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의삼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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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마음에 점을 찍는다, 딤섬
정동현
#정동현



홍콩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피로한 각색의 인종은 어두침침한 공항 출입국 사무소 앞에 뱀처럼 꼬불꼬불한 줄을 섰다. 이무기 같은 그 뱀은 몇 번이나 똬리를 꼬았다. 나는 그 줄의 중간에 홀로 서서 눈을 비볐다. 빠르고 불친절한 영어, 알아들 수 없는 광둥어는 모두에게 평등했다. 자기 몸 만한 가방을 맨 서양인, 나와 같은 동양 여행객, 이 모두 홍콩이라는 작은 섬에 모여들어 시큰한 냄새를 나는 공항에서 입국 스탬프를 받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양된 것이 이제 20여 년, 사이가 틀어진 부부처럼 서양과 동양이 묘하게 뒤섞인 이 섬은 몇 천억 대의 돈을 굴리는 세계의 금융회사와 그들을 태우는 엄청난 규모의 택시, 그리고 그 모두를 먹이는 식당들이 단테의 지옥도처럼 난잡하게 뒤엉켜있다. 그 섬에 모인 다양한 인종들만큼이나 홍콩에서 먹지 못할 음식은 없다. 영화배우 양조위가 단골이라는 국수집 앞은 합석도 개의치 않는 관광객들이 일렬로 줄을 섰고 호텔 지하 떨어질듯 위태로이 매달린 샹들리에를 단 고급 레스토랑에는 저 높은 빌딩 어딘가에 책상이 있을 사람들이 점잖을 떨며 음식을 기다린다. 

 

나는 미쉘린 2스타를 받은 성퉁럭(Sun Tung Lok)에 자리를 잡았다. 성퉁럭은 본래 미쉘린 3스타였으나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도 불구, 시그니쳐 메뉴인 샥스핀을 계속 판매하여 2스타가 되었다는 명문 레스토랑이다. 악마적인 그 고집스러움이 빛나는 이 레스토랑에서 나는 점심으로 가볍게 딤섬 몇 가지를 시켰다. 잠시 후 바싹 마른 웨이터가 가져다준 슈마이를 먹고 나는 정신이 멍했다. 마치 기천만 짜리 오디오로 듣는 라이브 실황처럼, 각각의 재료는 하나하나의 맛을 잃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하나로 모여친 총합의 맛은 그 개별을 초과하는 규모였다. 이것이 바로 본토의 딤섬이구나. 나는 탄식을 하며 접시를 비웠다. 




홍콩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 걸리는 한국은 딤섬의 불모지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의 딤섬(點心), 홍콩과 광둥성을 중심으로 실제 점심에 즐겨 먹는 딤섬의 섬세한 맛을 한국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현지에서 만나는 딤섬의 종류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얇은 피 안에 젤라틴을 넣고 쪄서 육즙이 가득찬 소롱포(小籠包)부터 시작해 찐빵과 모양이 흡사한 빠오(包), 전분으로 투명한 피를 만들어 속에 새우를 넣은 하가우(蝦餃), 돼지고기와 새우살을 다져 뭉치고 찐 슈마이(燒賣), 쌀가루로 피를 만들어 그 속에 돼지고기 바비큐나 새우 등을 넣고 돌돌만 창펀(肠粉), 그외 무수한 페이스트리(pastry)가 적힌 메뉴판을 보면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하지만 한국으로 넘어오면 그 메뉴판은 경상도 남자의 안부 인사처럼 매우 단순해지고 그 맛을 보면 딤섬이 아니라 냉동만두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우선 딤섬이 대중적이지 못하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메뉴가 아니다보니 시장이 작다. 돈이 안 되니 인력도, 또 투자도 모이지 않는다. 지금껏 대만과 홍콩에서 몇 큰 브랜드가 한국 시장 문을 두드렸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났다.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고 재료도 귀한 딤섬을 서비스로 내어주는 만두와 값을 비교하며 가성티 타령을 하니 그 고급스러운 맛도 함께 즐기기 힘든 것이다.


더구나 딤섬 문화를 지탱할 화교 인구는 한국식으로 변형된 ‘중화요리’에 뛰어들고, 화교 자체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역사적으로 탄압을 받은지라 그 힘이 약하다. 여러모로 딤섬 먹기 힘든 나라다. 그러나 딤섬 없이 견딜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작고 맛난 것을 입 안에 넣지 않고 몇 주를 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나는 홍콩에서 맛본 딤섬을 추억하며 가로수 길이 아닌 세로수 길, 15평 남짓한 ‘쮸즈’에 간다.


‘기둥’이란 뜻의 쮸즈가 세로수길 안경점 자리에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시작된 세로수길이란 말은 이제 가로수길의 뒷골목을 통칭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좁다란 가로수길에서 개인 사업자 명의를 둔 가게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살인적이라는 극단적인 뜻의 관형어는 가로수길의 임대료 앞에서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바람에 지친 새가 조그만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듯 세로수길엔 옹기종기 젊은 창업자들이 둥지를 틀었고 그 중 하나가 쮸즈다. 가게 규모는 15평 남짓, 창가로 조그만 좌석을 넣고 건물 안쪽으로 두 사람이 엉덩이를 비빌만한 크기로 주방을 만들었다.




