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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편
최민우


일렉트릭 기타의 모든 것, 지미 헨드릭스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1960년대는 ‘록의 시대’라 일컬어집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비치 보이스 등의 밴드들이 모두 이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록 음악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얻으며 대중음악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사랑과 평화를 주창하는 히피들이 등장했고,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반전(反戰)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입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세계관에 반대하고 체제에 반항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들에게 록 음악은 자신들의 저항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습니다. 이른바 ‘록 = 젊음과 저항의 음악’이라는 등식은 이때 나온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지미 헨드릭스는 이 록의 시대를 누비며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천재적 뮤지션입니다.  




가난한 기타 천재의 성공, 혹은 운명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기타가 없던 시절에는 매일같이 빗자루로 상상의 연주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14살 때 쓰레기통에서 주운 한 줄짜리 우쿨렐레는 그의 첫 악기였습니다. 다음 해 지미의 아버지는 5달러짜리 어쿠스틱 기타를 선물하였고, 조금 과장하면 이는 일렉트릭 기타의 모든 것을 만들어낸 천재 뮤지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지독한 연습 벌레이기도 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머디 워터스와 하울링 울프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를 독학했고, 공수부대에서 제대한 뒤에는 여러 뮤지션들의 백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군 부대에서도 연습을 너무 많이 해 ‘그만 좀 하라!’는 빈정을 살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에게 기타를 치는 것은 연습이 아닌 그저 즐거움이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했고, 빵 사이 조금의 고기가 있기만을 바라는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꿈이 있었다면 누군가의 뒤에 선 세션맨이 아닌 자신의 음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능있는 기타리스트에게 지미 헨드릭스에게 꿈에 다가설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친구가 영국에서 활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입니다. 급조한 록 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가 결성된 것입니다. 이후, 런던에서 결성된 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에서 지미의 재능은 꽃피게 되고, 그가 간절히 원하던 성공을 거머쥡니다. 2년이라는 짧은 밴드 활동 기간 동안 지미 헨드릭스의 명곡은 거의 다 탄생했으니 말입니다. 발표한 싱글들이 잇달아 차트에 진입하고, 데뷔 음반 [Are You Experienced?](1967)기 영국 음반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대히트를 칩니다. [Are You Experienced?] 앨범의 대표곡을 실제로 들어보시죠.



|“Foxey Lady” ([Are You Experienced?])


|“Purple Haze” ([Are You Experienced?])


|“Hey Joe” ([Are You Experienced?])



팝의 야만인, 전설이 되다
밴드의 성공에 큰 몫을 한 것은 지미의 과격한 무대매너와 화려한 패션이었습니다. 세션맨 시절 지미는 밴드의 리더보다 옷을 잘 입는다는 이유로 해고되기도 할 정도로 패션에 남다른 감각을 보였습니다. 언론은 그를 ‘팝계의 야만인’이라 칭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영국 성공을 발판으로 몬테리이 팝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다시 미국으로 입성합니다.
이 공연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공연 막바지에 기타에 불을 지르는 충격적인 퍼포먼스가 벌어진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 대중의 뇌리에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밴드가 아닌 솔로로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발에 참가한 지미 헨드릭스는 그의 팬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파격의 연주를 선보입니다. 미국 국가를 ‘괴상망측하게’ 비틀어 연주한 우드스탁 공연 현장은 그가 전설의 반열로 걸어들어감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입니다.


|Jimi Hendrix – The Star Spangled Banner[American Anthem](Live at Woodstock 1969)


1년 뒤인 1970년 9월, 그는 석 장의 정규 음반을 남긴 채 스물일곱의 나이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납니다. 사망원인은 약물과 알코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대에서 불태워 쓸 수 없게 된 1965년 형 스트라토캐스터는 2008년 런던 경매 시장에 나와서 무려 24만 파운드(4억1천 만원)에 팔리며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기타의 역사를 새로 쓰다, 파격의 일렉트릭 블루스 록
지미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의 영역에서 그 이전까지 누구도 가본 적 없던 길을 걸었던 뮤지션입니다. 생전에 그는 파격적인 무대 매너, 이를테면 기타에 불을 붙이거나 기타 줄을 이빨로 잡아 뜯는 등의 퍼포먼스로 유명(또는 악명)을 떨쳤지요. 하지만 그저 그뿐이라면 그를 ‘기인’이라 부를지언정 ‘천재’라 일컫지는 못하겠지요. 지미 헨드릭스는 블루스와 재즈의 영향이 짙게 밴 독특하고 개성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놀랍도록 다채로우면서도 종종 몽환적이었고, 즉흥적이고 자유로웠습니다(그는 자신의 연주를 설명할 때 늘 ‘느낌대로 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곤 했습니다). 블루스의 끈적함과 싸이키델릭의 환각, 소울의 그루브를 고루 갖춘 음악이었지요.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흑인 음악 같지 않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사실 헨드릭스의 음악은 흑백이라는 경계와 구분을 넘어선 소리였습니다.

|“Little Wing” ([Axis: Bold As Love])


또한 헨드릭스는 록 기타 사운드의 한계를 시험한 뮤지션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피드백(feedback)’이라는 독특한 주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기타와 앰프를 마주보게 하면서 소리를 왜곡시키고 증폭시키는 기법입니다. 헨드릭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후대의 록 뮤지션들은 일렉트릭 기타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마음만 먹으면 이 악기로 온갖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헨드릭스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이펙터를 제작하는데 참여하기도 했고, 오르간용 스피커에 기타를 연결하는 등 해볼 수 있는 건 무엇이건 다 해보려 했지요.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악적으로 ‘죽여주는’ 소리를 들려준다는 건 틀린 음을 연주하는 것과 거의 같다. 맞는 음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음과 정 반대의 음을 연주한다는 얘기다. 피드백을 듬뿍 먹여서 제대로 칠 경우 아주 멋진 소리가 난다. 틀린 음을 아주 진지하게 연주하는 셈이다. 그건 진짜로 재미있다.” 우리가 헨드릭스를 ‘천재’라 부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도전정신 때문일 겁니다. 그는 새로운 걸,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자유와 저항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 헨드릭스 역시 자기 음악에서 그 이상을 실현한 셈입니다.


|“Crosstown Traffic” ([Electric Ladyland])


세상을 뜨기 전에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음악 학교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머릿 속에 굉장히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데,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아서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켜보고 싶다는 것이었죠. 과연 그가 새롭게 펼쳤을 음악은 어땠을까요. 분명한 점은 그가 만들고 싶었던 음악이 어떤 것이었건 간에, 일렉트릭 기타의 역사에서 그가 남긴 음악과 정신은 언제까지고 남아 있으리라는 사실일 겁니다.



지미 헨드릭스의 대표곡 5


1. “Foxey Lady” ([Are You Experienced?]) 

2. “Purple Haze” ([Are You Experienced?]) 

3. “Hey Joe” ([Are You Experienced?]) 

4. “Little Wing” ([Axis: Bold As Love])

5. “Crosstown Traffic” ([Electric Lady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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