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가 50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치고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글렌 굴드에 대한 관심과 찬사는 굴드의 사후에도 끊이질 않고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은 그를 단순히 피아니스트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실제로 옥스퍼드의 음악가 사전(Musician Dictionary)에서는 그를 ‘캐나다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작가’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죠. 유난히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넘쳐났던 20세기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글렌 굴드를 소개합니다!
기행과 천재성의 기묘한 관계
우리가 ‘천재’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몇 가지 단상이 있습니다. 사회와 자신을 격리하는 배타성, 편집증에 가까운 괴팍함, 그리고 기존의 틀을 깨는 창의 등. 글렌 굴드의 삶은 마치 이러한 천재의 이미지에 부합하기 위해 살아왔나 싶을 정도로 영화 속 천재의 삶을 녹여낸 듯한 특이한 일화가 유독 많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죠.
글렌 굴드는 세균 공포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병원에 출입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신의 체온과 수면패턴, 몸의 상태 등을 모두 기록하였죠. 목욕할 때도 장갑을 끼고, 사람들과 악수하는 것을 꺼리고, 한여름에도 두꺼운 코트를 입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세게 악수를 한 사람을 고소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공연을 취소한 적도 많습니다. 항상 수많은 신경 안정제와 항생제를 먹었고, 음식물은 오렌지주스와 비스킷 정도만 섭취했죠. 자신의 최고 전성기였던 32세에 이후 무대에는 단 차례도 오르지 않고, 밀폐된 공간에서 녹음만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기행을 단순히 천재의 이상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음악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모든 삶을 통제해 온 굴드의 모습은 음악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전성기 때 모든 공연을 중단한 것 역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청중 속에서 완벽한 음악을 전달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음반 속에는 글렌 굴드의 피아니즘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해석과 이를 표현하는 명료한 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래 바흐를 연주하는 굴드의 모습에서 황홀경에 빠져 자신만의 피아니즘을 완성해가는 굴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Glenn Gould plays Bach
글렌 굴드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
글렌 굴드를 상징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준 고무의자, 그 앞에 놓인 스타인웨이의 오래된 피아노, 낮은 고무의자에 앉아 기괴한 자세로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 자신만의 템포와 해석 방식으로 재탄생 시킨 음악, 그리고 그의 레코딩에 담긴 그의 흥얼거림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러한 굴드의 상징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기존의 해석과 연주 방식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만의 템포로 연주하는 글렌 굴드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은 그의 시작과 끝이었지요.
괴팍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굴드가 가진 수많은 철칙 중 하나가 한 번 녹음한 음악은 절대 다시 녹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철칙을 깨고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두 번 녹음하죠. 첫 녹음은 1955년 굴드의 데뷔 녹음이었습니다. 1981년 그는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녹음하였고 이는 그의 마지막 레코딩이 되었습니다. 두 음악을 한 번 비교해서 들어보시죠.
|JS Bach – Original Handwritten Scores – Goldberg Variations (by Glenn Gould 1955)
굴드가 1955년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출시했을 때 대부분의 음악평론가들은 ‘미친놈의 연주’라고 혹평했다고 합니다. 굴드가 재해석한 음악은 기존의 모든 해석과 전통을 모두 무시하고, 빠른 템포로 일관되게 연주해 나가기 때문이죠. 20대의 천재 음악가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다른 의미로 ‘미친놈의 연주’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현란한 테크닉과 기존의 파괴하는 그의 연주 방식은 엄청난 매혹으로 다가오죠. 26년 뒤, 그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우선은 2배 가까이 느려진 템포가 눈에 띕니다. 비범함으로 가득했던 천재가 거장이 되어 비움의 미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불멸의 거장으로서 남다
글렌 굴드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주목받았고, 생전에 모든 명성을 손에 거머쥔 축복받은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13살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며 데뷔하였고, 소개해드린 1955년의 골드베르크 연주곡으로 인기와 명성을 모두 획득했지요, 유럽과 미국 등 가장 명성 높은 음악의 고장에서 한 번도 공부한 적이 없었다는 점은 오히려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해석을 가능케 한 음악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50년의 삶 동안 그는 우울증, 고독, 광기 속에서 살아왔고, 뇌졸중으로 이른 나이에 급작스럽게 사망하였죠. 글렌 굴드의 오랜 친구였던 피터 오스왈드가 쓴 글렌 굴드에 대한 책에는 그가 얼마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 무대에 서길 꺼렸던 그였지만, 대화가 통하는 상대와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고, 즉흥으로 연주를 제안하는 그는 생각만큼 괴팍한 예술가인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가 보였던 철저한 삶의 통제는 오히려 음악을 위한 희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굴드가 보여줬던 음악과 삶의 방식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헌신이지요. 이미 생전에 모든 명성을 얻었던 글렌 굴드에 대한 연구가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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