5평이나 될까, 그 안에서 83년 생 젊은 주인장은 매일 딤섬 피를 빚고 육수를 끓인다. 중국 베이징에서 요리학교를 나온 이력을 증명이나 하듯 좁은 가게 안으로 주인장의 사진과 자격증 등이 붙어 있다. 점심 가게 문을 여는 것이 오전 11시 30분, 그러나 매번 그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다. 나는 그 긴 줄 뒤에 꼬리 부분을 맞으며 홍콩 출입국 사무소 앞에 있던 시간을 떠올렸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 좁은 가게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일까? 유리문 넘어 젊은 요리사들은 손님에게 잠시 눈 줄 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마침내 자리를 잡은 것은 1시간 뒤였다. 종업원은 미안한 표정을 가득 지으며 자리를 안내 했다. 그 줄을 뚫고 자리를 잡았으니 주문에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소룡포(3500원)를 빼놓을 수 없다. 얇은 피 안에 담긴 뜨거운 육수를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으면 애교를 부리는 것 같은 섬세한 피와, 돌직구 고백처럼 위장으로 파고드는 향긋한 육수는 이 집의 정통성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강남 한복판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는 가격, 그러나 유명 음식점을 넘어서는 맛에 인기는 필연적이고 그래서 자주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가게 측의 사과 인사를 듣게 된다.


여기에 10여 가지의 재료로 직접 만드는 고추기름에 다층적인 향은 네덜란드 미술가 에셔(Escher)의 그림처럼 끝없이 겹쳐져 매콤완탕(6000원)을 베스트 셀러로 만든다. 그 기름은 고소한 탄탄면(7000원)에도, 소고기와 무로 육수를 낸 우육면(8000원)에도 올라간다. 고추, 팔각, 정향, 생강, 제피, 대파와 같은 향신료의 향은 인도 영화 속 군무처럼 화려하지만 길을 잃지 않고 오직 손님의 혀를 위해 봉사할 뿐이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이 10000원 이하란 것은 또 다른 놀라움이다. 이래서 남는 게 있냐고, 산적을 닮은 주인장에게 물으면 늘 이런 답이 돌아온다.


“저는 한국에 딤섬의 진짜 맛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주인장은 그 말을 끝내자 마자 땀으로 물들어 야하게 비치는 등판을 내보였다. 물이 끓고 주인장이 땀을 흘리는 주방 건너편, 가게를 가득 메운 손님들의 얼굴 위로는 작은 점을 찍듯 미소가 퍼졌다. 


*스타필드 하남에는 200평 규모의 얌차 레스토랑 ‘피닉스’가 새로 생겼다. 호주의 유명 얌차 레스토랑인 ‘피닉스’와 기술제휴를 맺고 처음 국내에 들여온 전문점이다. 종업원들이 갓 찐 딤섬을 새로 설계한 특수 카트에 싣고 돌아다니며 그때 그때 손님에게 내놓는다. 가슴을 퍽 치고 들어오는 묵직한 맛이 호주를 사로잡을만 하다. 더구나 넓고 쾌적하여 가족 동반도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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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가 알려주는 캠핑 레시피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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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떠들어서 고기가 도망 가잖아.”


아버지는 낚시대를 거두며 투덜거렸다. 앞으로는 샤갈이 쓰던 파란 물감을 푼 것 같은 바다가 멀리 펼쳐졌고, 그 위로는 한 여름의 태양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빛을 발했다. 한낮 온도는 30도를 넘었고 햇빛 피할 길 없는 갯바위 위는 불판 위에 올라간 것처럼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20년도 전, 우리 가족은 부산 영도의 동삼중리에 피서를 갔다. 더위를 피해야 피서인 것인데 바다에 왔으니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타던 아버지는 부득불 갯바위 위에 홀로 섰다. 붕어 낚시도 아니고, 저 멀리 줄을 던지는 릴낚시 이거늘, 시끄럽다고 물고기가 도망간다는 논리에 10살 갓 넘은 우리 형제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물고기는 잡히지 않고 우리가 입을 삐죽거릴 무렵이 되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밥 먹자!”


갯바위 멀리, 한적한 공터 차양막 아래에서 우아하게 쉬던 어머니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는 “이제 좀 잡히려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못이긴 척 낚시대를 거두었다. 그쯤 우리는 이미 차양막 아래 들어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윽고 펼쳐질 만찬의 면면을 보면 굳이 왜 바닷가까지 와야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고기 또 고기. 고기가 없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다는 동생과 아무래도 물고기 보다는 육고기가 좋다던 서울 출신 아버지(그런데 왜 낚시를?) 덕분에 반찬의 태반은 고기였다. 그 양상을 보며 나는 이런 합리적인 질문을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고기 먹으면 안 돼요?”




굳이 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물고기는 아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고를 해야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준비한 화로에 번개탄을 올리고 불을 당기면 그 말은 쏙 들어갔다. 그 불길을 보노라면 어린 나의 머릿 속에는 이미 구워진 고기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준비한 삼겹살, 제육, 불고기를 순서대로 올리고 ‘치치직’하는 불길 닿는 소리와 야생의 본능을 자극하는 고기 익는 냄새가 요염하게 공기를 가르면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모든 욕망이 식욕으로 변했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 한국의 초여름, 시대가 바뀌어 그때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날이 좋을 때 산과 들로 나가는 풍습은 건재하다. 먹는 것 또한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이 딱 드러맞는다. 언제까지 삽겹살에 쇠고기 등심만 먹을 것인가? 하긴 그것이 마치 아버지의 노래방 18번처럼 자주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남녀노소 좋아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좋은 말이라도 자주 들으면 질리듯, 이왕 시간을 내어 산과 들로 나간다면, 매번 집에서, 혹은 길거리 식당에서 뭔가가 달라야 조금 더 그 맛이 살 것이다.



