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Home > 추억
Home > SSG DAILY/PRESS
스타벅스 개점 20주년 기념, 여러분의 별빛 반짝이는 추억을 찾는 ‘별빛 추억’ 공모 이벤트 진행
“빛나라~ 추억의 별~ 다방~이야기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지난 1999년 한국에 첫 진출 후 올해로 개점 20주년을 맞는 스타벅스가 고객들과의 추억을 찾아나선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대표이사 송호섭)는 20년간 변함 없었던 고객의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타벅스와의 아름다운 고객 추억을 공모하는 [별빛 추억] 이벤트를 진행한다. 


스타벅스와 관련된 추억을 갖고 있는 고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로, 스타벅스에서 있었던 만남, 스타벅스 제품 수집, 스타벅스에서 찍었던 가족사진 속 숨어 있는 이야기 등, 친구, 가족, 연인 등과 스타벅스에서 함께 했었던 일상 속 기억에 남는 추억을 주제로 자유롭게 응모하면 된다.


응모는 이메일을 통해 진행되며, 1인 1작품만 제출 가능하다. 


메일 제목을 [별빛추억_응모자 본인이름]으로 해서, 추억에 대한 사연과 함께 관련 사진이나 영상 등을 starbuckskoreatv@gmail.com 으로 접수하면 된다. 



접수기간은 오늘 3일(월)부터 12일(수)까지 열흘 간이며, 제출된 사연은 심사를 거쳐 오는 7월 26일 개별연락을 통해 발표된다. 


스타벅스코리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tarbuckskorea)을 통해서도 상세한 이벤트 안내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타벅스는 개점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사연 고객 20명을 1등 수상자로 선정하고, 이들에게 1년간 매일 한잔씩 톨 사이즈의 제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1년 무료 음료권]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가작으로 선정된 100명에게는 [무료음료 쿠폰 5매]를 제공하고, 이번 이벤트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고객들 중 추첨을 통한 200명에게도 [무료음료 쿠폰 1매]씩을 증정한다.



2019.06.03 (월)



Home > SSG DAILY/PRESS
신세계조선호텔 5월 어린이날 식음 프로모션
아이 눈높이 맞춘 맛의 향연
 
#신세계조선호텔


신세계조선호텔이 5월 어린이 날을 맞이해 온 가족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할 미식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버거, 치킨 등의 메뉴와 컬러링 매트를 선보여 어린이 동반 고객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길 예정이다. 


신세계조선호텔의 첫 독자 브랜드, ‘레스케이프(L’Escape)’ 호텔은 모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팔레드신(Palais de Chine)’에서 동물 모양 딤섬, 아이스크림 등 어린이 맞춤 메뉴를 제공해 보다 특별한 어린이 날 식사를 계획 중인 부모님들의 눈길을 끈다.



2019.04.22 (월)


Home > SSG LIFE/COLUMN
SSG블로그 에디터가 전하는 이야기
‘함께’라는 소중함
SSG블로그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가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던 시절.

무엇이 나를 그리 신나게 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포근했던 그 때의 공기와 그 속으로 희미하게 퍼지던 웃음소리만은 아련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 때문일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소중한 추억은 늘 일상 속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5월이라는 빛 좋은 날을 핑계 삼아 먼저 장바구니를 집어 들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아보세요.

한끼 걱정 때문이 아닌, 그저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서 말입니다.


SSG블로그도 여러분의 새로운 추억에 담길 소식들을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그 속에서 또 다른 풍경으로 남을 수 있도록 


SSG블로그, 시작합니다.



Home > SSG LIFE/COLUMN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셰프가 아플때 먹는 음식, 추억에 담긴 힘
정동현
#정동현


휴일 없이 일했다. 어젯밤까지 웃고 떠들던 동료가 갑자기 출근하지 않았다. 모두 말은 하지 않을 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도망갔군.’


