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즈 서북부
전편에서 웨일즈의 고성 마을들과 책마을 헤이온와이, 아서 왕의 전설을 가진 스노도니아를 여행했다. 마지막으로 지중해 이탈리아를 흠모해 만든 포트메리온과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는 방고와 앵글시 섬을 둘러본다. 그리고 아일랜드로 건너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서북쪽 끝 항구도시 홀리헤드를 소개한다.
전편에서 웨일즈의 고성 마을들과 책마을 헤이온와이, 아서 왕의 전설을 가진 스노도니아를 여행했다. 마지막으로 지중해 이탈리아를 흠모해 만든 포트메리온과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는 방고와 앵글시 섬을 둘러본다. 그리고 아일랜드로 건너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서북쪽 끝 항구도시 홀리헤드를 소개한다.
지역에서만 나오는 양, 소고기, 야채, 과일 등으로 요리하는 식당과 시장이다. 요리교실 체험 프로그램이 있고, 미식가들에겐 필수코스.
www.bodnant-welshfood.co.uk콘위성 마을에 붙어있는 항구 바로 앞에 있다. 높이 3m, 폭이 1.8m로 마지막 거주자는 어부였는데 180cm가 넘는 거구였다고 한다.
성문 안 마을 중심가에 세워진 1570년대부터 운영해 온 고즈넉하고 유서깊은 호텔. 중세시대 집에 온 느낌이다.
www.castlewales.co.uk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그리고 북아일랜드로 이뤄진 나라다. 그래서 국가명이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줄여서 UK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19세기 아일랜드를 복속한 후 1922년 지금의 이름으로 확정됐다. 웨일즈는 사실상 다른 민족, 다른 언어를 쓰며 문화도 사뭇 다르다.
런던을 출발해 기차로 두 시간을 달려 잉글랜드 서쪽 마지막 도시인 체스터역에서 내려 차로 달렸다. 시계를 빠져 나가자 마자 웨일즈 영역에 왔다고 알려준다. 두 가지가 확연히 차이난다. 하나는 저 멀리 서쪽으로 높은 산들이 솟아있다. 구릉과 평야가 대부분인 잉글랜드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풍경.
두 번째는 교통과 관광안내 표지판이다. 암호 같은 알파벳과 영어 표기가 항상 붙어있다. 웨일즈어다. 영국 땅이지만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곳의 분위기는 색다르다.
초록빛 풀밭과 양들이 수십 번씩 반복되는 언덕을 오르고 내린다. 윈도우 컴퓨터 초기화면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초록언덕이 반복된다. 콘위 시내가 보이는 언덕 위에서 잠시 쉬었다.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다. 언덕 아래 펼쳐진 풍경은 중세 마을 모습 그대로다.
바닷가 바짝 옆 콘위성이 거인처럼 서있고 언덕 아래 마을을 뱅 둘러 성벽이 병풍처럼 바깥 세계를 향해 굳게 막아 서있다. 그야말로 철옹성이다. 바다 위엔 수백 척의 요트들이 한가로이 떠있다. 웨일즈에는 콘위성 외에 1969년 찰스 왕자가 황태자 서임식을 생중계해 유명해진 카나번성 등 고성들이 641개나 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콘위성을 찾았다. 완공하는데 만 4년(1283~1287) 밖에 안 걸린 초고속 성채다. 그런데도 견고하게 지어져 보존 상태가 좋아 중세 고성연구에 중요한 성이다. 불행히도 이 성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를 정복해 쌓은 잉글랜드성이다. 당시로서는 이민족이 침탈해 만든 성이다.
고성 해설사 윌리엄스씨는 “친구들이 내게 왜 하필 잉글랜드가 정복해 만든 성에서 일하느냐?”며 핀잔을 준다고 한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한다. “그때마다 저는 말하죠. 역사는 역사다. 오래 전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이 성 꼭대기에 있는 깃발을 보세요. 바로 웨일즈 깃발 아닙니까? 뭐가 문제죠?” 일행들은 웃음과 함께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수백 년 고성 망루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스노든산맥을 바라본다. 성 안의 잉글랜드인들과 성문 밖 웨일즈인들을 떠올려 본다. 산 주변 마을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웨일즈인들에게 이곳은 동화 속 꿈 같은 도시였으리라. 바닷바람이 제법 거세다. 인간은 거친 역경들을 이겨내며 오늘날 같은 멋진 세상을 만들었다.