쇠고기 대신 양갈비




양갈비는 양꼬치 집에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근래 이마트나 SSG 마켓 같은 대형 마트에 가면 양갈비 파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아직 호주나 영국처럼 본격적으로 파는 것은 아닐지라도 매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여전히 양고기는 냄새가 나서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맛있다”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겪어보지 못해서 그럴 뿐이다. 주방에 있을 때 소고기는 ‘질렸다’며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요리사들이 한 점이라도 더 먹겠다고 달려들던 것은 바로 양갈비였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비록 사이코패스에 살인마 이지만 감미안이 뛰어났던 미식가 살인마 랙터 박사가 선택한 식사 역시 양갈비였다. 양갈비도 뜨겁게 달군 불판에서 겉만 살짝 지져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로 먹어야 제 맛이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의 대부분은 ‘램(lamb)’으로 한 살 이하의 어린 양이다. 어린 것 특유의 연한 식감이 입 안에서 녹아들고 희미하게 풀냄새가 나는 육향을 즐기면,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이 흘러나오는 듯 목가적이고, 식욕이 돋을라치면 어린 양을 잡아 놓고 축제를 지내던 저 옛날로 돌아간 듯 야성이 끓어온다. 양고기에 곁들이는 소스도 돼지고기나 소고기와는 다르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민트젤리다. 양고기 매대 한 켠에 같이 팔고 있을 확률이 높은 민트젤리의 달달한 박하향은 양고기는 궁합이 좋다. 요구르트에 민트잎을 다져서 넣고 올리브유, 소금 등으로 간을 하면 그것 역시 훌륭한 양고기 소스가 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기가 있으면 술이 빠질 수 없는 법이다. 양고기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와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방목을 하기 때문일까? 양고기에서는 프랑스 요리에 흔히 쓰이는 허브 향이 나는데 이 향은 와인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종류다. 덕분에 프랑스 론 지방에서 나는 ‘샤토네프뒤파프’ 같은 와인을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 왜 본토 프랑스 사람들이 이리도 양고기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꼭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을 먹어야 한다면


그러나 누구 한명은 양고기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몽골 유목민도 아닌 마당에 양고기 몇 킬로그램을 먹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 굽지 않으면 먹는 것 같지 않다는 전통주의자도 있기 마련이다. 고추장 쌈장도 훌륭한 소스이지만 이 두 개를 곁들이는 순간 결국 상추쌈이 필요하고 소주가 뒤따르게 된다. 조금만 준비를 한다면 캠핑을 나가서도 이국적인 소스를 맛 볼 수 있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침미추리 (chimichurri)소스다. 브라질 원산의 이 소스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진 고수, 오레가노, 샬롯, 파슬리, 올리브유, 레드와인식초, 마늘, 레몬즙을 적당량 넣고(레시피에 이런 말을 쓰면 반칙 같지만 정말 그렇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 된다. 산미가 있어 깔끔한 이 소스는 한 여름 소나기처럼 청량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 둘다 잘 어울린다. 만약 요리에 자신이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소스가 있다. 바로 홀렌데이즈 소스다. 버터를 녹여 위로 뜬 유분을 제거한 클래어파이드 버터(clarified butter)와 후추와 샬롯을 넣고 졸인 식초로 만드는 이 프랑스 소스는 마요네즈의 따뜻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만드는 방법은 조금 까다롭다. 먼저 화이트 와인 식초(업장에서는 샴페인 식초를 쓴다)에 으깬 통후추와 샬롯(shallot)을 넣고 절반 정도로 졸인다. 여기에 동량 정도의 몰을 섞고 중탕기에 올린 뒤 녹인 버터를 조금씩 부어가며 거품기로 채를 치면 되는데 이 작업이 까다롭다. 많은 양을 만드는 것이 실패할 확률이 적으니 이왕이면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 만약 제대로 만든다면 별 달린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할 수 있다. 녹여 거른 버터의 풍부한 맛과 식초의 산미가 맛의 중심을 잡고 후추의 매콤함이 뒤를 받친다. 여기에 구운 고기를 찍어 먹으면 버터로 만든 소소가 이리 맛있는지, 왜 프랑스 미식이 위대한지 실감할 수 있다.



샐러드 드레싱, 부디 직접 만들자




마트 매대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것이 샐러드 드레싱이다. 건강에 좋다며 지방과 당이 들지 않았다고 붙여놓은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이 맛이 있을리가 없다. 특히 발사믹 드레싱이라고 하여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섞어 놓은 것을 볼 때면 지긋지긋한 기분까지 든다. 오히려 심플하게 올리브유 3에 레몬즙 1, 마늘, 디종 머스타드, 1/4의 설탕과 약간의 소금을 섞으면 보다 산뜻하고 맛있는 드레싱을 만들 수 있다. 흔히 프렌치 드레싱이라고 부르는 이 소스와 구운 닭가슴살, 로메인 상추, 파마산 치즈 등을 섞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샐러드가 된다.



한낮에 즐기는 칵테일




뜨거운 태양이 쬐는 낮이라면, 혹은 열기가 가시지 않은 밤이라면 간단히 만든 칵테일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클래식 칵테일, 진토닉이 가장 만만하다. 소나무 과의 주피터 열매로 만드는 진(gin)은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리쿼다. 진 때문에 벌어진 알콜 중독에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던 전력이 있을 정도다. 이 진은 무엇보다 여름에 마시면 좋다. 진 5에 라임주스 1, 그리고 시럽 1을 넣고 쉐이킹한 김렛(gimlet)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칵테일로 레시피가 매우 간단하지만 그만큼 맛을 제대로 내기 어렵다 하여 바텐더의 실력을 알아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놀러 나와서 어깨에 각 잡을 필요는 없다. 맛있는 진토닉 만으로도 피크닉의 격은 몇 순위 올라간다. 취향에 맞는 진 브랜드를 고르고 달지 않은 헨리스 같은 좋은 토닉 워터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맛있는 진토닉에 다다를 수 있다. 오이를 얇고 길게 썰어 넣고 민트잎 몇 개를 올리면 더 좋다.


