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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김종근이 추천하는 ‘거장의 갤러리’ 이왈종 편
[SSG 미술] 이왈종 편(2편)
#미술





제주, 그리고 제주 아이들과 함께하는 제주화가 이왈종



|이왈종의 그림교실 풍경(출처:왈종미술관)

 


제주 사람보다 제주를 더 사랑하는, 그리고 제주의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는 ‘이왈종의 그림교실’은 그의 또 다른 이왈종의 인간성을 발견합니다. 물론 해마다 소문 없이 작품을 팔아 적지 않은 금액을 유니세프와 다문화 가정을 돕는 것도 그는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쁜 유명화가가 20년 가까이 무료로 금쪽같은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5개월 과정으로. 새로 접수하는 날이면 아이들을 가진 학부모들이 밤새워 줄을 서는 진풍경을 상상 해보십시오.

 

그는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른들에게 하나님을 그리라고 하면 머뭇거리지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린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서 신선함과 참신한 마음을 배운다고 했습니다. 나는 언젠가 서귀포 그가 살던 거리, 이중섭 거리 옆에 이왈종 거리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그만큼 온전하게 예술을 영혼을 제주에 바친 예술가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안주하면 죽는다.”, “인기는 아침이슬과 같다”고. 그는 그 정신을 제주에서 펼쳐 놓고 있습니다.

 

 

예술,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은 있는 것으로



|왈종미술관 전경과 어우러진 이왈종 선생님의 조각 작품 (출처:왈종미술관)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예술은 무엇이냐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반야심경>이라 대답했습니다. 형태가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가고 없는 것은 있는 것으로. 이것에 예술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성경, 불경을 모두 읽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반야심경뿐이라는 것 같습니다.

 

“나는 특별히 종교에 힘주는 것을 싫어하지만, 모든 것은 존재하기 위해 카리스마가 필요한 법이지요. 난 특별히 사람이 목에 힘주는 것도 싫어요. 그림도 철학이 앞서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지요. 철학은 작가가 만들어 가는 것이에요.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한데 윤리나 규범은 환경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지 어떠한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일체 유심조 심해무법이라고 마음의 작용에 따라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선과 악도 절대적이거나 원칙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지요. 접시에 술을 따라도 술잔이고 재떨이에 술을 따라도 술잔인 것이거든요.”

 

이렇게 그는 그림에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법주의자입니다. 그래서 1993년, 서울에서 부조전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합니다. 또한 스스로 예술성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어 합니다. 붓으로 그려야만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출처:왈종미술관)

 


처음 제주도 내려왔을 때 서울 생각 안 하려고 붓을 다 꺾어 버린 채 손으로만 작업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그림을 꾸준히 바꾸어 나갔습니다. 작품이란 건 작가의 역량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은 얼마만큼 내면의 세계로 성실하게 파헤쳐 들어가는지가 중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그는 중도의 세계를 추구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중도(中道)란 어느 한곳에 집착을 보이지 않고, 욕심에서 떠나 있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상심의 세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화가 이왈종의 예술관을 관통하는 ‘중도’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출처:왈종미술관)

 


중도는 불협화음도 없고 사사로운 모든 인간의 물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도자의 마음과 같은 자세이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헤겔은 예술을 종교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이왈종에게 있어 예술은 고통스러운 대상은 분명히 아닙니다. 삶의 번뇌인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비우려는 사람, 수행자의 길을 가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공자 또한 논어에서 최고의 명사(名士)는 『속세로부터 떠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다름 아닌 중도의 세계입니다.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출처:왈종미술관)

 


인간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분노와 평정의 그 총체적인 삶을 아우르는 길 그 길이 중용의 삶이자,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는 “중도는 평등을 추구하는 나의 정신적인 상태에서 비롯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도는 다름 아닌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보고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평등이라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등, 만족하면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며 애증에 치우치지 않는 평상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 「중도관」이란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가 평생 붙들고 고민하는 화두가 바로 중도입니다.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출처:왈종미술관)

 


그는 중도를 “선과 악, 사랑과 증오, 분노와 절망 등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평상심의 가슴 가운데서 `중도’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원근법을 무시하고 초월적으로 담아내는 민화의 형식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 세계에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 붉은 해가 떠오르는 일출봉, 크고 거대하게 산처럼 피어있는 수선화 등이 화폭 전면에 사람 냄새가 해풍과 함께 코를 찌릅니다.

 

 

중도의 철학 그리고 제주의 향수가 완성한 화가 이왈종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왈종미술관(출처:왈종미술관)

 


그의 많은 작품에서 꽃, 새, 물고기, 배, 집, 말, 초가, 돌담 등 그곳 제주 친구들의 모습들로 언제든 그는 전시장을 채울 것입니다. 통통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모습, 2층집에서 춤추는 여인, 낮 뜨거운 정사를 나누는 장면들이 그의 그림을 흥미롭게 합니다. 색채도 밝아지고 바탕의 색채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의 원색적인 작품들에서 한결 부드러워지고 화면을 벽화처럼 희뿌연 분위기로 채색하는 세련미는 제주도의 사계절의 정취와 풍광을 미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서귀포 한적한 바닷가에서 새벽공기를 호흡하며 이 엄청난 대작들을 완성했습니다. 그리하여 더 깊은 수선화의 화가, 동백꽃 화가, 골프 화가로 그는 제주를 물들일 것입니다. 조선백자를 닮은 서귀포 그의 미술관에는 자연의 빛과 바람이 15미터의 3층 찻잔처럼 둥근 모양 속에, 다비드 머큘로(Davide Macullo)등이 만든 그의 미술관에 그의 모든 외로움이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