영국은 전체적으로 산세가 약하다. 그나마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산이 높다. 가장 높은 산이 1,113m 높이의 웨일즈 북부 스노든산이며, 남부에서 제일 높은 산이 브레콘산(886m)이다. 평야 위에 솟은 높은 언덕 산 정도다.
이곳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자신의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야기 나누자고 한다. 매우 활달해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했다. 웨일즈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관목과 풀 밖에 없는 황량한 브레콘산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 여 오르니 정상이 성큼 다가왔다. 지금껏 평야만 봐서인지 정상에서 펼쳐진 풍경은 나쁘진 않았다.
그 뒤 노인은 대단한 폭포(Waterfall)가 있다며 꼭 봐야 한다며 한참을 데리고 안내했다. 결론은 아주 작은 폭포.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신기한 명소다. 웃음이 나왔지만 “원더풀!”이라 화답해줬다.
이곳은 미리 알던 곳으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다. 서점에서 한 괴짜 책 애호가의 이야기를 접했다. 머리에 왕관을 쓴 그는 자신의 성채를 책 왕국으로 선포하고, 자신을 왕으로 칭했다.
한 괴짜 책 애호가 리차드 부스의 노력 덕분에 이 마을은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리차드 부스(Richard Booth). 옥스포드를 졸업한 후 몰락해 가는 1961년부터 시골마을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급기야 900년이 넘는 헤이성을 사들여 세계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을 만들었다. 30여 개의 전문서점들이 마을을 가득 채웠다. 중고서적은 거의 40만권이 넘는다고 한다.
필자가 그를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옆 마을로 외출 중이었다. 직원이 전화를 연결해주어 인사를 나눴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처음 듣는 외지인의 어눌한 영어에 밝게 대답해 줬다.
한 가지 주제를 몇십 년간 억척스럽게 천착한 그의 의지와 혜안을 배운다. 세상은 이런 괴짜들이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 이제 더 웨일즈 북서쪽 마을로 이동한다.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에딘버러(Edinburgh)는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로 스코틀랜드인의 긍지와 자존심이 아로새겨진 역사적인 도시다. 오늘날에는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 페스티벌, 북 페스티벌 등 1년 내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끊이지 않는 세계적인 문화.관광의 도시이다.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 에딘버러(Edinburgh)는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수도로 스코틀랜드인의 긍지와 자존심이 아로새겨진 역사적인 도시다. 오늘날에는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 페스티벌, 북 페스티벌 등 1년 내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끊이지 않는 세계적인 문화.관광의 도시이다
캐슬 록(Castle Rock)이라는 바위산 위에 세워진 요새,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
이 지역의 수비를 위해 6세기 무렵 건축되었다. 구시가지 풍경에서 단연 돋보이는 에딘버러의 랜드마크다.
에딘버러 성 입장 후바로 볼 수 있는 대포.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후 한 시에 공포탄을 쏘는 이벤트를 한다.
에딘버러 성에 휘날리는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유럽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나라지만, 한때 전 세계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엄청나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53개의 국가로 만든 영연방국가(The Commonwealth)는 아직도 결속력이 대단하다.
에딘버러 성에서는 에딘버러 시내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에딘버러 성 앞에서부터 시작해 홀리루드 궁전까지 이어진 1마일의 길을 로열 마일(Royal Mile)이라 한다. 왕의 지나다니는 거리라는 뜻이다. 로열 마일은 가장 스코틀랜드다운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골목 골목마다 온갖 풍물이 가득하고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로열 마일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의 백파이프 연주자. 그가 입은 타탄 킬트(Tartan Kilt)는 이곳 남성들의 치마 정장이다. 킬트는 본래 모양과 색에 따라서 부족(집안)이나 신분 등을 나타내는데, 지금은 스코틀랜드 군인의 복식이다. 킬트 앞 가운데에는 스포란(Sporan)이라는 가죽 주머니를 달아 놓았다. 치마에 주머니가 없어 필요한 도구들을 담을 곳이 필요했을 거다.