이렇게 준비가 끝나면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현재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없는 태양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쓰는 것,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지나간 과거 아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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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의 황제, 멜론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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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과일의 왕이다.”


<허클베리 핀>을 쓴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전후 맥락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압도적인 크기와 흘러넘치는 과즙을 보며 ‘왕’이란 단어를 떠올렸으리라.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멜론은 과일의 황제다.”



호주의 한국인 요리사, 멜론에 눈뜨다



나는 중산층을 밑도는 가정 경제 환경에서 자랐기에 멜론은 머나먼 과일이었다. 백화점 코너 한켠에 있는 멜론을 볼 때면 ‘누가 저걸 사 먹을까?’ 생각하며 멜론 아이스크림을 사먹곤 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요리를 하게 되면서 나는 멜론과 친해졌다. 그곳은 호주, 호텔의 조식 뷔페였다.


남반구에서 가장 큰 카지노라는 멜버른 크라운 호텔의 조식 뷔페 준비는 새벽 4시부터였다. 새벽 4시, 제대 이후 그 시간에 눈을 떠 본 적은 처음이었다. 호텔로 가는 번화한 길에는 거나하게 취한 객들만 돌아다닐 뿐이었다. 성스러운 노동으로 향하는 길. 나는 아무도 눈 뜨지 않은 새벽 거리를 혼자 걸을 때면 신성한 노동에 대한 찬양이 절로 나왔다, 는 거짓말이고 절로 욕이 나왔다. 현지에 가면 가장 빨리 배우는 것이 욕이라 했던가? 내가 아는 영어 욕 레퍼토리를 다 써갈 때 쯤이면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주방에 도착했다.


“나마스떼.”

“굳모닝.”


나의 인도말 인사를 영어로 받는 인도 요리사 ‘라지’. 나보다 살짝 어두운 피부색에 투박한 손. 나를 보며 씩 웃는데 ‘아서라 정든다’는 말은 못 하고 씩 웃으며 가방에서 칼을 꺼냈다. 다른 요리사들과 웨이터들도 하나 둘 도착. 그 중 태반이 인도 친구들이었다. 이 부분에서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호주에 왜 인도 요리사인가? 호주에서 힘든 일은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도맡아 한다. 덕분에 힘들고 임금이 싼 접시닦이와 요리사 일은 이 다국적 군단 차지다. 그 중에서도 새벽에 나오는 조식 담당 요리사들 면면을 보면 이곳이 호주의 별 다섯 달린 호텔인지, 아니면 델리 어디쯤의 인도 레스토랑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요리사 출신 성분이 어떻든 맛만 제대로 나오면 상관 없는 것.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아침 일찍 나는 새들, 얼리 버드를 위해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맡은 것은 과일 준비였다.



“얘야, 과일 좀 깎아오너라.”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1단계, 과일깎기. 사과 몇 개 깎는다면야 일도 아닌 것. 그러나 여기는 호텔 조식 뷔페. 세상이 좋아져서 깎아놓은 과일도 많이 판다는데 이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아니될 말이었다. 나는 냉장 창고에서 과일 한 무더기를 가지고 와 큰 칼로 깎고 썰기 시작했다. 그 과일 중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수박. 호주산 수박은 어찌나 덩치가 큰지. 호주 토박이들을 닮은 그 큰 덩치들 껍질을 벗기고 토막을 내다보면 진이 절로 빠졌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한 과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멜론이었다.



과일의 황제, 멜론의 맛



떡을 만들면 떡고물을 먹듯 과일을 담당하면 과일을 많이 먹게 된다. 과일은 몸에 좋다며 나는 억지로, 는 아니고 틈날 때마다 과일 조각을 입에 집어 넣었다. 과일 좀 깎고 먹어본 사람으로서 맛 평을 해보자면 이렇다. 먼저 나를 고생시킨 수박의 맛은 솔직하다. 큰 덩치만큼이나 수박의 맛에는 감춤이 없고 풍만하기 그지 없다. 빨간 속살을 보면 선정적일 것 같지만 맛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이 같은 느낌이다. 수박을 묘사할 때 괜히 아이들이 수박 한 조각을 물고 있는 정경을 그리는 게 아닌 듯 싶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으면 의사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과는 어떤 맛일까?


푸른기가 도는 사과는 젊은 남자 같다. 아삭 부서지는 경쾌한 식감과 단단한 육질은 젊음 그 자체. 많이 먹고 크게 웃을 것만 같다. 소설이자 애니메이션인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의 남자친구 길버트가 사과 과수원을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반면 케이크 장식으로 자주 올라가는 빨간 딸기는 젊은 여자의 웃음처럼 생그럽다. 당도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무르지 않은 육질과 지워지지 않는 산도는 나를 들뜨게 한다. 딸기는 산딸기… 말을 말자. 제사상에 올라가는 황토색 배는 어떨까? 배는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사십 대 남자 같다. 일단 밀도가 높다. 단단하고 치밀하다. 맛을 보면 공격적으로 치고 돌어오는 기운은 없다. 그렇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다. 멜론은 몽환적이다. 저항감 없이 이가 쑥 들어가는 식감, 나른한 단맛, 멜론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파스텔 톤의 몽롱하고 화사하며 은은한 맛. 그 초현실적인 감각 덕분에 멜론을 먹다보면 내가 서울에 있는지 도쿄에 있는지 파리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멜론을 먹는 순간만 있다.


