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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보위(David Bowie) 편

데이빗 보위, 화성에서 온 남자 별이 되어 떠나다…




2000년, 영국의 음악지 NME는 20세기 음악인 중 현재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누구인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현직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요. 데이빗 보위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의 인생과 위상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입니다. 온갖 장르를 섭렵하되 특정한 스타일과 이미지에 함몰된 적 없는 데이빗 보위의 영향력은 그저 음악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2016년 1월 10일,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세상의 모든 곳에서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미술, 영화, 패션, 그리고 IT계까지. 그 내용은 그저 한 위대한 록 스타의 죽음을 기리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그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영역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설명하고 기렸습니다.


첫 번째 화성인 지구에 상륙하다



|David Bowie – Space Oddity


1966년 포크 록 성향의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한 그에게 첫 성공을 안겨준 앨범은 1969년 ‘Space Oddity’였습니다. 이 앨범에 실린 동명의 타이틀 곡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으로 달이 전설에서 현실로 착륙한 직후에 싱글로 나왔습니다. 노래는 자연스럽게 시대의 주제곡처럼 영국 차트 1위, 빌보드 15위에 올랐습니다. 그 후 두 장의 앨범을 더 발표했지만 반응은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데이빗 보위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티렉스가 시도한 글램 록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고 이기 팝의 파격을 도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1972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향후 데이빗 보위가 일생에 걸쳐 선보이는 삶으로부터의 예술과 표현의 토대가 됩니다. 다른 글램 록 뮤지션들이 고작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파격을 도모할 때 그는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음반의 화자로 삼았습니다. 또한 무대 위에서도 이러한 페르소나로 변신했습니다. 그것은 음악 역사상 전례없던 파격이었습니다. 일찍이 마임을 하기도 했던 보위는 일종의 메소드 연기로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페르소나를 완성한 것입니다. 뮤직 비디오도 없던 시대, 그는 들리는 것 못지 않게 보이는 것 역시 음악의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고 이를 극대화했던 셈입니다.


창조적 파괴로 소수자를 대표하다




|David Bowie – Starman


이 시도가 그저 시대를 앞서가기만 했다면, 보위는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데이빗 보위는 이러한 시도 속에서 자신의 편에 설 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통제에 대한 본능이 부딪히던 그 때, 보위를 자신들의 대의자로 받아들인 건 당대의 소수자와 삐딱이들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자 영화 <마션>의 삽입곡으로도 쓰인 ‘Starman’은 그래서 상징적입니다. 모호한 가사지만 보위의 불안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와 구체적인 편곡을 통해 이 노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리는 우주의 목소리,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타맨,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지만 소문은 내지 말 것, 같은 내용들은 사운드와 지기 스타더스트의 비주얼과 맞물려 어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아이들의 심리를 자극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당시의 동성애자 아이들 중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됐을까요? 그들의 억압은 종종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상상 속의 대화 친구를 만들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병자로 정의하는 결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양성애적 외모로 노래하는 보위의 ‘Starman’은 외계로부터 오는 구원의 사인에 다름 아니었을 것입니다. 설령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학교와 집에서 주입된 성정체성,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 등을 깨부수는 데 충분했습니다. 보위는 그렇게 기존의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 아름답지 않았던 것을 자신의 모든 상상력과 표현력을 동원해서 일반성과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한 발자국 끌어들였습니다. 창조적 파괴였던 셈입니다.



|David Bowie – Heroes (A Reality Tour)


그의 창조적 파괴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약물을 끊고 베를린으로 날아가 70년대 독일의 진보적 음악이었던 크라우트 록을 대중적으로 승화시켜 ‘Heroes’같은 명곡을 만들기도 했고 80년대의 화두였던 뉴 웨이브를 받아들여 ‘Let’s Dance’같은 인기곡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10년의 오랜 침묵을 깨고 조용히 내놓았던 2013년작 ‘The Next Day’는 차트에서의 높은 성적과 비평적 찬사를 모두 거머쥐며 ‘전설의 귀환’이란 문장을 상투적 수식어 이상의 의미로 증명해냈습니다.


Look up here, I’m in heaven



|David Bowie – Blackstar


그의 유작은 ‘Black Star’, 생일이자 죽음을 이틀 남긴 1월 8일 발매됐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석양이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체념과 정리, 그로 인한 담담함이 없습니다. 프리 재즈와 아트 팝 등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을 들려줍니다. 죽음을 얼마 안 남겨둔 음악인들의 앨범에서 느껴지는, 마지막 남은 생명을 쥐어짜는 듯한 절박함 비슷한 것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숙의 정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의지로 빛납니다. 그래서 이 앨범의 음악과 그 형식은 유서와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이 시점에서 보자면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인 데이빗 보위가 숨겨둔 데드 메시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가사들이 그렇습니다.



|David Bowie – Lazarus


마지막 싱글이 된 ‘Lazarus’는 그 정점입니다. 그는 두 눈 부위에 점이 찍힌 안대를 차고 병상 침대에 누워 노래합니다. 기괴한 마임과 이미지들의 시간이 흐릅니다. 곡의 종결부, 보위는 옷장으로 들어가 스스로 문을 닫습니다. 결연한 눈빛으로. 스스로 뚜껑을 닫고 관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그의 부고를 접한 뒤, 뮤직비디오를 돌려보며 영상 속 데이빗 보위의 모습을 떠올려봤습니다. 어떤 숭고함이 느껴지는 장면들입니다.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이 경지를 이뤄낸 그의 죽음은, 그래서 여느 록 스타의 그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장엄한 비극과 씁쓸한 깨달음 이상의 경외가 듭니다. 언젠가는 떠나갈 이들의 부고에서도 이런 경외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그가 잠시 머물다 간 이 세계는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온 지구의 애도가 있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아이튠즈 차트에 데이빗 보위의 노래들이 대거 진입했습니다. 미국에서 21곡, 영국에서 39곡. 영미 모두 신기록이었습니다. 생전에 한 번도 못해봤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는 인류가 바치는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현지시간 11일 저녁, 부고가 전해진지 하루가 지났습니다. 런던 브릭스톤에 만여명의 군중이 모여 들었습니다. 데이빗 보위가 태어나 자란 동네입니다. 그의 생가 근처에 있는 릿지 시네마 간판에는 상영작 대신 ‘David Bowie /Our Brixton Boy/ RIP’라는 문구가 걸렸습니다. 이 극장 벽에 추모객들은 꽃과 애도 메시지를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파티가 시작됐습니다. 극장 안에서, 극장 밖의 거리에서, 그리고 브릭스톤 일대의 펍과 카페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Starman’ ‘Change’ ‘Let’s Dance’같은 노래를 드높이 불렀습니다. DJ가 트는 음악에 맞춰 환호하며 온 몸이 터져라 춤을 췄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 루 리드 등 먼저 떠난 절친들을 만났을 데이빗 보위가 그들에게 더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풍경처럼 보였습니다.


지구는 매년 1월 10일이 되면 밤하늘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가 남긴 음악과 영화를 곱씹으며 한 때 지구에 떨어졌다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남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가 남긴 유산과 영감을 계속 발전시켜갈 것입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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