스코틀랜드는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남쪽 지역을 로랜드(Low Land), 북쪽 지역을 하이랜드(High Land)라고 부른다. 거친 산지가 대부분인 하이랜드는 대자연이 만든 장엄한 풍경을 뽐내는 지역이다. 네시의 전설이 깃든 네스호(Loch Ness)와 고대의 화산 활동이 만든 대협곡 글렌코(Glencoe),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섬인 스카이섬(Isle of Skye) 등이 다 하이랜드에 있다. 하지만, 하이랜드의 중심도시는 인버네스(Inverness)다. 북위 57도, 영국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은 시내 전체에서 현대식 고층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단아하고 소박한 도시이다.
스코틀랜드는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남쪽 지역을 로랜드(Low Land),북쪽 지역을 하이랜드(High Land)라고 부른다. 거친 산지가 대부분인 하이랜드는 대자연이 만든 장엄한 풍경을 뽐내는 지역이다. 네시의 전설이 깃든 네스호(Loch Ness)와 고대의 화산 활동이 만든 대협곡 글렌코(Glencoe),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섬인 스카이섬(Isle of Skye) 등이 다 하이랜드에 있다. 하지만, 하이랜드의 중심도시는 인버네스(Inverness)다. 북위 57도, 영국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은 시내 전체에서 현대식 고층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단아하고 소박한 도시이다.
11세기에 건설되었다는 인버네스 성(Inverness Castle). 지금은 주(州) 재판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네스강(River Ness)과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인버네스를 관통하는 네스강은 도시의 상징이다. 인버네스라는 도시의 이름도 네스강의 하구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카치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 어디를 가든 위스키 증류 공장이 널려있다. 뭔가 곰삭은 냄새가 마을 전체에 진동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위스키 공장의 냄새가 익숙해 보인다.
스코틀랜드 중부에 위치한 도시 퍼스(Perth)는 15세기 중반까지 스코틀랜드 수도였던 고도(古都)로 한때는 로열 버러(royal burgh)로 불렸다. 마침 퍼스에서 묵은 호텔에서 화려한 현지인들의 결혼식을 엿보게 되었다. 밤늦은 시각, 호텔 매니저가 방문을 두드렸다. 결혼식 뒤풀이 파티에 신랑신부 가족이 초대했다는 것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신랑신부 가족들과 친구들의 댄스파티. 춤 문화에 익숙지 않은 필자의 눈엔 부럽기 이를 데 없었다.
무도회장의 신랑과 신부의 모습.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의 아름다운 풍경만은 아니었다. 자연과 환경, 문화유산을 보존해가는 그들의 치열한 노력과 고민이 오히려 마음 깊이 남았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의 땀이 밴 것은 물론, 시행착오를 통해 몇백 년에 걸쳐 보존되어 온 것들도 있었다.
대를 이어 전해진 그들의 유산, 이것이 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각각의 여행자들은 이러한 흔적 속에서 내가 그랬듯 나름의 배움도 얻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사는 동안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빨강 파랑 녹색 체크무늬의 킬트 치마옷,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음색의 백파이프, 술의 왕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는 영국을 구성하는 연합왕국(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웨일스ㆍ북아일랜드)의 하나로, 그레이트브리튼섬의 북부 지방에 위치했다.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잦은 외침에 맞서 싸워온 스코틀랜드의 강인한 역사.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여행을 통해 만난 이곳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이다.
빨강 파랑 녹색 체크무늬의 킬트 치마옷,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음색의 백파이프, 술의 왕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는 영국을 구성하는 연합왕국(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웨일스ㆍ북아일랜드)의 하나로, 그레이트브리튼섬의 북부 지방에 위치했다.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잦은 외침에 맞서 싸워온 스코틀랜드의 강인한 역사.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여행을 통해 만난 이곳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이다.
어릴 적 즐겨 읽던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서 본 네스호수(Loch Ness)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지방의 네스호수에 사는 무시무시한 괴물 네시(Nessie)에 관한 내용이었다. 흐릿하지만 실제 네시를 찍었다는 증거사진도 함께 실려있었다. 어린 꼬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니, 보도사진 관점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사진이긴 하지만.