멜론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일본의 멜론 사랑은 여러모로 유별난 구석이 있다. 소보로빵의 다른 이름이 멜론빵인 것은 일본인이 가진 멜론 사랑의 한 단면이다. 멜론음료, 멜론 아이스크림 등, 멜론이 들어가지 않은 종류를 찾기가 힘들고, 인기가 없는 것 역시 찾기 힘들다.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참외를 먹었으나 멜론이 도입된 이후 참외가 거의 사라져버린 역사를 생각하면 일본의 멜론 사랑은 가히 전면적이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진 애착을 보려면 가장 얼마나 비싼 값을 치르는지 보면 되는 일. 일본 훗카이도 도청 소재지 유바리 산 멜론 한 통이 1300만원에 팔린 기록이 있을 정도니 일본의 멜론 사랑은 세계 최고라 할만 하다. 다른 과일 역시 일본에서는 좋은 품질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의 값을 받지만 멜론 수준은 아니다. 현재 후지산 인근 히즈오카 현에서 나는 최고급 멜론의 경우 백화점에서 30만원 정도 되는 값에 팔린다. 그리고 고급 스시 레스토랑의 디저트는 백이면 백, 멜론이다. 그 가치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 혹은 집착에서 나온다. 비닐 하우스가 아닌 유리 온실에서 기르는 것은 기본이다. 꽃이 피기까지 정확히 50일, 그리고 그 이후 50일을 키운 후 정확히 수확한다. 질을 위해 한 그루에서 하나의 멜론만 수확하는 맹목은 같은 이유로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한 송이의 포도만 수확한다는 프랑스의 그랑크뤼 디저트 와인, 샤또 디켐에 비할만 하다.



멜론 최고의 짝궁, 하몬(jamon)



이런 고급 멜론은 일본에서 디저트로 먹듯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좋은 짝이 있으면 더 빛을 발하는 법. 스페인 산 생햄 하몬(jamon)과 멜론의 궁합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충분하지 않다.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 뒷다리를 2주간 소금에 절였다가 6개월 정도 천장에 매달아 숙성시켜 만드는 생햄 하몬은 짭짤한 소금의 맛과 숙성된 돼지고기의 감칠맛, 무엇보다 숙성된 꼬릿한 냄새 뒤로 스페인의 들녘 공기를 마시는 듯한 묘한 상쾌함이 깃든다. 그 하몬을 노란 멜론과 함께 입안에 넣으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녹아내린다. 단맛과 짠맛은 서로를 탐하듯 입 안에서 뒤섞인다. 멜론과 하몬의 섬세하고 고급스러운 향기는 내 몸에 스며들어 나를 여기가 아닌 어디로 이끈다.


아마 이국에서 내가 멜론의 맛을 알게 된 것과 일본의 6~70년대 고도 성장기 시절, 일본인이 멜론에 급격히 빠져들게 된 것은 멜론의 맛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북아프리카 원산인 멜론의 퇴폐적이기까지 한 집요한 단맛과 나른한 향은 고된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그 꿈은 어느 한군데 막힘 없이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촉촉하고 달콤하다. 그 꿈이 끝나고나면 다시 고된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테지만 그 순간만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그 꿈은, 맛있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멜론의 맛이다.


* 한국에서 제일 비싸고 제일 맛있는 멜론은 SSG 마켓에 판다. 먹어보고 하는 소리니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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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주방의 뼈와 살, 팬과 기름
정동현
#정동현


주방에서 가장 흔한 부상은 자상(刺傷)이다. 칼로 베이고 찔려서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난다. 그 다음은 화상(火傷)이다. 주방은 모든 것이 뜨겁다. 오븐 속 불길은 꺼질 일이 없다. 모든 주방 기기는 잠재적으로 뜨거운 상태다. 방심한 나머지 맨손으로 무언가를 잡는다면 그날 손바닥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래서 늘 타올을 겉대어 물건을 잡는다. 필수적인 습관이다. 그러나 뜨거운 기름은 언제든 튈 준비를 하고 있다. 타올을 겉대어도 기름은 사방팔방으로 튀어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주방 어디에나 있는 이 기름은 주방의 살이다. 그리고 모든 주방인은 잠재적 염좌(捻挫)환자다. 주방은 모든 것이 뜨겁다, 라는 말을 이쯤에서 수정해야 한다. 주방의 모든 물건은 뜨겁고 무겁다. 믹서에는 마력(馬力) 단위로 표시되는 출력의 모터가 달려있고 밀가루와 설탕 포대는 기본이 20kg이다. 무엇보다 주방의 뼈와 같은 팬이 무겁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방의 뼈와 살, 팬과 기름이다.



팬. 그 무거움에 대하여





“윽.”


처음 주방에서 팬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한국 남자는 군대 다녀온다며 으시대던 나는 없었다. 멋을 부리며 팬 몇 개를 한 손으로 들어올렸을 때 손목이 묘한 각도로 꺾였다. 그만큼 팬은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주방의 팬은 무겁다. 주방에서 어머니들이 쓰는 가벼운 코팅 팬은 볼 수가 없다. 왜일까?


