생각이 난다. 그러면 나는 기어코 무교동까지 찾아가 낙지 볶음을 시켜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좀 과하다. 매운 음식 앞에 빼지 않는 대한의 남아이지만, 매운 음식 가지고 외국 친구들 여러번 골려먹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조금만 둘러보면 사방천지에 매운맛이다. 동네 뒷골목에도, 명동 사거리에도, 매운 맛을 빼놓고는 식당 장사가 되지 않는다. 흔한 것이 불닭이요, 먹다 보면 화가 나는 그 음식을 사람들은 많이도 사먹는다. 그것뿐인가? 거의 서커스 수준으로 매운 짬뽕에, 매운 짜장면, 매운 떡볶이 등등, 한국 음식은 매운 것 투성이다. 매운 게 문제일까? 문제다. 취향은 존중해주세요, 라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것은 문화현상이고 더구나 좋지 않은 종류다. 간단하다. 너무 매우면 다른 맛들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 민족은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화끈하게 매운 민족이라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며, 이 매운 맛이야 말로 널리 알려야 할 한국의 맛이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한국 사람이 매운 맛을 즐긴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알지만 고추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후였다. 남미에서 자라던 고추가 세계를 절반이나 돌아 일본에 왔고 그것이 한국까지 전래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운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백김치만 있던 김치가 시뻘개지고 방방곡곡 고추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얼마전 방송에 이런 내용도 나왔더랬다. 1924년 조리책에 보면 맨드라미로 붉은색을 내라고 할 정도로 고춧가루가 귀해 배추 한 포기에 밥숟가락 하나 정도만 넣었다는 것이다. 멀지 않은 과거인 70년대에는 28그램 정도로 늘었으나 여전히 적은 양이었던 것이 2000년 이후에는 포기당 71그램으로 늘어 80여 년 만에 김치가 12배 매워졌다는 기사였다(2015.4.21. MBC). 매운 맛으로 신문을 검색해봐도 그 추세를 알 수 있다. 1900년대에는 거의 검색되지 않던 ‘매운’이란 키워드는 2000년 대로 향할수록 꾸준히 증가한다. 인기 상품도 그렇다. 아직까지 건재한 ‘불닭’이 처음 선보인 것도 1990년대 후반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1999년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매운콩라면’이었다.





우리만 맵게 먹는게 아니라며, 중국의 사천음식, 똠양꿍으로 대표되는 태국 음식, 그리고 빈달루(vindaloo) 커리를 먹는 인도처럼 매운 음식 먹는 나라가 많다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맵다고 소문난 그것들도 한국 음식의 맵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먼저 스타일이 다르다. 사천, 타이 음식의 매운맛은 아웃복서의 날카로운 잽 같다. 특히 사천의 매운맛은 사천 후추, 외국에선 시쯔완 페퍼라고 부르는 ‘초피’가 주인공이다(흔히 산초로 아는데 초피와 산초는 엄연히 다르다. 추어탕어 넣어먹는 그것은 초피가 맞다). 고추가 들어오기 전 한국에서도 매운맛을 담당했던 이 초피는 날아갈듯 가볍게 맵다. 뒤로는 시트러스류의 경쾌한 향을 남기는데 그래서 빨래비누 맛이 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 그 맛과 향이다. 태국의 매운맛도 비슷하다. 향은 덜하지만 매운맛을 쓰는 방법은 여자들이 반짝이는 악세서리를 하듯 맛에 악센트를 주기 위함이 보통이다. 인도 고아 지방 원산의 빈달루 커리는 한국의 매운맛과 비슷하다면 가장 비슷하다. 밑에서부터 천천히 달아오르는 매운맛이다. 무게감은 글쎄, 제대로 맞아 본 적은 없지만 중량급 복서 정도 될 것 같다. 게다가 시큼하고 향신료의 향도 복잡다양해 마치 기교파 선수를 보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매운맛이란 헤비급 복서가 내민 묵직한 펀치 같다. 맞으면 퍽하고 날아갈 것 같은. 근래에는 태반이 공장표 고추장으로 매운맛을 내는데, 그 맛이란 고추장의 물성처럼 무겁고 질척인다. 고추장만으로는 날카롭고 짜릿한 매운맛을 낼 수가 없으니 이름부터가 화학약품스러운 ‘캡사이신’을 따로 넣는다. 비타민 C처럼 자체로는 향과 맛이 없는 이 캡사이신이 매운맛의 근원이다. 매운맛으로는 맛이 비는 듯하니 설탕 물엿을 팍팍 집어넣는다. 달고 맵고, 아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고 서서히 중독되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널리 알리고 알려야 하는 한국의 매운맛이 이렇게 탄생한다.