직접 찾은 이곳의 인상은 참 평온했다. 이곳 사람들은 네스호수를 로흐 네스(Loch Ness)라고 부른다. 로흐는 호수라는 뜻이다. 네스호수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길이는 무려 36km다.먼 옛날 빙하기 때는 이 대협곡이 빙하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언뜻 보기에는 바다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즐겨 읽던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서 본 네스호수(Loch Ness)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지방의 네스호수에 사는 무시무시한 괴물 네시(Nessie)에 관한 내용이었다. 흐릿하지만 실제 네시를 찍었다는 증거사진도 함께 실려있었다. 어린 꼬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환상에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니, 보도사진 관점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사진이긴 하지만.
직접 찾은 이곳의 인상은 참 평온했다. 이곳 사람들은 네스호수를 로흐 네스(Loch Ness)라고 부른다. 로흐는 호수라는 뜻이다. 네스호수는 영국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길이는 무려 36km다.
먼 옛날 빙하기 때는 이 대협곡이 빙하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언뜻 보기에는 바다 같기도 하다.
호수 바로 옆,
지금은 폐허가 된 13세기 중세의 성(城)
어쿼트 성(Urquhart Castle)이
아련한 전설을 지키고 있다.
호수 괴물 네시는 6세기경부터 이곳에서 전해오는 전설 속 주인공이다.
숱한 목격담에도 불구하고, 실체를 확인할 수 없어 세기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힌다.
네시의 이야기는 이곳을 찾는 호기심 많은 방문객을 즐겁게 해준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드는 알쏭달쏭한 이야기 덕분에 세상은 무료하지 않다.
스코틀랜드 주변에는 약 750개에 달하는 섬이 있다. 그중 서쪽 해안에 위치한 멀섬 (Isle of mull)과 아이오나섬(Isle of Iona)으로 향했다.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어촌마을 오반(Oban)을 거쳐야 한다.
스코틀랜드 주변에는 약 750개에 달하는 섬이 있다. 그중 서쪽 해안에 위치한 멀섬(Isle of mull)과 아이오나섬(Isle of Iona)으로 향했다.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어촌마을 오반(Oban)을 거쳐야 한다.
언덕 위 맥케익 타워(McCaig’s Tower)에 가면 도시를 조망할 수 있다.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 비슷한 이곳에 서면 오반만(Oban Bay)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 맥케익 타워(McCaig’s Tower)에 가면 도시를 조망할 수 있다.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 비슷한 이곳에 서면 오반만(Oban Bay)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멀섬으로 향한다. 오반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의 이곳은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멀섬으로 향한다. 오반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의 이곳은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멀섬을 거쳐 아이오나섬으로 향했다. 아이오나섬은 멀섬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섬인데, 페리를 타고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기독교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멀섬을 거쳐 아이오나섬으로 향했다. 아이오나섬은 멀섬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섬인데,
페리를 타고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기독교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 콜룸바(St. Columba)가 세운 아이오나 수도원(Iona Abby)과 수녀원(Iona Nunnery)가 이곳에 있다. 역사가 깃든 옛 수녀원의 흔적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멀섬을 거쳐 아이오나섬으로 향했다. 아이오나섬은 멀섬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섬인데,
페리를 타고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기독교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멀섬으로 향한다. 오반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의 이곳은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멀섬으로 향한다. 오반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의 이곳은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멀섬을 거쳐 아이오나섬으로 향했다. 아이오나섬은 멀섬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섬인데,
페리를 타고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기독교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 콜룸바(St. Columba)가 세운 아이오나 수도원(Iona Abby)과 수녀원(Iona Nunnery)가 이곳에 있다. 역사가 깃든 옛 수녀원의 흔적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스카이섬(Isle of Skye)으로 가는 길
스카이섬(Isle of Skye) 가는 길.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멋진 성 중 하나로 알려진 에일린 도난성(Eilean Donan Castle)을 만났다. 1220년에 바이킹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이 성은 수 많은 전투를 끝내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박제되었다.삼면이 물과 접해 얼핏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압권이다.
