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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블로그 에디터가 추천하는 ‘책장 속 고전’
[SSG고전] 그리스인 조르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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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에게서 얻는 삶의 자유의지

동지중해 한가운데 잠수함처럼 떠 있는 크레타 섬, 그 남쪽 해안가 어느 곳에 두 남자가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한적한 야산 한가운데에 버려진 갈탄광을 개발해 한몫을 챙기려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주인공 ‘나’는 사업가이면서 제대로 일도 안 하고 불교 서적이나 보며 세월을 보냅니다. 실제 현장의 일은 그가 고용한 ‘조르바’라는 이름의 남자가 모두 처리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행하던 사업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갈탄광은 갱도가 무너져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고, 수도원이 소유한 숲을 사들이고 나무를 벌채해 팔아먹으려던 계획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조르바가 산 위의 목재를 해안까지 나르려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철탑과 케이블이 조르바의 기대대로 작동되지 않고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주인공 ‘나’는 사업이 망하여 돈을 잃고 크레타를 떠나야 하는 순간 행복을 느낍니다. 그에게는 관심도 별로 없고 어울리지 않는 탄광사업을 하는 과정에 자신에게 진정 어울리는 무엇인지 알았나 봅니다. 아니면 조르바와 살면서 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처럼 소설은 그려집니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물, 여자, 별, 빵이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랍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나’ 와 ‘조르바’



“두목, 계산 같은 것은 이제 그만 하쇼. 숫자 놀이는 그만두고 저울은 부숴 버리고, 구멍가게는 문을 닫아 버리라구요.”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출신 성분 못지 않게 어울리지 못할 만큼 독특한 정신세계를 지녔습니다. 주인공인 ‘나’는 크레타섬 출신의 그리스인으로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글쟁이로 돈을 낭비하며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 콩고의 정글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는 이런데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조국 크레타가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혁명을 통해 터키를 몰아내고 자치권을 얻었음에도 아직 완전한 독립을 한 것이 아닌 데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또 그리스인의 종교인 정교(Orthodox)를 부정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불교의 창시자 붓다의 사상을 추종합니다. 반면 또 한 남자인 ‘조르바’는 배운 것도 없고 방탕한 삶을 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국애가 주인공인 ‘나’보다 더 깊습니다.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며 전쟁터에서 수없이 많은 부상을 입기도 했지요. 러시아 탄광으로 일하러 가서도 그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았지만 나름대로 확고한 주관을 잃지 않습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카잔차키스에게 조르바는?



“힌두교도들은 <구루>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가 이 소설을 쓴 것은 실제로 조르바라는 사람을 만나 탄광사업을 한 이후입니다. 그는 조르바에게서 분명 깊은 감명을 받은 듯한데요, 평소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흠모했습니다. 특히 니체가 인간 한계를 극복한 더 나은 인간으로 표현한 <초인>은 평소 카잔차키스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상이었지요.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만났을 때 초인의 모습을 발견한 걸까요? 물론 가상의 인물 초인과 현실세계의 조르바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르바가 평생 살아왔던 삶의 모습은 초인으로 가는 과정과 흡사한데요, 작가는 조르바와 만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업이 망하자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렸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는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조르바 덕분에 자신이 조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주는 메시지

만약, 그리스인 조르바를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자유의지’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만났을 때 발견한 그것이죠.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인가 얻고 싶은 게 있을 때 수많은 계산을 합니다. 이게 정말 잘하는 일일까? 이 선택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까? 많은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에게 조르바의 삶으로서 이야기를 겁니다. 얻고 싶은 게 있다면 너무 재지도 말고, 눈치도 보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이지요.

 


“해오라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경고였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물론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만을 추구할 수도 없고, 현실에 안주만 하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우리가 조르바의 삶 속에서 발견해야 하는 의미는 엄청난 추진력은 아닙니다. 비록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조르바지만, 그는 분명 삶에 대한 확고한 방향과 가치관이 있었다는 점이지요.

 

세태에 휩쓸려 남들 하는 대로 사는 방식이 아닌 나만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삶을 사는 것, 조르바에게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바로 조르바처럼 사는 삶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은?

SSG 고전 에스프레소에서 첫 책으로 선정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분명 누구나 쉽게 읽고 소화할 책은 아닙니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수준 높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책이 쓰인 시대는 작가가 조르바를 만난 1917년부터 책을 완결한 1943년까지인데 이때 그리스는 불가리아, 터키와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또 크레타라는 섬은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그리스, 베네치아, 터키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곳인데 그런 사연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미노아 신전과 황소신 등 신화이야기도 조금 알아야 하고 오디세이아와 세이렌 여신들까지 거론됩니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호메로스의 <일리어드>, <오디세이>는 필수적으로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 책의 번역자인 이윤기 선생이 펴낸 그리스로마신화 책이 아주 많고 읽기도 쉽습니다. 오늘날 유럽인의 정신세계는 그리스와 로마를 기반으로 하므로 이에 관한 서적들도 참조하면 더 재미있게 ‘그리스인 조르바’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터키가 지배하던 시절의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유에 대한 투쟁과 여행을 삶의 가장 중요한 궤적으로 삼는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출간했다. 1917년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사업을 벌였고 그리스 공공복지부 장관을 잠시 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2년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불교적 체념을 행동으로 옮긴다. <붓다>,<오디세이>등의 책을 출간했고 다수의 소설과 희곡, 여행기, 논문, 번역 작품을 남겼다. 때로는 교회를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고 그리스정교회로부터 파문되기도 했다.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그리스인의, 크레타인의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콜린 윌슨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