주방에서 도망치는 요리사는 봄날 환절기 감기처럼 드문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을 한 시간쯤 넘기면 부주방장이 조용히 다가와 ‘이건 네가 해야겠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모두 동요하지 않는다. 속으로 욕을 할 뿐 티를 내지도 않는다. 그러다 창고나 주방 뒤편 쓰레기장에서 잠시 틈이 나면 ‘왜 그랬대?’라고 소식을 묻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무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고, 며칠 전부터 그런 낌새가 보이는 경우(일이 힘들다고 징징댔다니까)도 있다. 때로 동료와 대판 싸우고 그 기세를 몰아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레스토랑 문을 닫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일해야 하고 사람들은 밥을 먹어야 한다. 땀이 들어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이마의 땀을 닦으면 이미 땀은 굳어 소금이 되어 있었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몸의 한기에서 치솟은 식은땀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었다.


‘젠장.’


기름이 튀어 나의 살을 익혀도 욕을 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일을 마친 뒤 나눠준 맥주 한 병을 단숨에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두운 천장을 보며 잠에서 깼을 때 침대 시트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감기몸살이었다. 영하로 기온이 잘 내려가지 않는 호주 멜버른에서 감기라니. 나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리고 무기력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겨우 찾아온 휴일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힘을 내어 침대에 앉아 요리책을 꺼내 읽었다.


요리책의 이름은 ‘moro’였다. 영국의 모로칸 음식점에서 낸 요리책으로 흑백의 화보가 가득했다. 그 화보는 이런 것들이었다.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콩을 고르고, 머리에 두건을 쓴 어머니는 또 국을 끓인다. 터번을 쓴 아버지는 화덕에 빵을 굽고 자신만만한 표정의 젊은 부부가 카메라를 응시한다. 음식 사진의 채도는 낮아 흐릿한데 오히려 그 담백한 색감에 맛이 더 가깝게 전해오는 것만 같았다. 화려하지 않은 사진은 그렇기에 더욱 정감이 가고, 그 속에 함께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이것을 먹는 이들이 정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요리라는 것은 사람들과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외국에서 살며 몸이 아프면 자연히 한국음식을 찾게 됐다. 나는 영국과 호주에 널린 각국의 음식점을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각국의 이민자들은 각국의 음식점을 찾는다.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이 고향의 음식인 것이다. 무엇보다 남의 땅에 와서 그곳에 진짜로 살지 못하고 자꾸만 저 멀리 떨어진 곳의 음식을 찾는 나를 볼 때마다 나는 웃음을 잃었다.


현대의 요리는 첨단을 달린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세계의 요리사들과 '과학자'들은 엄청난 돈과 노력을 들여 고민한다. 전에 없던 기법을 고안하고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평소에 먹는 음식은 피쉬앤칩스라든가 라멘, 스파게티 같은 것들이다. 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많은 셰프들은 맥도날드로 향한다. 그들이 만드는 음식과 먹는 음식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이란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다. 누구는 진한 커피를, 누구는 연한 커피를 좋아한다. 이것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순전히 취향일 뿐이다. 그렇다면 맛있는 커피와 맛없는 커피를 구별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맛'에도 객관적인 척도를 적용하여 그것을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남이 맛있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각각의 요리와 식재료는 그런 객관적인 척도로 적용할 수 없는 차원에 있는 것들이 있다. 흐물흐물하고 질기고 냄새나는 것들에 우리는 미치도록 열광하지 않는가?


예를 들면, 떡볶이의 식감은 외국인에게는 고무(rubber) 같다며 낮게 평가된다. 물론 배고픈 근대를 겪으며 그 맛과 질감이 예전 같지 않아진 탓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떡을 쫄깃하다며 즐겨 먹는다.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아무리 외치고 답답해해도 그들의 입맛을 바꿀 수는 없다. 어렸을 적부터 스테이크와 감자칩을 먹으며 살아온 이들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TED강연에서 말했듯이 스파게티 소스에서도 사람들의 취향은 무수히 다양하다. 절대적인 스파게티 소스는 없고 상대적인 스파게티 소스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이진 않다. 미인은 많지만, 절대적 미인은 없는 것과 같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 공자 부처 같다면 그것은 또 다른 지옥일 것이다. 음식도 그렇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의 맛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잘나고 못나고 예쁘고 작고 큰 우리만큼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국을 떠나 혼자 아픈 나는 오징어 볶음을 떠올렸다.