스카이섬(Isle of Skye) 가는 길.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멋진 성 중 하나로 알려진에일린 도난성(Eilean Donan Castle)을 만났다. 1220년에 바이킹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이 성은 수 많은 전투를 끝내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박제되었다. 삼면이 물과 접해 얼핏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압권이다.
스코틀랜드 서북부에 위치한 스카이섬은 천혜의 절경 때문에 영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섬이지만 지금은 육지에서 도로가 이어져 쉽게 갈 수 있다.
스코틀랜드 서북부에 위치한 스카이섬은 천혜의 절경 때문에 영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섬이지만 지금은 육지에서 도로가 이어져 쉽게 갈 수 있다.
스카이섬의 중심이자 가장 큰 마을인 포트리(Portree)는 형형색색의 집이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마을의 앞 항구에는 많은 요트를 볼 수 있고, 보트투어도 즐길 수 있다.
스카이섬의 중심이자 가장 큰 마을인 포트리(Portree)는 형형색색의 집이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마을의 앞 항구에는 많은 요트를 볼 수 있고, 보트투어도 즐길 수 있다.
내가 머문 숙소는 B&B로 Bed & Breakfast를 줄인 말이다. 우리의 민박집을 떠올리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렴한 숙박비는 물론이고, 영국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B&B의 매력이다.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숙박 공유 플랫폼 Airbnb 역시 이 B&B처럼 손님에게 베드 (bed)와 아침식사(Breakfast)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다.
내가 머문 숙소는 B&B로 Bed & Breakfast를 줄인 말이다. 우리의 민박집을 떠올리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저렴한 숙박비는 물론이고, 영국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B&B의 매력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숙박 공유 플랫폼 Airbnb 역시 이 B&B처럼 손님에게 에어베드(Air bed)와 아침식사(Breakfast)를 제공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다.
스털링 성(Stirling Castle)은 스코틀랜드에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다음으로 거대한 성채다. 이곳은 스코틀랜드의 깊은 역사가 묻어있다. 영국의 첫 통합 왕국 시대를 열었던 스코틀랜드 왕가, 스튜어트 가(House of Stuart)의 궁전이자 수많은 전쟁을 치른 요새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장군이 스털링 다리 전투(Battle of Stirling Bridge)로 잉글랜드군을 대파한 곳도 이곳이다.
스털링 성(Stirling Castle)은 스코틀랜드에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다음으로 거대한 성채다. 이곳은 스코틀랜드의 깊은 역사가 묻어있다. 영국의 첫 통합 왕국 시대를 열었던 스코틀랜드 왕가, 스튜어트 가(House of Stuart)의 궁전이자 수많은 전쟁을 치른 요새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 장군이 스털링 다리 전투(Battle of Stirling Bridge)로 잉글랜드군을 대파한 곳도 이곳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얼핏 보면 한 나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 아직도 영국 정부와의 정치적인 이슈는 진행 중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수많은 문제와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며 오늘날의 영국을 만들어왔다.
성안에서는 옛 전투병들의 군대 제식동작과 전투장면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얼핏 보면 한 나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다르다. 아직도 영국 정부와의 정치적인 이슈는 진행 중이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수많은 문제와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며 오늘날의 영국을 만들어왔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건 영웅, 윌리엄 윌리스를 기념하기 위한 월리스 기념탑(Wallace Tower). 월리스 장군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다. 국가적인 영웅이자, 자유와 항쟁의 상징인 것이다. 13세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스코틀랜드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을 때, 윌리스는 주도적으로 독립군을 조직해 잉글랜드에 맞서 싸웠다. 그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며 독립의 물결을 일으켰지만, 잉글랜드군에 잡혀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인에게 자유의 가치를 보여주었고, 1314년 결국 독립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건 영웅, 윌리엄 윌리스를 기념하기 위한 월리스 기념탑(Wallace Tower). 월리스 장군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같은 존재다. 국가적인 영웅이자, 자유와 항쟁의 상징인 것이다. 13세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스코틀랜드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을 때, 윌리스는 주도적으로 독립군을 조직해 잉글랜드에 맞서 싸웠다. 그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며 독립의 물결을 일으켰지만, 잉글랜드군에 잡혀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인에게 자유의 가치를 보여주었고, 1314년 결국 독립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멜 깁슨(Mel Gibson)이 윌리엄 윌리스 역을 맡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 1995)는 그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멜 깁슨(Mel Gibson)이 윌리엄 윌리스 역을 맡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 1995)는 그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가 가판대를 채우고 있다. 공원이든 카페든, 혹은 지하철이든 신문 읽는 이들 이 많다. 요즘엔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신문이나 책을 읽는 이들이 부러울 정도로 많다. 영국 신문들이 세계 신문시장의 모델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변하는 독자들의 취향 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경쟁을 통해 변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코벤트 가든 역 광장. 가장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런던 명소다. 마술, 저글링, 버스커들의 놀라운 창작음악 등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매일 감상할 수 있다.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이라는 이름 그대로 ‘수도원 채소밭’에서 출발했을 이곳은 1970년대 중반까지 청과시장 이었다고 한다.
