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영국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거장’이라는 칭호의 공신력까지 부여받은 정경화는 한국에 들어와서도 쉴 틈이 없다. 네 살 위의 언니인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그녀는 8월 8일까지 치러지는 음악제 준비에 한창 여념이 없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나, 살아서 돌아왔어요”라고 말하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글/문학수 경향신문 선임기자, 고전음악비평가 사진제공/정경화

카네기홀에서 다시 만난 어린 날의 정경화
“아휴, 말도 마세요. 카네기홀 연주를 끝낸 직후에는 바이올린을 아예 쳐다보기 싫을 정도였어요.(웃음) 제가 그 곡을 처음 만난 것이 1961년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 막 들어갔을 때였는데, 스승이었던 이반 갈라미언 선생이 ‘소나타와 파르티타’ 중에서 파르티타 E장조 프렐류드를 과제로 내주시면서였죠. 그때 뭘 알았겠어요. 고작 열세 살이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열아홉 살에 카네기홀에서 그 곡을 연주하면서, 내가 50년 뒤에 같은 장소에서 전곡을 연주할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무대에 다시 섰더니 나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그때는 그랬죠. 하루 종일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바이올린 소리가 계속 귓가를 떠나질 않아서, 잠을 청할 때마다 재즈를 들었어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콜 포터, 오스카 피터슨, 엘라 피츠제랄드, 레이 찰스를 들었어요. 그렇게 나를 릴랙스시키면서 잠에 빠져들곤 했죠. 나하고 장르는 다르지만, 그때 들었던 재즈 뮤지션들은 정말 기가 막힌 음악가들이었어요. 특히 그들의 리듬 감각은 환상적이죠.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리듬이잖아요? 아마 그들의 리듬감각이 자연스럽게 내 몸에도 스며들었던 같아요.”

그녀, 악기로부터 자유로워지다

“어린 시절에는 바이올린하고 딱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다르죠. 이젠 악기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아시다시피 제가 손가락 부상으로 5년쯤 바이올린을 쉬었잖아요? 그때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연주를 했거든요. 그러다가 아주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손에 잡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이제 하루 14시간씩 연습할 필요는 없어요. 나이가 들어 체력적으로도 그럴 수 없고요.(웃음)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깊어졌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에 바흐를 1년 동안 하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지 뭡니까.(또 웃음) 바흐 전곡을 카네기홀에서 마무리하고 나니까 허탈감, 공허감 같은 게 물밀듯이 몰려와서 좀 힘들었죠.”

“이번에는 ‘러시안 뮤직’이 많아요. 물론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같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도 연주되지만, 차이콥스키나 라흐마니노프, 무소륵스키와 쇼스타코비치 같은 ‘러시안 뮤직’을 더 풍성하게 준비했죠. 특히 하이라이트는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입니다. 한국 초연이었죠.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이 내한해서, 대관령의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선보였습니다.”

기업과 예술의 상생을 말하다


다만 여기에 한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특히 신세계그룹이
젊은 연주자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조금 전에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도 언급했지만, 오늘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이 악단과 오페라단도 국가와 기업의 지속적인 후원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있는데, 기업은 후원을 해주되 그에 대한 대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술을 재정적으로 후원한다고 해서 기업의 수익이 늘어나는 건 아니거든요. 그걸 정확히 알고 후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그런 개념이 정착돼 있다고 봐요. 특히 신세계그룹은 젊은 음악가들을, 지속성을 갖고 대담하게 후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음악 프로그램과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행복한 직원들이 일하는 행복한 기업이 될 겁니다.”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임직원들의 예술적 소양을 북돋워주는 것! 저는 그게 기업의 수준과 이미지를 장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봐요. 일단, 직원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죠. 사람은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해지지 않아요. 예술이 바로 그렇게 사람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죠. 특히 신세계그룹이 한국 기업들 중에서도 맨 앞에서 그런 일을 해나갔으면 참 좋겠어요. 필요하다면 저도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신세계그룹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동참할 의향이 있습니다.”

올해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가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50주년을 맞는 해다. 익히 알려졌듯이 그녀는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같은 해에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도 데뷔 연주회를 치렀다. 청중을 완전히 홀려버린 그 연주회 이후, 정경화의 커리어는 수직 상승했다. 1970년대의 그녀는 ‘동양에서 온 마녀’라는 호칭을 얻으면서 연주자로서 정점을 찍었다. 1970년에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와 협연한 이후, 그야말로 전설처럼 회자되는 거장들과 빈번히 협연했던 정경화의 음반들은 지금도 ‘명연’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토록 높은 봉우리에 올랐던 한국 출신 연주자는 더 이상 없었다. 그것이 젊은 정경화의 ‘찬란했던 과거’다.


그렇다면 이제 정경화의 ‘현재’를 떠올릴 때다. 일흔을 바라보는 그녀는 여전히 바쁘다. 지난해 내내 이어진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6곡) 연주는 이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후반기를 웅변한다. 지난해 5월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시작한 이 연주회는 광저우, 상하이, 서울, 오사카, 도쿄, 브리스톨, 런던 바비칸 센터 등으로 이어졌다. 이 대곡에 도전해온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틀에 걸쳐 연주하는 것과 달리, 정경화는 하루 한 무대에서 3시간 넘는 대곡을 외워서 악보 없이 연주하는 노익장(?)을 피력했다. 워너클래식스에서 음반도 내놨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5월 18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그녀는 ‘바흐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연주회는 카네기홀의 역사에서도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곳은 열아홉 살의 정경화가 50년 전에 섰던 무대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카네기홀에서 스무 번째로 연주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한데 더 중요한 포인트는 다른 데 있다. 카네기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날 정경화의 연주회는 건립 이후 125년 만에 처음으로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하는 무대였다. 예후디 메뉴인과 이자크 펄만이 3곡씩 연주했던 적은 있지만, 이처럼 6곡을 한꺼번에 선보이는 연주회는 처음이었다. 그렇듯이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쉼 없이 연주한다는 것은 고행에 가깝다. 그 고행을 그녀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해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국제무대에 데뷔한지 50주년을 맞이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유통업계에서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는 신세계그룹의 열정과 닮아있습니다.
국제무대에 데뷔한지 50주년을 맞이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유통업계에서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는 신세계그룹의 열정과 닮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