팬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많은 열을 품을 수 있다. 말인즉슨 팬이 쉽게 식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팬이 무거울수록 팬 밑바닥이 두껍다. 그 말은 또 무엇인가 하니 팬 밑바닥이 골고루 데워진다는 것이다. 싼 팬은 보통 얇고 가벼운데 이런 경우 팬은 쉽게 식는다. 화기의 열기가 얇은 밑바닥을 뚫고 직접적으로 음식에 닿기 때문에 두꺼운 팬보다 음식이 타기가 쉽다. 두꺼운 팬은 뜨거워지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뜨거워지면 잘 식지 않는다. 화기의 열기도 직접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팬 전체를 달구어 간접적으로 음식에 닿기 때문에 음식이 쉽게 타지 않는다. 물론 가벼운 팬, 얇은 팬이 필요할 때가 있다. 팬이 얇을수록 빨리 달구어진다. 급히 요리를 해야 할 때 용이하다는 뜻이다. 더불어 팬이 얇기 때문에 열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이점을 살린 팬이 바로 중화냄비인 웍(wok)이다. 웍의 밑바닥 두께는 3mm가 채 안 된다. 이 얇은 두께 아래 섭씨 1000도 가까이 되는 프로판 가스불을 쏴주고 웍을 돌리면 우리가 열광하는 ‘불맛’이 난다. 그러나 가정에서 중국집에서 맛보는 불맛을 내기 쉽지 않다. 팬이 얇더라도 화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재료를 넣으면 온도가 쉽게 떨어진다. 팬 위 온도가 100도 언저리로 떨어질 때 재료는 볶아지는 게 아니라 자체 수분으로 삶아진다. 해결책은 역시 두껍고 무거운 팬을 쓰는 것이다. 무쇠팬처럼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팬을 10분 넘게 뜨거운 불에 달구어 요리를 하면 맛이 아예 다르다. 팬의 무게 말고도 열전도율 이야기도 해야 하지만 그것까지 따지기에 인생에 신경 쓸 것이 한 둘인가? 점심 메뉴 고르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는 시대. 간단하게 생각하자. 무거운가? 가벼운가? 슬프게도 가벼우면서 열을 많이 품는 팬은 없다. 영국 저널리스트 비 윌슨이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옮겼듯 “불가능이 없는 이 좋은 세상에도 완벽한 냄비용 금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팬에도 전략적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 만능팬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벼운 팬과 무거운 팬이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무거운 팬이 더 좋다.


그렇다면 왜 팬이 쉽게 식는 것은 좋지 않은가? 볶음이나 튀김을 할 때 재료가 갈색이 되도록 구워야 맛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색은 맛의 단서다. 단백질 조직이 120도가 넘는 열을 받으면 단백질은 갈색으로 변한다. 이것이 마이야르(Maillard)현상이다. 이 마이야르 현상은 아미노산과 열의 화학반응이고 그 결과물은 우리 인류가 좋아하는 풍미다. 그럼 왜 그 구운 맛에 끌릴까? 하버드 대학 인류학과 교수 리처드 랭엄은 『요리 본능』에서 인류는 화식(火食)을 통해 음식 섭취 속도와 양이 패러다임 전환적으로 늘고 그 초과된 영양 공급으로 두뇌가 진화했다고 밝힌다. 어찌되었든 이 갈색은 이미 밝힌 것처럼 섭씨 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발생한다. 만약 온도가 낮게 되면 재료에 있는 물기가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끓는다. 팬이 가벼우면 보통 그렇다. 그래서 나는 팬을 고를 때 직접 들어보고 고른다. 한 손으로 들기 힘들면 오케이. 온라인으로 고를 때면 상품평을 본다. ‘너무 무거워서 쓰기 힘들어요’라는 평이 있으면 딱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는 이유





기름을 치면 맛있다. 대부분의 맛과 향 분자가 수용성이 아닌 지용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에 기름을 두르는 이유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역시 온도와 관계가 있다. 기름은 팬 위의 재료와 팬 사이에 온도 전달자 역할을 한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달걀 후라이를 해보면 달걀이 팬에 달라붙고 쉽게 탄다. 왜냐하면 팬의 뜨거운 열이 매개체 없이 바로 달걀에 닿아서 그렇다. 기름은 재료 전체에 골고루 온도가 적용되도록 돕고 팬이 가진 열의 완충 작용을 하여 타는 것을 막는다(물론 너무 뜨거워지면 재료는 탄다). 더불어 버터와 같은 기름은 풍미를 더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름을 써야할까?


올리브유는 일반적으로 가열 조리에 쓰지 않는다. 이유는 올리브유의 성분이 열에 약해서다. 세계의 모든 요리사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물어보는 과학적 조리의 아버지, 화학자 해롤드 맥기에 따르면 올리브유를 일정 온도 이상 가열하면 본연의 향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굳이 가열 조리시에 좋은 올리비유를 쓸 필요는 없다고 밝힌다. 더불어 개성이 강해 마구잡이로 쓰게 되면 맛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 과유불급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리브유는 비싸다. 굳이 그 비싼 올리브유를 별 효용 없이 쓸 필요는 없다. 대신 좋은 올리브 오일은 음식의 마무리에 혹은 드레싱으로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낮에 가열 조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완벽히 맞는 말은 아니다. 올리브유도 품질에 따라 발화점이 다르다. 품질이 좋은 올리브유는 발화점이 섭씨 22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주방은 땀과 기름이 현현(顯現)하는 실존의 공간이자, 냉정한 숫자와 물리가 함께 하는 과학의 장이기도 하다. 오늘 당신이 한 요리가 맛이 없는 이유는 소질이 없어서도 아니고 날이 이상해서도 아니다. 충분히 무거운 팬을 쓰지 않았고 충분한 양의 기름을 두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의 팔 근육이 견딜 수 있는 질량이 일정 수준 이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몸과 머리, 뜨겁고 차가운 것이 함께 하는 이 주방의 이야기가 늘 흥미롭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요리는 그 맛으로 화답한다. 팬과 기름, 이 두 가지는 그 이야기는 충분히 귀 기울일만 하다. 혹시 아는가? 당신이 무거운 팬을 들어올려 만든 요리에서 프로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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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미식,편식:정동현의 三食일기
코스요리를 대하는 셰프의 자세
정동현
#정동현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별로 다르지도 않았다. 모두 핀셋을 들고 조그만 이파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정해진 위치에 놓았다. 완벽한 이파리, 시들어서도 안 되고, 너무 커서도 안 된다. 마치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 마냥 허리를 굽히고 땀을 흘렸다. 그 뒤로 다른 접시들이 줄 지어 있었다. 내가 맡은 것은 앙트레, 지체할 수 없었다.