리틀 베니스는 패딩턴 기차역(Paddington Station) 옆 두 개의 큰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런던 내의 하천은 거의가 인공 물길(Canal)이다. 매년 5월이면 리틀 베니스 물길 위는 울긋불긋 깃발과 문양과 꽃 장식으로 가득하다. 화려한 장식의 보트 수백여 척이 한데 모여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는 주변 리젠트 파크(Regent Park)나 더 캠든 마켓(The Camden Market), 런던 동물원(London Zoo) 등을 쉬이 갈 수 있다. 고색창연한 런던을 물 위로 다니며 색다른 풍경을 맛볼 수 있다.
휴 그랜트(Hugh Grant)와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나오는 영화 [노팅힐(Notting Hill, 1999)]의 배경지역. 노팅힐 카니발은 서부 런던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아프리카계 캐리비언(Afro-Caribbean) 이민자들이 1964년부터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뽐내는 거리 축제다. 매년 8월 마지막 주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세계 음식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양한 음악과 함께 시름을 잊을 수 있다. 거리 축제 중 브라질 리우 카니발(Rio Carnival)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노팅힐 바로 옆 골동품 가게. 전 세계 서화들과 동서양의 온갖 물건들이 즐비하다. 주말이면 거리에도 긴 노점이 펼쳐진다.
런던의 경찰은 친절한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연속된 테러 때문인지 꽤 엄격하다. 런던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건 정복 경찰 외에 눈에 안 띄는 수많은 사복 경찰 때문이다. 시민 대부분은 경찰의 권위를 인정하며 범죄가 발생하면 놀랄 만큼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만나는 약속을 한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를 연상시킨다.
뉴욕처럼 전 세계인들이 모여 사는 국제도시, 시내에서 길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알려주는 이를 찾기 힘들다. 그 역시 관광객이거나 혹은 다니는 길만 알고 사는 런던 사람일 거다. 첨단 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에도 런던 사람들은 수백 년 긴 세월의 흔적들을 매우 아끼고 보존하는 데 지극정성이다. 백 년 넘는 펍이나 레스토랑도 많고, 도심 한가운데에도 리젠트 파크나 하이드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 들이 잘 보존되어 시민들에게 위안을 준다.
이웃 섬 산토리니(Santorini)에서 크레타(Crete)로 넘어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에게 해를 건넌다는 것은 다른 바다 여행과 느낌이 달랐다. 파도를 가르며 크레타로 가는 뱃길 내내 가슴이 설렜다.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에서 주인공 영국 작가 바실과 조르바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 저편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느낌을 느꼈을까? 그 책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무덤이 있는 곳, 무수한 신화를 간직한 곳. 바로 크레타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의 아버지인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egeus)가 에게 해의 근원이다.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임신한 아내를 떠나며, 칼과 신발을 커다란 돌 밑에 묻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나 돌을 옮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 징표와 함께 자신에게 보내라 부탁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전설의 영웅 테세우스다. 테세우스는 성년이 되어 아버지가 있는 아테네로 갔다. 마침 아테네는 크레타와의 전쟁에서 패해 매년 괴물에게 바칠 공물로 7명의 처녀와 7명의 총각을 보내야 했다. 테세우스는 크레타로 건너가 모험 끝에 미궁 속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를 죽이고 아테네로 온다. 문제는 테세우스가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성공하면 흰 돛을, 실패하면 검은 돛을 단다고 약속했는데, 승리에 취해 깃발 바꾸는 걸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검은 돛을 단 채로 돌아오는 배를 본 아버지는 절망에 빠져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비운의 아버지 아이게우스의 이름이 이 바다라니 기구하다.