 

 

왜 우리는 매운맛에 중독될까?



여기서 매운맛이란 무엇인지 한번 집고 넘어가야겠다. 매운맛이란 맛이 아니다. 통증이다. 혀를 얼얼하게 하고 귀까지 멍멍하게 하는 이유는 매운맛이란 통증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리 사람들은 매운맛에 ‘홀릭’할까? 왜냐면 매운맛이 가져온 통증을 이겨내고자 뇌에서 ‘엔드로핀’을 내뿜어서 그렇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그 엔도르핀이 맞다. 이 천연 마약 엔드로핀 때문에, 사람들은 매운맛에 ‘중독’ 된다. 그럼 왜 하필 우리는 매운맛에 중독되었을까?





앞서 적었듯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나와 스트레스가 풀린다. 내가 생각한 답은 간단히 이렇다. 한국 사회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들이 해소 방법을 찾는다. 한국에는 매운 음식 전통이 있다. 되먹임 과정을 통해 매운 음식이 붐을 일으킨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고리다. 소득격차는 커지고 물가는 오르나 가처분소득은 그만큼 증가하지 못했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는 집에서 요리할 시간도 많지 않다. 돈은 없고 스트레스는 받고 시간은 없으니, 싸고 매운 식당 음식을 찾는다. IMF 직후 급격히 대학가를 점령하던 불닭집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매워지던 음식들, 심지어 요리사들도 겁이나 만지지 못하는 그 독하게 매운 것을 입에 넣고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더구나 매운맛이 재료의 질은 두꺼운 화장을 칠한 것처럼 감쪽같이 감춰 버리니 원재료 값을 낮추는데 이만한 효자가 없다. 어딜 가나 똑같이 십 킬로 단위 담은 덕용 고추장을 쓰니 조선 팔도 음식 맛이 비슷해졌다. 매운맛의 악순환이다.





나도 이 악순환의 고리 안에 있다. ‘미쳐야 미친다’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외치는 이 땅에서, 독하지 않고는 ‘열정’이 없고 ‘패기’가 없다며 핀잔이나 듣는다. 매번 이를 악물고 파이팅을 외치다보니 몸에 순한 것이 맞지 않는다. 국산에 태국산 종자를 교배해 만든 청양고추를 공장표 고추장에 찍어 아삭 깨물고, 알콜에 조미료를 타고 물을 섞은 희석식 소주를 마셔야만 이 독하디 독한 하루가 끝이 난다. 어쩌겠나, 어젯밤 마신 술에 위장은 또 매운 것을 부르고, 어느덧 그 독한 것들에 인이 박혀버렸으며, 버텨야할 하루가 또 찾아오는데.

 

“여기 고추 짬뽕이요!”

 

오늘도 나는 고추장 먹는 싸움닭처럼 그 독한 것을 들이키며,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흘려보낸다. 먹고 살기 참 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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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저는 짜게먹습니다”
정동현
#정동현


소금을 한 줌 먹어본 일이 있는가? 순대에 딸려나오는 꽃소금을 한방에 털어넣었다고 하면 감이 오려나, 정확하게는 두 봉지 분량을 한 방에 탁! 하고. 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절대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리 호기심이 충만해도, 용기가 넘쳐나도, 그것만은 말리고 싶다.


“윽.”


고통스러웠다. ‘짜다’라는 단순하고 냉정한 형용사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혓바닥의 세포들이 소금에 절여지는 것 같았다. 더불어 왜 옛날 고문을 할 때 상처에 소금을 부었는지, 덤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만큼 악에 받쳐 있었다. 다 소금 때문이었다.





“간을 더(more seasoning).”