“뭐 도와줄까?”


“오케이, 내 뒤로 소스 뿌려.”


셰프 한 명이 도와주겠다고 내 섹션으로 넘어왔다.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접시를 캔버스 삼아 예술적 감성을 펼칠 기회는 없다. 플레이팅도 다 정해져 있다. 헤드셰프가 지난 번에 보여준 플레이팅의 사진이 옆에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마음대로 플레이팅을 고쳤다가는 주방에서 가장 흔한 단어, F 어쩌구를 듣게 될 것이다. 물론 원본 보다 예쁘면 상관 없을테지만 그 찰나에 그런 ‘창조’를 하는 것 정말 쉽지가 않다. 필요한 것은 창조가 아니라 완벽이다. 국밥집처럼 밥에 국물을 부어주면 되는 것도 아니다. 접시 하나에 올라가야 하는 것들이 대 여섯 개가 기본. 하나라도 빼 먹지 않기 위해 신경이 곤두선다.


밖으로는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오픈 주방이라 우리가 작업하는 것들이 다 보였다. 손님들은 신기한 표정, 처음에야 손님이 눈에 들어오지 일 하다보면 봬는 게 없다. 밭을 메는 아낙처럼 허리가 아파 온다.



코스 요리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셰프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철두철미함,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도가 넉넉한 카드, 그리고 세 시간을 마주 앉아 있어도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상대다. 이성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차림새는 정장이다. 꼭 턱시도를 입을 필요는 없지만 청바지 차림은 곤란하다. 예약도 필수다. 유명한 곳은 아마 몇 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치금을 받기도 한다.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당일 취소인 경우에도 예치금은 환급이 안 된다. 그러니 알박기 하듯 예약을 할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당신이 가는 곳은 레스토랑, 먹으려는 식사는 정찬 코스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갑을 털고 셰프는 모든 아이디어를 짜낸다. 어딘지 모르게 있어보이는 이 비싸고 긴 코스 요리의 시작은 19세기 러시아였다. 러시아 귀족들이 음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씩, 코스로 내는 문화가 프랑스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정통 프랑스 정찬은 아뮤즈 부쉬-앙트레-수프-샐러드-생선 요리-고기 요리-프리 디저트-가금류 요리-치즈-디저트-커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이 법처럼 꼭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돈을 내는 대로, 셰프 마음대로 얼마든지 코스를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역사 상 가장 긴 코스는 21개에 달했다고 한다.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은 입 안의 기쁨이라는 뜻의 아뮤즈 부쉬 (Amuse Bouche)다. 레스토랑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음식으로, 작고 예쁘며 재기 발랄해야 한다. 대화의 포문을 여는 작은 농담이요 가벼운 키스. 냉채 류 샐러드나 작은 튀김이 흔히 쓰인다.


님의 입 속으로 아뮤즈 부쉬가 들어가는 동시에 본 게임이 시작된다.


“퍼스트 코스, 테이블 10번!”


웨이터가 주문을 넣으면 주방에 있는 출력기에서 영수증이 나오듯 주문서가 튀어 나온다.


“트득트득”



장거리 달리기, 우아한 코스 레이스의 시작


파블로프의 개처럼 셰프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일분 일초가 아쉽다. 코스 사이 간격이 길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긴 코스가 더 늘어지기 때문이다. 앙트레가 빨리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욕하는 요리사로 악명 높은 영국 요리사 고든 램지는 “앙트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12분 내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가 늦으면 모든 게 늦어진다. 손님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와 일단 뭐라도 먹은 것은 체감 시간이 다르다.





헤드셰프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기 전, 앙트레가 손님 테이블에 놓여졌다. 남자와 여자는 조개 껍질을 들고 ‘후르릅’ 소리를 낸다. 앙트레의 기본, 굴이다. 프랑스의 영향이다. 생굴을 최고로 치는 그들의 문화 덕에 제철이 아닌 이상 굴은 앙트레의 주전 선수다. 굴이 아니라도 된다. 곧이어 나올 메인을 기대하게 만드는 은은하고 짜릿한 전희, 입맛을 돋우고 무겁지 않은 것을 내놓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간이나 고기를 갈아 익히고 식힌 파테(Pâté)와 프랑스 식 육회인 타르타르(TarTar), 조개 관자와 같은 해산물, 메추라기 같은 작은 가금류도 많이 쓰인다. 일식의 영향으로 ‘사시미’도 흔히 보인다.


그런데 두번째 코스가 나가고 나서 세번째 코스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방 문제가 아니다. 헤드셰프가 웨이터에게 말한다.


“썅, 정말 늦게 먹네. 확인 좀 해봐.”


코스가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짠 것 마냥 두 번째 코스에서 막혀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 코스가 밀리면 회전이 늦게 되고 마감 시간도 늦춰지며, 나중에 한 섹션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완급이 중요한 이유는 코스요리는 장거리 달리기이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그리고 지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코스를 짜는데 원칙이 있다면 식재료나 소스를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편하자고 같은 재료를 연달아 쓰면 제대로 된 코스가 아니다. 튀긴 음식이 계속 나와서도 안 되고 구운 음식이 계속 나와도 안 된다. 한 번은 부드럽게, 한 번은 바삭하게, 한 번은 노릇하게, 식감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마치 강 약 중 강 약으로 이어지는 5/8 박자처럼 리듬을 타고 식사가 절정으로 향해 간다. 그러나 그전에 거쳐야 할 것이 있다.