에게 해 초여름 바람을 맞으며 네 시간 만에 다다른 섬 크레타. 기대와 달리 여느 섬보다 소탈하고, 한적하다.이라클리온(Iraklion) 항구는 이 섬의 중심지와 가장 가까운 항구다.
크레타는 화려한 문명의 발상지지만 에게 해의 이름만큼 슬픈 땅이기도 하다. 크레타는 1211년부터 베네치아로부터 지배를 받았다. 베네치아인들은 항구를 바라보고 구시가지를 감싸는 역삼각형의 성벽을 쌓았다. 그 이름도 ‘베네치아 성벽(Venetian city walls)’. 도시를 에워싼 5km의 요새는 오늘날 운치 있는 경관조명을 받으며, 여행자들에게 지나간 역사를 이야기해 준다.
이후, 크레타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다. 1645년 크레타 전쟁 이후다. 그리고 1913년에서야 그리스 왕국에 돌아오는데, 아직도 터키계와 그리스계의 앙금은 남아있는 듯 하다.
이라클리온 구시가지 중앙에는 베니젤로 광장(Plateria Venizelou)이 있다. 이곳 출신 정치인 이름이라고 한다.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반가운 물이 흐른다. 모로시니 분수(Morosini Fountain)다. 분수를 떠받치는 사자들의 모습이 단연 인상적이다. 15km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왔다고 한다.
태양이 서쪽 바다로 넘어갈 즈음이다. 다들 어디에서 있었는지 관광객과 섬사람들이 삼삼오오 항구 앞 레스토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에게 해 연안에서 난 과일과 해산물들이 풍성하다.
크레타 섬의 최고 명소는 역시 크노소스 궁전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역사책에 등장하는 인류문명의 발상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그중의 하나가 그리스 문명보다 앞서 번창했다는 미노아 문명(Minos Civilization)*이다. 그리고 그 흔적이 바로 크노소스 궁전이다. BC 3650~BC 1170까지 융성했던 최초 유럽 문명의 발상지, 크레타 섬의 해양문명인 미노아 문명은 그리스 본토로 넘어가 미케네 문명(Mycenaean Civilization)*으로 발전됐다. 서양문명의 한 축이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기원전 2700~1500년경 동안 번성한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있었던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 20세기 초에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 북부 산지에서 남하한 아카이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구축한 고대 그리스의 해양 문명. 기원전 1600년경부터 크레타 문명을 받아들여 활발한 해상활동을 전개하여 기원전 1500년경에 이르러 지중해 동부의 해상권과 교역권을 모두 장악하였다.
크노소스 궁전은 이라클리온 항구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도 멀지 않다. 이 궁전은 BC 1700년경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낮은 언덕산 아래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그 당시 24,000 제곱미터로 최대 5층 높이의 건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무려 1,300여 개의 방이 있었다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 리비린토스(Libirinthos)가 충분히 있을 법하다.
미궁 속 괴물 이야기는 이렇다. 먼 옛날 제우스는 에우로페(Europe, 유럽이란 단어의 기원이 이 이름이다)라는 여인에 푹 빠져 그녀를 납치해, 크레타로 날아와 세 아이를 낳는다. 그 아들 중 하나가 미노스(Minoan)다. 제우스는 이후 에우로페를 크레타 왕인 아스테리온(Asterion)과 결혼시키고 자식들까지 양자로 준다. 이후, 성장한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기도하고 황소를 얻은 후 크레타의 왕위에 오르는데, 포세이돈에게 받은 황소를 다시 제물로 바치겠다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Pasiphae)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왕비는 왕궁의 설계자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Daedalus)에게 부탁해 나무로 황소를 만들어 매일 황소와 노니는데,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지하에 복잡한 미궁을 만들어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고 매년 처녀와 총각을 제물로 바친다. 이 미궁은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미로 감옥이지만 테세우스(Theseus)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성공적으로 미로를 빠져나온다.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에 반한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Ariadne)가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실타래의 실을 이용해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왔다.