부산 살던 어린 시절, 일요일 점심에는 꼭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먹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동생은 어머니께 자주 오징어 볶음을 해달라고 졸랐다. 내가 군대 가기 전 집에서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 오징어 볶음이었다. 인도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 처음 먹었던 음식 또한 오징어 볶음이었다. 나이가 들어 술을 마시고 속이 쓰린 일요일이 아침이 되면 어머니는 꼭 오징어 볶음을 했다. 이제 아들은 커서 해장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에게는 어린아이였고 그 아이가 좋아한 것은 오징어 볶음이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을 점령했던 무어인들의 전통음식을 기반으로 한

런던 레스토랑<MORO>의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 <MORO> 시리즈.

단순히 음식 뿐 아니라 음식에 담긴 문화와 가족, 지역사회의 정신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저 책을 읽으며 눈물이 났던 이유는 별 것 없는 요리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맵고 짜고 질긴 오징어 볶음을 먹던,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것, 내가 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 객관이 아닌 주관, 절대적이기보단 상대적이며, 평가가 아닌 사랑이 있던 요리 때문이었다. 별 것 아닌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근처 한인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오징어 볶음을 시켜 먹었다. 그 오징어 볶음은 철판 위에서 지글거렸다. 양파와 파, 오징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흰 쌀밥 위에 양념을 비벼가며 오징어 볶음을 싸우듯 씹고 삼켰다. 조금씩 땀이 흘렀다. 매운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따위가 빗어낸 극동의 매운맛이 혈관 속을 흐르며 몸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철판 위의 작은 빨간 흔적마저 싹싹 긁어낸 후 나는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매운맛과 약 기운이 몸에 동시에 흘렀다. 나는 다시 땀으로 침대를 적시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들었다. 그것은 꿈이었지만 꿈같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불 앞에 서서 냄비와 칼을 휘둘렀다. 혹시나 마늘 냄새가 난다고 비웃을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땀만 흘리며 하루를 보냈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Home > SSG LIFE/COLUMN
이마트의 리얼한 마케팅 이야기
제주소주 '푸른밤'의 탄생 스토리
최훈학
#최훈학마케팅담당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문학에 모두 능통한 ‘뮤즈(Muse)*’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신입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뮤즈가 찾아온 것’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뮤즈는 항상 ‘밤’ 에 찾아옵니다.


*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으로,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존재다. 초기에 3명이던 뮤즈는 후대에 9명의 자매로 늘어났으며 탈레이아(Thaleia)는 희극, 멜포메네(Melpomene)는 비극, 폴리힘니아(Polyhymnia)는 찬가, 칼리오페(Calliope)는 서사시, 클레이오(Cleio)는 역사, 에우테르페(Euterpe)는 서정시,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는 춤, 에라토(Erato)는 노래, 우라니아(Urania)는 천문을 각각 담당한다.


‘밤’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됐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회상과 기억, 그리움을 정겹게 풀어내었고,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에서 낮이 가리는 진실로 인도하는 신비로운 밤의 시간을 표현하였습니다. 한편 밤이 이렇듯 정겹고 신비로운 이미지만을 던져주는 것은 아닙니다. 유진 오닐(Eugene O'Neill)은 그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에서 길을 잃은 ‘안개 인간’ 같은 가족들의 어두움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홍상수 감독의 화제작이었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혼자 남은 영희(김민희)가 찾은 곳도 바로 ‘밤의 해변’ 이었습니다.


