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복현이 추천하는 ‘책장 속 고전’
‘어린왕자’에게 배우는 마음의 눈을 여는 방법
“중요한 건 눈으로 볼 수 없어요.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해요.” 라는 말로 유명한 어린왕자는 세계에서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심안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어린왕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미, 바오밥나무, 여우, 왕, 사업가 등은 모두 상징입니다. 그러니 상징을 아이들이 잘 이해할 리 없지요.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책입니다. 때문에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오는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읽는 어린왕자, 기분이 나쁠 때 읽는 어린왕자, 어렸을 때 읽는 어린왕자, 어른이 되어 읽는 어린왕자가 다른 느낌으로 읽히는 이유는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 상징들 속에 숨겨져 있고, 마음의 눈으로 상대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비의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육안과 심안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육안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삼키는 보아뱀을 모자라고 하는 어른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것이지요. 어린왕자의 별을 발견한 천문학자가 무슨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믿고 안 믿는 어른들, 그들은 겉으로만 보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에, 중요한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말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 작가는 “완전이란 더 이상 덧붙일 게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떼어낼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라고 <인간의 대지>에서 말합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자꾸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니까 본질, 즉 중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행기를 날 수 있게 하는 엔진인데, 사람들은 그걸 잊고 오로지 겉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만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엔 사람들은 비행기를 볼 때 엔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동체 이야기만 하겠지요. 이처럼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에도 그 사람의 옷이니, 재산이니, 권력이니, 이런 것들로 그 사람을 판단하니 정작 중요한 그 사람의 마음은 못 본다는 것입니다.
어린왕자는 왜 길들인 장미와 헤어졌을까요? 어린왕자는 장미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지혜가 부족했던 거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엔 길들임이 있어야 한다는 걸, 길들이고 나면 서로의 말이나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걸 어린왕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장미의 불평이나 거짓말에 토라진 이유는 장미의 진심을 모른 탓입니다. 장미가 침묵할 때는 마치 화산이 잠시 잠들어 있는 것처럼 더 많은 말을 감추고 있는 거였는데, 미처 몰랐던 것이지요. 실제로 많이 화가 나면 사람들은 아예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어린왕자가 장미에게서 듣기가 짜증스러웠던 거짓말, 불평은 실제로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는데, 어린왕자는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어린왕자가 지구에 와서 여우를 만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제야 어린왕자는 장미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린왕자는 여행이란 방황을 끝내고 장미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린왕자는 가시 네 개나 있는 장미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가시를 부러뜨린다고요? 아니면 가시까지도 사랑하라고요? 사실 장미는 가시를 가진 게 아닙니다. 어린왕자는 그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허영이니 불평이니 거짓말이란 가시는 실제로는 가시가 아니라 어린왕자가 이해하지 못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것을요. 어린왕자는 눈으로만 장미를 보려했고, 이해하려 했던 것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봐야 했는데 말이지요.
어린왕자는 작가 생텍쥐페리 그 자신
어린왕자와 장미의 이야기 속에는 생텍쥐페리 자신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생쥐페리의 아내 콘쉬엘르 역시 장미처럼 아주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지요. 견디다 못한 생텍쥐페리는 아내와 온전한 사랑을 되찾는 조건으로 일 년 간 별거를 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하여 생텍쥐페리는 미국으로 망명을 합니다. 그렇게 헤어진 생텍쥐페리는 죽음을 넘나드는 비행, 거기서 느끼는 절대고독에서 인간적 성숙을 배웁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있으며, 아내의 그런 짜증이 사랑의 다른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그 덕분에 어린왕자를 집필할 당시엔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었으니 아주 오랜만에 재회였습니다.
어린왕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장미의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불화가 생깁니다. 어린왕자는 장미를 떠납니다. 여우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러고는 다시 장미에게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어때요,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요? 게다가 생텍쥐페리는 1944년 정찰기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됩니다. 어린왕자 역시 작가처럼 똑같이 흔적이 없이 사라집니다. 사람에겐 역시 예지력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왜 어린왕자 속에 여우가 현자로 등장할까요? 생텍쥐페리는 기관사 프레보와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기적적으로 삼 일만에 대상에게 구출을 받아 살아남습니다. 아무런 생명체라곤 발견할 수 없는 사막에서 그는 페넥이란 여우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여우는 아주 영리한 행동을 보이는데요. 이 여우는 사막에 있는 아주 작은 관목들, 거기에 기생하는 달팽이를 따 먹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죽음을 앞둔 마당이었지만 귀여운 여우를 관찰하며 따라가 봤습니다. 그런데 여우는 어떤 관목에서는 달팽이를 따 먹고, 어떤 관목은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짝짓기를 하는 달팽이는 먹지 않고 혼자 있는 달팽이만 골라 먹던 것입니다. 미래 식량을 살려두는 것이지요. 그 현명한 여우를 발견한 생텍쥐페리는 그로부터 6년 후 이 작품을 쓸 때 어린왕자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현자로 어린왕자에 등장시켰습니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 6월 29일에 태어난 생텍쥐페리가 어렸을 때 그의 집 근처에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엔 자전거를 타고 구경을 가곤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조종사가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조종사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해군사관의 꿈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영국의 해양소설 작가 조셉 콘래드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콘래드는 영국 해군 사관으로 각국을 떠돌며 다양한 풍물들을 보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글도 쓰는 행동주의 작가였습니다. 그를 닮고 싶어 했던 생텍쥐페리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뤘으나 낙방했습니다.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보고 자랐던 비행기에 관심을 갖고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쩌면 다행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 후 그는 비행사가 되었고 비행사 생활을 하며 세상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넘나드는 야간비행, 전투기 조종, 그런 삶에서 그는 인간의 고독을 체험했고, 별의 의미를, 세상의 의미를 새로 발견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애국자였던 그는 마흔이면 더는 전투기를 탈 수 없는데도 사정사정하여 마흔넷의 나이에 조건부 정찰비행을 나섰다가 행방불명되고 말았습니다. 그날이 1944년 7월 30일이었습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 프랑스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먼 하늘로 날아간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