신화의 흥미진진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이달로스는 이 일이 발각돼 아들 이카로스(Icarus)와 함께 탑에 갇힌다. 천하의 발명가는 아들과 함께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아들 이카로스는 태양쪽으로 너무 높이 날아 날개가 녹으며 추락해 죽게 된다.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로 도망가지만, 나중에 미노스가 보내온 군사에 의해 죽게 된다.
이곳의 물은 10km 떨어진 곳에서 흘러온다. 그 먼 옛날에 흙으로 구운 도관(테라코타, Terracotta)이 이미 발명됐으니, 당시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고도 남는다. 왕의 방에는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고 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곳 유적 역시 이탈리아의 폼페이처럼 지진과 화산폭발로 땅속에 묻혀있었다. 폼페이보다 훨씬 오랜, 수천 년 동안 묻혀있었던 걸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가 발굴에 성공한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세상에 선사한 또 다른 영웅이다.
실제 그리스 신화의 상당부분이 실제 유적지로 발견되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만 전해내려 온 이야기를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발굴해 고대도시 트로이가 실제 존재했음을 세상에 보이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을 확장해간다면 정말 이 곳에서 제우스(Zeus)가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Ouranos)와 땅의 신 가이아(Gaea) 사이에서 크로노스(Cronos)가 태어난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쫓아내는데 우라노스는 <너도 결국 아들에게 쫓겨나게 될 것이다>라며 저주를 남긴다. 이를 두려워한 크로노스는 나중에 아내 레아(Leah)가 아이들을 낳는 즉시 삼켜버린다. 나중에 제우스를 임신한 레아는 아이 대신 돌덩이를 주고, 아들 제우스를 크레타 섬 동굴에 숨긴다. 이 아이가 신들의 신, 제우스다. 제우스는 성장해 아버지 크로노스를 찾아가 몰래 구토제를 먹여 삼킨 아이들을 다 토해내게한다. 그들이 하데스(Hades), 헤라(Hera), 포세이돈(Posseidon), 테메테르(Demeter) 등 유명한 그리스의 신들이다. 제우스가 숨어 자랐다는 그 동굴이 크레타 섬의 딕티안(Dikteon) 동굴이다. 이라클리온 중심가에서 동남쪽으로 60km 떨어져 있다. 오늘날도 매우 신성한 동굴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궁전의 백미는 벽에 장식된 프레스코화다. 돌고래, 소 같은 생동감 넘치는 동물들의 움직임과 다양한 남성,여성들의 모습으로 당시 문화와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여름의 태양은 이 곳도 예외 없이 뜨겁게 비춘다. 더위 속에서도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를 찾아서
이곳에 힘들게 오게 된 이유 중 하나!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 크레타 출신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로 세상에 알려진 작가. 그의 무덤은 이라클리온 도심에서 2km 떨어진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다.
베네치아 성벽 옆 마르티네고 요새(Martinego Bastion)다. 2007년, 그리스 정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기념 주화를 발행했을 정도니 그 유명세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간 언덕 끝, 성벽 옆 정원이다. 의외로 소탈한 무덤에 오히려 방문자가 놀랐다. 나무 십자가 하나. 그리고 묘비 하나. 그리고 돌무덤! 바로 옆 잔디 위엔 아내 엘리니 사미우(Eleni Samiou)의 묘가 있다. 좀 더 붙어있었으면 좋았을걸…
그의 소설은 1964년 미카엘 카코야니스(Michael Cacoyannis)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더 유명해졌다. 안소니 퀸(Anthony Quinn)이 자유인 조르바 역을 맡았다. 능청스럽고도 세상에 초연한 그 조르바!
그의 유명한 묘비명, 모르고 왔더라면 해독 불가의 돌덩어리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낮의 더위를, 주변의 잡상을 떨칠 명문이다.
이 환
'유랑'을 중심주제로 오지를 탐닉하는 지구별 여행자다.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