백이면 백, 나의 냄비는 되돌아왔다. 호주 멜버른의 한 호텔, 올해의 셰프로 뽑히기도 했던 영국 런던 출신, 잘생겼던 나의 헤드셰프 존(John)은 반백발의 무리뉴 감독처럼 냉정했고 그의 혀는 그랙 메덕스가 던진 공처럼 예리했다. 그리고 나는 믿음이 부족한 신자였다.


‘더(more)?’


차마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하루가 될테니까. 그러나 의심은 거둬지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소금을 넣으란 말인가?



소금, 간 맞춤 그 이상





이 내적 갈등은 요리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소금 그리고 버터는 요리학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재료였다. 서양 애들도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퍼쓰던 버터는 그렇다치더라도, 서양식 ‘간맞춤’은 내가 요리학교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새로움이었다.


“리얼리?”

“예쓰!”


인심 좋아보이던 아줌마 선생님도 간을 볼 때만은 단호했다. 왜냐면 어떤 요리든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서양 요리에서 소금 간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식처럼 간을 보조할 수 있는 매운맛이나 감칠맛이 흔하지 않다(MSG를 넣으면 소금을 적게 써도 된다). 더구나 크림이나 버터 같은 유지류를 많이 쓰기 때문에 웬만큼 간을 해서는 표시도 나지 않는다. 또한 요리의 중심이 되는 소스를 한국처럼 마시지 않기에 염도가 높더라도 괜찮다.


소금의 역할은 단지 짠맛을 가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소금은 어렵게 말해서 수용액 속의 이온의 힘을 증가시켜, 냄새 분자가 음식으로부터 쉽게 분리될 수 있게 만든다. 쉽게 말하면 소금을 넣으면 향이 더 두드러진다. 게다가 음식의 잡맛과 쓴맛을 없애주고 재료가 가진 맛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어떤 바리스타들은 그 이유로 커피를 내릴 때 소금을 조금 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서양식 소금 치기 요령은 ‘끝’까지다. 조금이라도 더 넣으면 ‘짜다’고 느끼기 직전까지 소금 간을 한다. 아슬아슬하게 간을 하면 맛이 쨍하게 살아난다. 마치 포토샵 보정 버튼을 클릭하면 흐릿했던 그림자가 걷히는 것과 같다. 단호박 수프를 끓일 때 단맛을 더하기 위해서 설탕 대신 소금을 넣는 이유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고기에 소금을 치는 것은 단지 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고 숨은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 소금이 필요하다. 무염버터와 가염버터의 차이도 생각해보시라. 100g의 가염버터에 든 소금은 2g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맛은 천지 차이다.


사실 이런 팩트를 알려면 하룻밤이면 족하다. 어려운 것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고, 더 어려운 것은 그 맛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레스토랑 주방에 갓 발을 내딛은 그때, 나는 존이 만들어 놓은 그 맛, 그 염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나의 험난한 ‘소금의 맛’ 정복기





“어게인.”


내가 만든 폴렌타(polenta, 이탈리아식 옥수수죽)를 앞에 두고 존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간이 부족했다. 손님이 밀어닥치는 저녁 시간, 다시 냄비를 가져다가 소금을 뿌리고 간을 맞추기엔 너무 급했다. 답안지를 밀려 썼는데 시험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매일 계속 같은 음식을 만들어야만 알 수 있는 그 미묘한 차이, 존은 100이 아니라면 95도 만족하지 않았다.


“너무 짜잖아!”