그리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어두움과 외로움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시간 밤. ‘푸른밤’은 이러한 ‘밤’이 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애주가들의 새로운 뮤즈, ‘푸른밤’의 탄생


소주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나라의 대중 주(酒)입니다. 그만큼 ‘푸른밤’의 네이밍에도 치열한 고민이 필요했는데요. 그간 소주의 네이밍은 소주 성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의 깨끗함을 강조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또는 지역 및 지리적 특색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로 담겼습니다. 하지만 ‘푸른밤’은 기존 소주가 가진 의미를 넘어선 ‘이상’에 집중했습니다.





‘푸른밤’은 ‘밤’이 주는 이상적인 심상을 강조한 브랜드입니다. ‘푸른밤’은 천혜의 자연을 품은 제주가 선사하는 깨끗한 물을 ‘화산송이’ 정제공법으로 정제하여 제공하지만, 제주의 좋은 물을 사용했다는 것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푸른밤’의 전면 라벨에는 복잡한 공법, 깨끗한 물, 소주의 맛보다 ‘별 헤는 푸른밤 잊혀진 그리움을 노래하자’라는 브랜드 슬로건이 적혀있습니다.


소주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제주에서 푸른 밤바다를 보면서 술잔을 기울였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각박한 일상과 무심한 도시의 표정에 지칠 때, ‘푸른밤’ 한잔에 제주도 푸른 밤 아래 웃고 떠들던 추억들을 다시금 불러 일깨워 그 순간을 다시 꿈꿀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소주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계속 도수를 낮추는 것이 최근 트렌드입니다. 그래서 ‘푸른밤’ 역시 도수에 대한 부담을 낮춘 저도주와 전통적인 맛을 강조한 고도주로 나누어 출시됩니다. 가볍게 한잔 즐기고 싶은 분들은 저도주인 짧은밤(16.9도)을, 소주 본연의 진한 맛을 중시하시는 분들은 고도주인 긴밤(20.1)을 선택하면 되는데요. 저도주인 짧은밤(16.9도)은 제주 바다를 연상시키는 일러스트와 함께 푸른 컬러를 사용하였으며, 고도주인 긴밤(20.1도)은 성산 일출봉을 상징하는 일러스트와 함께 붉은 컬러를 사용하였습니다.



제주도 푸른 밤 아래, 소유의 음악과 함께 즐기는 ‘푸른밤’ 한 잔




푸른밤의 첫 모델은 시스타 출신의 ‘소유’입니다. 첫 모델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소주 브랜드의 모델은 항상 톱 클래스의 인기 여배우나 가수가 해왔는데요. 때문에 푸른밤 모델로 미모로 유명한 대세 아이돌 그룹의 A 양, 파격적인 연기로 눈길을 끌었던 배우 B 양 등을 놓고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식 없고 털털한 이미지에, 무엇보다 ‘제주’ 출신인 ‘소유’를 첫 모델로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제주라는 브랜드를 강조하고 광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명곡인 ‘제주도 푸른밤’을 소유가 리메이크하여 발표하도록 하였습니다. 음악은 브랜드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추라고 하겠습니다.



소유 X 푸른밤 MV - 제주도의 푸른 밤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은 마케팅 매니저로서, 그리고 브랜드 담당자로서 굉장히 큰일이며 영광입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하여 국내, 해외 수많은 사례를 조사하고 시장 현황을 분석하여 차별화된, 그러나 낯설지 않은 브랜드 콘셉트를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좋은 이름을 찾기 위해 밥 먹는 순간, 양치하는 순간까지 어떤 이름이 나을까 고민하였으며, 콘셉트와 네이밍을 어떤 디자인으로 표현할 것인가 수없이 많은 시안을 펼쳐놓고 고뇌하였습니다.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며, 경영진의 최종 승인을 받아 시장에 첫발을 디딘 브랜드는 어찌 보면 또 하나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모든 건 끝났고 고객의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개봉 박두!!!