프리 디저트 (Pre Dessert), 메인 시작 되기 전 잠깐의 휴식, 식사의 터닝 포인트다. 프리 디저트란 이름처럼 정식 디저트가 아니다. 입맛을 정리 하기 위해 메인 요리 전에 나오거나, 말 그대로 디저트로 전에 나와 달지 않은 메인에서 디저트의 단맛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달지 않게, 보통은 오이나 셀러리 등으로 만든 소르베가 나온다.





메인도 육해공, 이렇게 세 개는 나와야 테이스팅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갑각류가 하나 더 나올 수도 있고, 양고기와 쇠고기가 함께 나올 수도 있다. 큼지막한 고깃 덩어리를 기대하지는 말자. 메인이 시작되기 전에 먹은 코스 갯수가 많게는 다섯 개, 메인도 최소 두 개다. 개별 요리의 양이 적다면 익는데 걸리는 시간도 적게 들고 조금 더 섬세하게 조리할 수 있다.


이윽고 핏기가 감도는 고기가 손님의 입속에 들어간다. 첫 번 째 절정, 앙트레와는 다른 크고 강한 맛이다. 메인에서 비프 스테이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스테디 셀러요 베스트 셀러다. 그러나 비프 스테이크는 특별한 날의 정찬으로는 너무 평범하다. 나온다 하더라도 최고급 와규(Wagyu) 정도가 아닐까? 나머지 자리는 어린 양고기와 섬세한 생선 요리,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이라면 어김없이 달달한 살점의 랍스터가 차지할 것이다.


메인이 자리를 비워주고 나면 이제 치즈 차례다. 정찬이라는 개념 자체가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다보니 치즈는 필수다. 원산지와 종류 별로 나눠진 십 여 종의 치즈 중 몇 가지를 고르면 웨이터는 그 자리에서 작은 덩이로 잘라 준다. 사람의 체취를 닮은 치즈 향이 레스토랑에 가득하다. 그 향은 밝기보다는 어둡고, 낮이기보다는 밤의 향이며,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것이다.


치즈를 떼어 먹는 손님들의 얼굴도 상기 되어 있다. 남녀의 속삭임은 은밀하지만 열기가 느껴진다. 그들의 열기는 차오르지만 반대로 주방은 마감을 할 시간, 메인을 내던 그 열기가 사그라든다. 셰프들은 남은 식재료를 정리하고 청소를 시작한다. 주방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고 오는 이들도 있다.



긴 정찬 레이스를 마무리하다


“어땠어?”

 

“괜찮아.”





다들 말수가 별로 없다. 얼굴은 벌겋고 몸은 땀에 절어 있다. 몰래 담배 피는 고등학생처럼 빠르게, 그리고 끝까지 꽁초를 빨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바톤 터치를 하듯 디저트를 내는 페이스트리 주방이 한참 바빠진다. 코스의 후반부, 아직 강렬한 한 방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번 째 절정, 디저트다. 디저트만 담당하는 헤드셰프를 따로 둘 만큼 그 비중은 절대적이다. 머리 끝까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요리가 잊혀질만큼 달고 화려하다. 메인요리처럼 두 세 번에 걸쳐 나오는 디저트, 그 중 초코렛으로 만든 요리는 무조건 나온다. 장담한다. 그것이 케이크든 수플레든 확실하다. 수플레도 마찬가지로 빠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먹은 코스에서는 안 나왔다’며 항의는 하지 말길 바란다. 가끔은 주전이라도 쉬는 경기가 있는 법이다.


디저트 다음에도 나올 코스가 있다. 프티 뽀(Petit Four), 작은 오븐이란 뜻으로 마카롱, 초코렛과 같이 한 입에 들어갈만한 단 과자가 나온다.


“아아.”


작은 보석 같이 예쁜 것들을 입에 넣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토록 황홀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프티 뽀까지 마치면 차나 커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기본은 에스프레소,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음식의 잔해를 없애는, 저 어두운 밤 하늘처럼 까맣고 독한 것이다. 커피를 마실 쯤이면 디저트 쪽을 제외한 셰프들은 이미 정리가 끝내고 퇴근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모두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이제 일어날까?”


웨이터는 정중하게 계산서를 테이블에 놓아둔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서면, 레스토랑에서는 따로 준비한 선물을 손님에게 건내기도 한다. 레스토랑의 로고가 찍힌 간단한 소스나 주전부리가 보통이다. 먹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뒤다. 밖으로 총총히 나서면 거리는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거나, 혹은 저 찬란한 기억과는 다른 완전한 적막이다.


“내일 보자.”


그리고 마침내 셰프들도 주방을 나선다.


“휴우.”


모두 고생이다. 손님은 먹느라 힘들고 셰프들은 그 많은 코스를 내느라 힘들다. 배를 채우자면야 김밥 한 줄에 컵라면 한그릇으로 충분하다. 코스 요리에 내는 값이면 김밥 몇 십 미터는 살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고급 레스토랑의 이익률은 5%도 안 되는 곳이 허다하다. 돈보다는 ‘최고’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셰프와 웨이터들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고, 그렇게 아낀 돈은 모두 최고급 재료와 최신 주방 기기를 사는데 쓰인다.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치가 하룻밤 몇 차까지 술을 마시며 쓴 돈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먹는 그렇고 그런 식사를 가볍게 압도하는 스케일, 수 십 명의 스테프가 힘을 모아 만들어낸 식문화의 정점, 3, 5, 8 과 같은 코스 숫자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 드라마다.


어쨌든 우아한 음식을 만들었던 나는 배가 고프다. 밑준비에 바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자정에도 여는 식당에 들른다. 코스는 아니다. 한 접시에 푸짐하게 나오는 셰프들의 소울푸드다. 크게 외친다.


“빅맥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