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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의 스프링 노트
4화. 상사에게 내 사소한 실수가 포착되다
이새봄

어느 순간 나는 내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줄 지푸라기만한 단서들을 찾고 있었다. 일부러 부하 직원들의 빈틈을 찾아내 꼬투리를 잡기로 작정한 예민한 상사에게 내 사소한 실수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사실 반항 보다는 항변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그 일, 나의 '사소한 실수'

나는 이날 어떤 뉴스를 놓쳤다. 보는 관점에 따라 중요한 뉴스이기도 했지만 그냥 넘어가도 대세에 큰 지장이 없을 만한 뉴스이기도 했다. 신문사에 다니다보면 이렇게 모순되는 일들을 종종 겪는다. 정말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뉴스와 사건이 눈 앞에 펼쳐져있다.

 

이 뉴스가 내일 자 신문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지 여부는 현장에 있는 기자가 가장 먼저 판단한다. 이후 팀장과 데스크, 편집국장이 네 번 이상의 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기사의 가치가 결정된다.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이렇게 하루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게이트키핑'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매일 쉴틈없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이라 이 행위를 이렇게 멋진 용어로 불러본 적은 없다.

 

여튼 나는 이러한 과정의 말단에 있는 취재 기자다. 구구절절 그럴듯하게 설명했지만 그 때의 나는 사실 이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사실을 말하는 김에 한번 더 고백을 하자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무슨 기사를 놓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뉴스란게 그렇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뉴스는 더이상 뉴스로 불리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 옛적 괴테는 '신문을 자세히 읽는 일은 시간낭비다'라는 명언을 남겼을 지도 모를일이다. 괴테 가라사대 "수개월간 신문을 읽지 않고 나중에 한꺼번에 읽어 보면 이런 종이쪽지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 왔는지 알게 된다" (책 '괴테, 청춘에 말하다' 에서 발췌)라고 하시니. 바로 그러한 종이쪽지를 만드는 데 하루의 절반 이상을 뚝 잘라 쓰고 있는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유독 '그 일'에 대해서는 별도로 윗선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털어놓자면, 이 조차도 너무 사소하다. 그냥 내 메일함에 들어와있는 보도자료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자료가 중요한지 어떻게 알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투시 능력이 없다. 그런데 하필 데스크가 바로 그 '읽지않음' 메일에 담겨있는 내용을 온라인 뉴스 속보를 통해 먼저 발견했다. 회사 메신저에 두 단어 온라인 링크 하나가 날아왔다. "이게 뭐지?"



'도망치듯' 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얽매지 말라고





마음과 몸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 뉴스를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당장 찾아야만 했다. 내가 깜빡하고 놓쳣다는 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이 말을 감추기 위해선 뉴스가 지면에 다뤄질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근거를 내 무기로 꺼내들어야했다. 결국 뭔가를 찾아내긴 했는데 찾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내가 비참해 졌다. 자존심을 챙기려고 했던 일에 내가 다쳤다. 사실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내 자존심을 내가 건드린 꼴이다.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그 날따라 '일부러 부하 직원들의 빈틈을 찾아내 꼬투리를 잡기로 작정한 상사'에게 걸렸다. 나는 '사소한' 실수를 했다. 나는 이 사소한 실수를 덮고 싶었을 뿐 아니라 정말로 덮을 수 있을 만큼 정말 사소한 실수였다고 다시금 확신했으며 그것 때문에 아주아주 예민하기 이를데 없는 상사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서부터 내 자존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마음이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늦은 밤, 곱씹어가며 읽고 있는 미쓰다 마리의 만화 '수짱 시리즈'를 한장 한장 넘기며, 그제서야 눈물을 펑펑 쏟았다. 만화 속에선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워 직장을 그만둔 등장인물이 오랫만에 예전에 알고 지내던 인생 선배를 만나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회사에서 나온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도망치듯 그만둔 거죠 뭐'라고 말을 하더라.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선배가 그 말을 정정해 준다.

 

'도망치듯 그만뒀다'가 아니라 그냥 '그만뒀다'가 맞는 거라고. '도망치듯' 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얽매지 말라고.



때로는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자

나도 그랬다. 내 실수는 '사소'했고, 상사는 '꼬투리를 잡기로 작정했으며 아주 예민'했다. 그 전제에 얽메여 나는 오늘 나를 다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그냥 실수를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실수를 인정한다고 해서 크게 책임을 져야할 상황도 아니었다. 심지어 예민하고 꼬투리 잡기를 즐긴다는 바로 그 상사조차도 '이게 뭐지?'외에는 사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억지로 가져다 붙인 변명들에 나 혼자만 온종일 갇혀있었다.

 

애초에 나를 변호하기 위해 찾아낸 이런 저런 해석들은 사실은 누덕누덕하게 내 위에 붙어 스스로를 가두는 올무가 된다.

 

누더기처럼 살지 않으려면 그저 단순해 져야 한다. 적어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나름의 해석을 붙일 필요가 없는 순간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흘려 보낼 줄 알아야 한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순간을 보내놓고 나는 결국 밤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