이마트 최훈학 마케팅 담당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IDEA와 MONEY의 사이에서,

회사와 고객의 사이에서

항상 방황하는 마케터


Home > SSG LIFE/COLUMN
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복날, 시골집 앞마당의 암탉 두마리
정동현
#정동현


에 돌아오니 못 보던 닭 두 마리가 있었다. 모두 벼슬이 작은 암탉이었다. 목에 줄을 매달고 수돗가 한 편에 매달려 있었다. 줄이 짧아 닭은 멀리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며 꼬꼬거렸다. 할머니는 그 옆에서 숫돌에 칼을 갈았다. 낮은 시골집 기와 너머로 하얀 구름이 보이고 햇볕은 거리낌 없이 땅을 뜨겁게 달궜다. 방학을 맞아 놀러 온 충청도 시골엔 햇빛을 받아 웃자란 옥수수와 튼실하게 커가는 풋고추, 담벼락에 매달린 애호박이 내뿜는 들뜬 풀 냄새가 진동했다. 그늘을 벗어나 조금만 뛰어놀아도 등에 땀줄기가 흘렀다. 이미 나와 동생의 얼굴은 까맣게 타서 검댕을 묻혀놓은 것 같았다. 아마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있었으리라. 저러다 더위 먹는다, 지치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닭 두 마리를 구해 온 것이다.




저 짝 양계장에서 알을 못 낳는다는 닭을 가지고 온 거지.


할머니는 산 너머를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가지고 오려면 제대로 된 놈을 가지고 와야지 알도 못 낳고 늙은 노계(老鷄)를 값이 싸다고 가지고 오면 어떡하냐는 불평이었다. 그래도 집까지 끌고 온 닭을 되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보다 키가 한 팔은 작았던 우리 둘은 그저 닭이 신기했다. 늙었지만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와 단풍처럼 짙은 갈색과 연갈색의 깃털, 빨갛고 작은 벼슬은 책에서만 보던 닭이었다. 도시에서 살아 있는 닭을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살아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땅을 부리로 쪼는 닭이 눈앞에 있었다. 우리는 부엌에서 쌀과 콩을 가져와서 닭에게 주겠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닭에 똥이 찬단 말이야, 인석들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얼마 후에 알게 됐다. 닭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잠깐이었다. 칼 갈기를 마친 할머니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닭 목을 잡아 비틀었다.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전직 대통령의 말이 생각나진 않았다. 무섭거나 징그럽지도 않았다. 단지 허리가 굽고 힘이 없으며 늘 우리에게 다정했던 할머니가 한번 머뭇거림 없이 닭 목을 비트는 모습에 놀랐고, 처음 눈앞에서 목격한 ‘죽음’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우리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대신 할머니는 부들거리는 닭을 붙잡고 닭목 밑으로 날카롭게 벼린 칼을 슥 하고 밀어 넣었다. 검붉은 피가 수도꼭지를 연 것처럼 흘러나왔다. 더 이상 닭 목에서 피가 나오지 않자 할머니는 부엌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가지고 왔다. 


지금 바로 삶는 거에요?


나는 닭에 뜨거운 물을 껴얹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저렇게 해서는 닭이 제대로 삶아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래야 털이 빠지는 거야. 아이고 힘들어라. 왜 이렇게 안 뽑혀.


할머니는 닭 겉을 뜨거운 물로 살짝 익히고 털을 뽑기 시작했다. 털 뭉치가 더 이상 뽑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의 투덜거림도 계속됐다. 내가 보기엔 살짝 잔털이 남은 듯했지만 허리를 두드리는 할머니에게 차마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다시 시퍼런 칼을 들고 닭 배를 갈랐다. 닭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방금 준 쌀과 콩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닭의 근위, 그러니까 모래주머니도 있었다. 길고 긴 닭의 소창과 대창(으로 짐작되는 것들)이 보였고 끈 같은 것으로 묶인 노른자들도 보였다. 닭의 난소였다. 


알이 차 있네. 다 못 낳고 죽었구먼.