그러다 기어코 사달이 났다. 영점을 조절하듯 조심스러워야 했건만,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한 번에, 그 100점을 맞추겠다는 욕심에 소금을 ‘조금’ 많이 넣었더니 100이 아닌 110이 되었다. 먹을 수 없는 요리가 된 것이다. 존의 고함 소리가 주방을 절반으로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나의 리듬은 어긋났고 존의 욕지거리는 나만을 향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주문은 인정사정 없이 밀려올 뿐이었다. 땀이 흘러들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피크 타임의 한 복판 어딘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아귀에는 소금이 있었다. 그때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고3 시절, 나는 틀린 시험지를 찢어 먹곤 했다. 그 심정으로, 나는 앙갚음이라도 하듯 소금을 입 속에 집어 넣었다. 뇌가 흔들리고 혀가 뽑히는 것 같았다. 그날, 내 입에서는 소금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수모를 당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주방에서 나가는 모든 음식을 먹어보는 존의 입에 딱 걸리면 욕지거리는 예사요, 심하면 냄비가 날아다닌다. 사흘 뒤 동료 요리사에게 그런 날이 찾아왔다. 인도 출신, 그 착한(나를 많이 도와줬다는 뜻이다) ‘싱’의 냄비가 주방 바닥에 나뒹굴고 폴렌타는 주방 바닥에 엎질러졌다. 존은 세상에서 가장 심한 모욕을 들은 것처럼 얼굴이 뻘개져서 식식거렸다. 영국 악센트로 하는 욕은 또 어찌나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지, ‘발음 참 찰지다’, 생각할무렵 부주방장이 냄비를 나에게 드밀었다.


“네가 대신 해.”


밥 한 그릇 더먹으라는 권유였다면 ‘괜찮다’고 짐짓 거절했을텐데, 그것은 아니되오,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는 주방에 있었다.


“예쓰.”


사흘 전 그날처럼 나는 냄비를 잡았다. 사실 조리랄게 없었다. 폴렌타에 육수와 우유를 조금 넣고 데워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최후의 관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흘 전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소금 간이었다. 열을 받은 폴렌타가 부글부글 끓었다. 이제 소금 차례, 하얀 소금을 집어 뿌렸다. 조금씩 색칠을 하듯이, 여리디 여린 꽃을 쓰다듬듯이. 음. 맛을 보니 약간 부족하다. 조금만 더 살짝. 아. 거의 다 됐다. 97점 정도 됐을까? 슬쩍 고개를 돌려 옆으로 보니 나의 헤드셰프 존이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밖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레스토랑에 바글댔고 앞으로 나가야할 음식이 줄을 서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소금을 더했다. 저 옛날 용 그림에 눈을 그려넣던 화가의 심정이 그랬을까? 폴렌타를 입에 넣었다. 짰다. 그러나 짜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는 소리가 들린다. 짜면서도 짜지 않다니. 그 맛에는 긴장감이 있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흐트러질 것 같은 절묘한 균형, 내 입으로 100점이라고 하긴 뭐하니, 한 99점 정도였달까? 딱 이거다 싶었다. 존은 내가 넘긴 폴렌타의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끄덕였다. 그리고 던진 한 마디.


“이 맛을 기억해.”



“저는 짜게 먹습니다”





아마 존이 한국에 온다면 그 잘생긴 얼굴이 여러번 구겨졌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식사를 하다보면 간이 안 된 음식을 자주 만난다. 특히 양식이 그렇다. 싱겁게 먹는 것이 마치 문화적인 우월감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가 된 것 같다. 음식 평을 할 때도 ‘짜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마트 선반에 가면 짜지 않은 소금이 있고, 간이 되지 않은 파스타가 ‘짜지 않아 좋다’는 평을 받으며 널리 팔린다. 그 배후에는 저염식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아직 나는 저염식이 건강식이라는 납득할만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다. 버클리 대학의 통계학자 데이비드는 고염식이 고혈압의 원인이라는 가설은 잘못된 통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냈다. 대신 김치에 소금을 적게 써 김치를 먹고도 식중독에 걸리는 일이 생겨났다. 소금을 적게 쓰니 김치가 발효되지 않고 부패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짜게 먹자는 게 아니다. 단지 짜야 할 것이 짜지 않고, 오로지 ‘짜다’와 ‘싱겁다’로 구분하는 맛 평가의 몰상식함에 짜증이 치밀었을 뿐이다. 하긴 그것이 사람들 잘못이랴. 사회가 모든 잘못을 개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우니 내 한 몸이라도 건강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보신주의가 판을 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메뚜기떼처럼 보신음식의 유행을 타고 여기에서 저기로 바쁘게 넘나든다.


나는 여전히 존이 나에게 기억하라고 말하던 그때 그 순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입안에 가득히 머금은 그 짠맛이 외줄타기를 하듯 똑바로 균형을 잡았을 때의 그 맛을, 그 희열을.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저는 짜게 먹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