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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stic!
성수동길

왠지 불협화음을 빚을 것 같은 낡은 주택과 힙한 카페, 오래된 구두 공장과 새로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이 이색적인 하모니를 연출하는 곳, 성수동길로 떠나보아요.
글 임지영 사진 오병돈·유승현

이곳이 카페인지 사진 전시 공간인지, 아니면 창고인지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인 카페 사진창고를 방문한다면 기존의 카페와 창고에 대한 편견부터 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진 좀 찍었다 하는 프로 및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매월 다른 테마로 전시되는 이곳은 그윽한 커피향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메시지와 뉘앙스를 품은 사진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낡은 것과 새 것, 분리된 공간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녹아드는 성수동의 정체성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답니다. 성수동 취재의 단골장소이자 간판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죠.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감상했다면 정겨운 성수동 풍경을 아우른 옥상에 올라가 잠시 힐링타임을 갖는 것은 놓칠 수 없는 옵션입니다.

‘책방이곶’의 매력은 주인장의 취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소품들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노출콘크리트와 오래된 철제 캐비닛, 절판된 콜라병 등으로 꾸며진 내부는 이곳이 디자이너의 작업실인지 쇼룸인지 헷갈릴 정도인데요. 이렇게 확고한 취향만큼이나 일반 서점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개성 넘치는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1인 출판물을 비롯해 주인장이 선별한 소수문학, 인문서, 외국의 한정판 사진집, 희귀 중고서적까지 영역과 국적을 불문한 책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마 ‘책방이곶’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런 책들을 보고 있자면 주인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고 할까요. 지나간 것을 사랑하고 무명(無名)의 가치를 아끼며 타인의 취향을 기꺼이 존중하는 것. 아마 주인장은 이런 마음으로 허름한 공장건물 지하실에 책방을 열지 않았을까요.

성수동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인 대림창고 맞은편에는, 대림창고와 쌍둥이처럼 분위기가 닮은 멀티숍이 있습니다. 이름 하여 수피(su;py), 성공적인 해적(Successful Pyrates)이라는 뜻의 셀렉트숍입니다.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해적의 도전정신을 탑재한 독특한 메시지는 매장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낮은 천장을 뜯어내고 지금의 양철지붕 하나를 갖는데도 수개월이 걸린 매혹적인 복합 공간입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볼과 오래된 흑백TV, 빈티지풍 자전거는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는 마법을 발휘합니다. 어디에도 없는 희귀아이템을 ‘득템’할 수도 있지만, 꼭 무언가를 득템하지 않더라도 분명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는 데에는 성공할 겁니다. 단순한 판매처가 아닌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 그것이 해적을 표방하여 성공을 외치는 수피의 의도이니까요.

성수동 카페거리를 쭉 걷다 막다른 길 코너에 이르면 어마무시한 존재감을 뽐내는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습니다. 뉴욕의 ‘덤보(Dumbo)’를 서울로 옮겨온 ‘러스티드 아이언 인 덤보’가 그 주인공입니다. 두 친구가 뉴욕 유학시절 덤보에서 받은 무한 영감을 성수동에 재현하기 위해 의기투합해 오픈한 전시형 카페입니다.

뉴욕의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이곳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다소 전위적입니다. 세련된 바 형태의 지하층과 모든 접속이 시작되는 인터페이스인 1층, 그리고 성수동의 움직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인 2층으로 구성된 러스티드 아이언 인 덤보는 실제 덤보에서 공수했거나 덤보에 있는 것과 똑같은 소품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모던한 카페가 20년 넘게 금형공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이 매력적인 복합문화공간은 문화적 체험의 깊이를 더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주민들과 외부의 방문자들을 한데 어울리게 합니다. 클래식은 물론, 국악까지 즐길 수 있는 ‘더하우스콘서트’, 다양한 코스를 섭렵할 수 있는 쿠킹클래스, ‘낭독 시크릿’이라는 낭독 모임, 그리고 각자 집에 있는 와인을 들고 와서 모이는 BYOB(Bring Your Bottle)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카페성수는 커피 잔을 비우는 동시에 자리를 비우는 카페가 아닌, 예술과 인문학, 체험과 만남이 모두 한 잔의 커피에서 시작되는 ‘머뭄’의 공간입니다.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원예와 플라워데코를 공부한 플로리스트 임선영 씨가 꾸린 꽃과 향기, 느긋한 분위기가 삼박자를 이루고 있는 아틀리에입니다. 일반판매는 하지 않고 주문제작만 받는 이곳은 한쪽에는 클래스를 겸한 아틀리에가, 한쪽에는 ‘시크함’으로 무장한 소품들이 있는 그녀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왠지 안이 궁금해지는 키 작은 창과 마치 미로처럼 얽힌 구조에 자석처럼 이끌려 들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바닥을 커버하기 위해 설치한 입구의 목재 데크 위에는 볕 좋은 날이면 싱그러운 꽃과 파릇파릇한 식물들이 ‘성수동 나들이’를 나옵니다. 느긋한 시선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