할머니는 알이 되다 만 노른자를 따로 그릇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닭 손질이 모두 끝났다. 할머니는 가마솥에 닭을 넣고 물을 한 바가지 부었다. 다듬어 놓은 마늘도 한 웅큼 집어 넣었다. 무거운 솥뚜껑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가마솥 위로 올라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었다.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장작을 밀어 넣었다. 불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구수한 연기에 몸이 휩싸였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오래된 냄새 같은 것들도 느껴졌다. 


이제 나가 놀아라. 부르면 그때 들어와.





할머니는 아궁이 앞에 앉은 우리를 밀어내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면 나와 동생은 잠자리와 매미 따위를 잡으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때는 아무리 놀아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지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태양이었다. 여름의 긴 날도 놀다 보면 아쉽게 끝이 났다. 어둑어둑한 길을 잠자리 떼와 함께 뛰다 시골집으로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나와 대청마루로 향했다. 할머니는 우리 발소리에 맞춰 작은 상을 부엌에서 들고 나왔다. 동생과 나는 수돗가에서 물을 콸콸 틀어놓고 흙이 묻은 손과 발을 씻었다. 그리고 마루에 뛰어 올라갔다.


작은 상 위에는 큰 닭이 양푼에 놓여 있고 오이지 냉국, 풋고추, 열무김치가 있었다. 그리고 흰쌀밥과 닭곰탕도 한 대접 씩 놓여 있었다. 시작은 할아버지가 닭 다리를 뜯는 것이었다. 요즘 파는 닭보다 족히 두 배는 큰 닭다리가 할아버지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생과 나는 작은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닭 껍질은 두꺼웠지만 고소했다. 야들야들한 영계가 아니기에 살은 두텁고 단단했다. 하지만 무미(無味)하지 않았다. 씹을수록 속 깊은 맛이 났다. 늦은 저녁, 산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마루에 앉아 맞으며 닭을 씹고 노란 기름이 뜬 닭곰탕을 마셨으며 간간이 차갑고 새큼한 오이지 냉국을 한 숟가락씩 퍼 입에 넣었다. 아삭한 열무김치도 먹고 할아버지가 맵지 않다며 한 입 베어 물고 내어준 풋고추도 먹었다. 닭 뼈가 쌓이고 밥이 줄었다. 작은 배가 통통히 불어 올랐다.


멀리 산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지고 솔개는 날개를 크게 펴고 높이 날았다. 할아버지는 닭곰탕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얼큰한 얼굴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할머니는 작은 상을 치우고 안방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켰다. 얇은 문 사이로 익숙한 여배우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매미는 잠잠해지고 풀벌레가 울었다. 할아버지는 모기를 쫓는다며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까만 어둠 사이로 빨간 불이 날숨과 들숨에 맞춰 폈다 졌다. 





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도시의 여름은 숫자다. 불쾌지수, 열대야, 습도, 온도, 이 숫자들을 보고 듣고 나서야 비로소 여름이 왔음을 확신한다. 인터넷 포털 뉴스에 뜬 ‘복날’이란 안내에 맞춰 의무감에 휩싸인 채 복달임을 하러 길을 나선다. 늙고 큰 닭은 없다. 자라다 만 병아리를 영계라는 이름으로 팔 뿐이다. 닭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영계가 투입 사료 당 무게비가 가장 효율적인 시기라고 하니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먹는 닭이 점점 작아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닭이 나이가 들수록 클수록, 사료를 먹어도 덜 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먹는 입장에서도 나눠 먹을 필요 없이 뚝배기에 한 마리씩 담아 나오니 편리하다. 한 시간 점심시간에 맞춰 속도전을 펼친다. 새끼손가락만한 닭 다리를 빨고 이쑤시개 만한 닭갈비를 핥는다. 여물다 만 내장은 국물 속에 흩어져 볼 길이 없다. 몸에 좋다고 하니, 먹어야 한다고 하니 먹을 뿐이다. 헛트림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오면 여름의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옛날에 대한 그리움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이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갈 길 없는 옛 시골. 그 모든 것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작은 닭을 앞에 두고 찾아오는 슬픔은 측정할 수 없고 환산할 수 없기에 다행일지도 모른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